정은(가명·30대)씨는 퇴사처리 공고를 받았다. 임신 때문이었다. 처음에 회사는 출산 전후 휴가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휴가를 쓰라고 하긴 했지만, 사용 후 퇴사하라고 정은씨를 종용했다. 정은씨는 너무 억울했다. 출산휴가만 사용하고 정말 그만 두어야 하는 지, 출산휴가에 대한 실무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회사로부터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고민 끝에 정은씨는 ‘직장맘 고충상담 콜(120 다산콜→5번)’ 문을 두드렸다. 전화로 몇 차례 공인노무사의 코치를 받았고, 그 덕에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근로감독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10여 차례 상담 끝에, 결국 정은씨는 무사히 출산휴가를 사용했다. 2개월이 지난 후, 육아휴직 사용방법도 문의했고 서면신청 등을 포함한 추가적인 상담이 이어졌다.
‘직장맘 고충상담 콜’을 운영 중인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는 2012년 4월 개소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여성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연합해 직장맘 지원센터 개설 제안 내용을 담은 책자를 모든 후보에게 건넸다. 당시 후보자였던 박원순 시장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직장맘 지원센터 설립을 자신의 공약으로 삼았다.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가 개소되기 전에도 여성 노동을 지원하는 ‘여성인력개발센터’와 ‘여성발전센터’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여성의 재취업을 다뤘다. 하지만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는 다른 곳에 포커스를 맞췄다. 바로 경력단절 예방이었다.
“경력단절이 되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재취업을 하면, 보통 노동의 질이 매우 떨어집니다. 자기 경력을 인정받아 재취업을 하려면, 거의 8년이란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다 무방비 상태로 쫓겨나다보니 더 힘들어요.”
김명희(44·사진)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의 경력유지지원 팀장(노무사)은 우리나라 여성의 경력 단절의 대부분이 임신∙육아∙출산기에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고용률은 20대 후반까지 상승했다가 30대에 하락, 다시 40대에 상승하는 M자형 흐름을 보인다. 직장맘이 임신∙육아∙출산기에 일과 가족 생활을 양립하기 어려워 경력단절을 겪는 것이다.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는 직장맘이 시달리는 여려 고충의 핵심 과제를 경력단절로 보았고, 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초 공인노무사 전용 서비스 콜, 직장맘 고충상담 콜
대부분의 직장맘은 바쁘다. 시간을 내기 어렵다 보니,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 상담의 70%가 전화 또는 온라인 상담이다. 그 중에서도 전화 상담이 가장 많다.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의 개소 때부터 운영된 직장맘 고충상담 전용콜은 국내 최초 전문가(공인노무사) 전용 서비스 콜이다. 누구나 전화를 통해 직장맘 지원센터 소속 노무사에게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다. 상담 내용은 출산 전후 휴가, 육아휴직 및 노동권 전반의 문제를 다룬다.
지난 2015년에는 다산콜로 연결되는 ‘직장맘 고충상담 전용콜’(120다산콜→내5번)이 신설됐다. 서비스 시간도 확대됐다(평일 9시~22시, 토요일 9시~18시). 접근성이 높아진 덕에, 유효상담이 3배 이상 늘었다. 하루 평균 상담건수는 18건 이상. 상담이 늘어난 이유에는 입소문도 한몫했다.
“한 건을 상담하더라도 밀착해서 지원합니다.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노무사들이 직접 사건대리를 하기도 해요. 상담자에게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심리정서 전문가를, 법률적 도움이 필요하다면 변호사도 연결해줘요.”
◇1만5000여건의 누적된 상담사례를 통해 직장맘의 고충을 분석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의 5년 간 누적 상담건수는 1만 5000여건.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는 매년 상담 내용을 정리해 ‘서울시 직장맘 종합상담 사례집‘ 을 펴내고 있다. ’직장맘이 궁금한 100문 100답’ 핸드북도 제작했다. 직장맘의 고단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담사례들이 있었기 때문. 직장맘의 고충에 관한 통계나 조사가 부족했었던 만큼, 인기도 많다.
“외부 노무사뿐만 아니라 각 국가기관 지자체와 기업까지 사례집이나 100문 100답 핸드북을 보내달라고 연락이 와요. 회사들도 직장맘의 고충을 잘 모르거든요. 상담하시는 분들도 미리 책을 읽어보고, 줄까지 그으면서 공부하신다고 해요. ”
김 팀장은 “누적된 사례를 통해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안을 잡을 수 있었던 게 큰 성과”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출산 전후 휴가∙육아 휴직을 쓸 수조차 없다는 겁니다. 법으로 보장된 부분조차 해결되지 못하면 더 나아갈 수가 없어요. 결국 가장 시급한 건 제도 개선입니다.”
출산 전후 휴가∙육아 휴직을 둘러싼 상담사례는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 종합상담의 52%를 차지한다. 지난 3월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는 9개 여성노동단체와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2015년에 이어 재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근로자가 현행법에 맞게 육아휴직과 출산 전후 휴가를 신청한다면, 사업주 허락 없이도 휴직∙휴가를 사용했다고 간주하는 조항을 담았다. 현행법에는 사업주 허락 없이 육아휴직과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하면 무단결근으로 간주한다. 또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과 출산 전후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 사업주를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시 사업주가 법적 처벌을 받으나, 휴직∙휴가 사용은 보장되지 않는다.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법적 해결 기간이 긴 것도 문제다. A씨는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승인하지 않아 신고를 했는데, 사업주가 몇백만원 처벌받는데까지 5개월이 걸렸다. A는 그 기간에 이미 아이를 낳았다. 김 팀장은 “육아휴직과 출산 전후 휴가를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휴직을 쓰면 회사에서 미워해요. 그 이후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선 법이라도 통과를 시켜야 해요. 법과 인식 개선, 두가지가 동시에 진행돼야 해요. 휴직을 못 쓰게 하는 회사가 사업하기가 어려워진다면, 스스로 법을 지키게 되지 않을까요?”
◇사업 6년차 … ‘직장맘’에 집중해 공적 서비스 강화합니다
지난해 금천구에는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 2호점이 개소됐다. 올해 9월 은평구에 3호점이, 2019년에는 노원구에 4호점이 개설 될 예정이다. 4개 권역으로 나눈 이유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는 현재 온라인∙전화 상담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베이비 엑스포, 직장맘 커뮤니티 지원, 찾아가는 지하철 상담, 자녀 돌봄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 문제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센터 이름에 ‘직장맘’이 들어가요. 대상이 확실한거죠. 물론, 직장맘의 노동 문제도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집중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죠.”
올해로 13년차 노무사인 김 팀장은 “공적 서비스가 강화돼 사회가 날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들면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맘 문제도 똑같이 접근해야한다고 것. 저출산 문제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 사회여야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애 낳는 기계는 아니잖아요?” 김 팀장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임다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