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무장애여행이 뭐예요?’… 휴가철 여행에 소외된 장애인들

정인식(51)씨는 척수 장애인이다. 첫돌이 되기 전 척추를 다쳐 하지 신경이 마비됐다. 상체 움직임은 자유롭다. 충남 당진 지역에서 장애인볼링협회장으로 활동할 정도다. 5년 전에는 보조기구를 달고 장애인 대리운전을 했을 정도로 운전 실력도 갖췄다. 이처럼 이동에 자유로운 그도 여행만큼은 어려워한다. 지난달 26일 충남 당진에서 만난 정씨는 “휠체어 장애인에게 개인여행은 큰 도전”이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단체관광은 장애인들도 갈 수 있는 곳으로 일정을 짜주고, 턱이 나오면 주변에서 휠체어를 들어 올라가도록 도와주죠. 그런데 혼자 움직이면 하나하나 다 부딪쳐요. 장애인 화장실이 없거나, 출입구 경사로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유명 관광지라고 해도 ‘장애인들이 여기 오겠어?’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가 말하는 장애인 여행은 자유분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씨는 “일정에 맞춰 다 같이 버스로 움직이면서 정해진 관광지에 가고, 정해진 음식을 먹는다”면서 “언젠가 독도에 꼭 한번 가보고 싶고, 액티비티로 번지점프도 해보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만난 척수 장애인 정인식씨는 "휠체어 장애인이 단체여행이 아닌 개인여행을 하기에는 시설이나 서비스면에서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유경 청년기자
지난달 26일 만난 척수 장애인 정인식씨는 “휠체어 장애인이 단체여행이 아닌 개인여행을 하기에는 시설이나 서비스면에서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유경 청년기자

‘무장애관광’ 유사 용어만 십수개, 어떤 말이 적합할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동 약자를 위한 ‘무장애관광’에 대한 갖가지 콘텐츠를 제작하고 홍보한 지 수년째지만 현실의 반응은 냉랭하다. 단체마다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에 교통약자 편의 시설을 갖춘 관광지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장애관광지’, 한국관광공사는 ‘열린관광지’, 서울관광재단은 ‘다누림관광지’로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서울시에서는 ‘유니버설관광시설’로, 보건복지부에서는 ‘BF(Barrier-Free)시설’로 인증하기도 했다.

국내에 알려진 무장애관광의 유사 용어로는 ▲배리어프리 관광(barrier-free tourism)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 ▲유니버설 디자인 관광(universal design tourism) 등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1월 ‘무장애 관광도시 사업 추진 계획’ 예산으로 3개 도시에 최대 40억원을 지원, 총 120억원의 국비 투입 계획을 밝혔다. 첫 무장애 관광도시로 선정된 강릉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진행될 사업을 앞두고 있다.

무장애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두리함께’의 이은실 대표는 “2014년에 복지 관광의 개념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장애인 관광, 접근 가능한 관광, 무장애 관광, 최근에는 ‘모두를 위한 관광’처럼 포괄적인 개념의 용어도 쓰인다”면서 “학문 용어, 정책 용어, 산업 용어가 동일하게 정의되지 않고 뒤섞여 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와 산업계의 서로 다른 정의는 현실에서 드러난다. 보통 학계에서는 ‘유니버설’을 ‘배리어프리’의 상위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배리어프리와 동의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2020 유니버설 관광시설 인증 업소’로 등록된 한 음식점을 방문했다. 해당 음식점은 주 출입구 경사로와 단체 기준을 충족하는 접근로, 입식 테이블 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에 있고, 출입문 유효폭도 좁아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었다. 유니버설 인증 사업의 관계자는 “접근로와 주 출입구, 식당의 경우는 입식 테이블 설치가 필수 평가 지표”라며 “시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접근 가능하면 유니버설 관광시설로 인증한다”고 답했다. 유니버설 관광시설이지만 장애인 화장실과 주차장이 없고, 점자나 음성 안내처럼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이용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이유이다.

이은실 대표는 “무장애관광 용어를 정립하려면 산업이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라며 “그 후에 제도권 안에서 정책 용어가 논의되고, 산업에서 충분한 사례가 나와야 학문 용어도 구체화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대상자가 아니라 고객으로 접근해야”

지금까지 무장애관광에서 장애인은 소비 주체가 아니라 정해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상적인 측면이 강했다. 이은실 대표는 “무장애관광이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대상자가 아닌 고객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고객이 관광에서 마주할 수 있는 제약 여건을 예측하고 해결하는 게 관광 서비스의 기술”이라고 했다.

사회적기업 두리함께는 '무장애관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두리함께 제공
사회적기업 두리함께는 ‘무장애관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두리함께 제공

두리함께는 고객에게 편의시설과 관련한 모든 수치를 공개한다. 편의증진을 위한 법률에 따라 편의시설 설치 여부만 확인하는 정보 제공 방식은 고객이 시설 접근성을 판단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두리함께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진행하는 세계 최초 휠체어 내비게이션 제작에도 힘을 보탰다. 직원들이 5만km의 거리를 직접 걸으면서 수집한 GPS 기반 무장애 관광 지도가 데이터로 쓰였다. 휠체어 이용자도 내비게이션의 안내로 직접 가보지 않은 현장 접근성 정보를 모바일로 확인할 수 있다.

관광 일정은 전문 인력인 ‘무장애관광 코디네이터’가 맡는다. 또 ‘여행동반자(트래블 헬퍼)’가 동행하는 인적 서비스도 갖추고 있다. 이 대표는 “무장애 관광 서비스 매뉴얼이 없던 시절부터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경험으로 전문적인 서비스를 개발했다”며 “15년 이상 관광업에 종사한 직원들이 제주도뿐만 아니라 국내, 해외 관광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유경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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