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신원시장의 끝자락. 소박한 상권을 이루고 있는 동네다. ‘신원로 5-1’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골목 어귀로 들어서면 남색 철제문이 보인다. 손으로 쓴 ‘복합문화예술공간 지하 1층’이라는 글씨가 간판을 대신한다. 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의외로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2014년 2월 28일 둥지를 튼 문화예술혁명단체 ‘작은따옴표’의 거점이다.
“작은따옴표라는 문장 부호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 진심을 담을 때 씁니다. 오늘 여기 ‘작은따옴표’에 오셔서 느낀 감정 그대로를 부호 안에 담아서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곧 저희의 이름입니다.”
단체명은 장서영 대표(25)가 지었다. 정확하게는 작은 따옴표(문장 부호) 사이의 공백이 단체의 이름인 셈이다. 작은따옴표는 문화예술로 사회에 선한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포부와 함께 문을 열었다. 설립 이후 3년, 그들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한 해 동안 공간을 오고 가는 사람만 3000여 명에 이른다. 2015년에는 ‘Artrash(아트래시)’라는 프로젝트로 서울시 혁신대상을 받았다. 지난 9월에는 영국 킹스턴에서 열린 킹스턴 코리안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등 국내외로 활동 기반을 넓히고 있다.
조직의 몸집도 불어났다. 장 대표를 비롯해 3명으로 시작했던 작은따옴표는 현재 9명의 운영위원이 활동한다. 네트워크를 맺은 청년 예술가는 40여 명이다. 작년에 작은따옴표 2호점을 오픈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달 1일, 신림동 작은따옴표 본점에서 장서영 대표를 만났다.
◇ ‘나다운 삶’을 찾아 떠난 여정… 대학 자퇴 후 무작정 서울로
장 대표는 예술가를 꿈꿨다. 대학에서도 그림과 디자인을 공부했다. 하지만 스물두 살, 자퇴를 결심한다. 장학금을 받을 만큼 우수한 성적이었지만 대학 생활 내내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문득 제 삶을 되돌아봤는데 너무 억울한 거예요. 항상 ‘선택된’ 삶을 살았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더라고요. 한평생도 아니고 한 번쯤은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을 그만뒀습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나다운 삶’을 찾겠다는 것. 자퇴 후 울산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수중에는 단돈 30만 원밖에 없었다. 숙식은 서울에 사는 친구 집에서 해결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더부살이를 했다.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았다. 대신 한 달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썼다. 장 대표는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해서 눈뜰 때부터 눈 감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예술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히 마음이 맞는 동료가 생겼다. 이들과 더 많은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소한 감정의 동요가 작은따옴표의 시작이 됐다.
먼저 공간을 물색했다. 신림동에 월세가 저렴하게 나온 PC방이 눈에 띄었다. 먼지, 모래, 곰팡이, 벌레밖에 없는 곳이었다. 초기 멤버 3명이 지하에서 먹고 자면서 점차 공간의 꼴을 갖춰 갔다. 오픈 후 2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럴싸한’ 공간이 완성됐다. 지금도 장 대표를 포함해 4명의 운영위원이 이 공간에서 거주한다. 장 대표에게 작은따옴표는 활동의 장이자, 삶의 터전인 셈이다.
◇ “쓰레기를 가져오면 예술로 맞바꿔드립니다”
작은따옴표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는 바로 ‘Artrash(아트래시)’다. 아트래시는 ‘Art(예술)’와 ‘Trash(쓰레기)’의 합성어로, 길거리 쓰레기 문제를 예술로 풀어내는 작은따옴표만의 해법이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서 아트래시 부스로 가져오면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다. 페이스 페인팅을 그려주거나, 청바지를 재활용해 팔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예술의 대가를 돈이 아니라 쓰레기로 받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는 장 대표가 구상했다.
“외국인 친구와 함께 한국 여행을 하는데 친구가 길거리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더라고요. 저에게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쓰레기를 버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부끄러웠어요. 그때 쓰레기 문제를 실감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됐죠.”
2015년 5월 처음 선보인 아트래시는 곧 큰 주목을 받았다. 언론이 아트래시를 다루기 시작했고, 그해 서울시에서 혁신대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장의 반응이 좋았다. 장 대표는 “실제로 축제 주최 측이 아트래시 부스가 설치되면 그만큼 쓰레기 문제가 해소된다는 피드백을 주신다”고 말했다.
또한 아트래시는 청년 예술가에게 새로운 수익구조를 제시한다. 주최 측으로부터 예산을 받아 아트래시에 참여한 청년 예술가에게 임금을 제공한다. 재능기부나 열정페이를 강요받으며 숱하게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곤 하는 청년 예술가들에게 아트래시는 좋은 기회가 된다.
“아트래시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주최 측은 아트래시 부스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쓰레기를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들은 수익구조를 갖출 수 있죠.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아트래시의 핵심입니다.”
지난해 작은따옴표는 내부적으로 아트래시 전담팀을 꾸렸다. 아트래시가 좋은 반응을 얻는 만큼 ‘제대로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지금껏 아트래시가 전국 각지에 참여한 축제만 60여 개에 이른다. 특히 올해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아트래시를 선보였다. 지난 9월, 영국의 킹스턴 코리안 페스티벌에 초청된 것이다. 영국 현지에서 페이스 페인팅, 플래시몹, 폐청바지 팔찌 만들기 등을 진행하며 아트래시 프로젝트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물론 해외에서의 첫 시도인 만큼 아쉬운 점도 남았다. 장 대표는 “한국과 영국이 쓰레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달랐다”며 “영국이 가진 쓰레기 문제의 맥락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그 과정을 놓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신림동에서 꽃피우는 작은따옴표의 작은 혁명
작은따옴표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접목해 디자인 상품을 만드는 ‘AYAEOYEO(아야어여)’, 누구든지 강의를 열고 누구든지 수강할 수 있는 ‘작따학당’ 등이 있다. 올해는 아트래시 프로젝트에 집중했지만 꾸준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하려고 한다. 설립 이후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아직 풀지 못한 숙제도 있다. ‘지속가능한 놂’을 위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장 대표는 “우리에겐 예술이 꿈이자 업이다”며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이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의 불모지라 불리는 신림동에서 작은따옴표는 작은 혁명을 꽃피우고 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장 대표가 작은따옴표 문장 부호 사이에 채운 진심은 무엇일까? 장 대표는 작은따옴표의 슬로건을 귀띔해줬다.
‘우리는 누구보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모여서 선한 혁명을 이룰 것이다.’
조은희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