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무서운 건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은 이후다”

죽는 거? 죽는 건 안 무서워.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내가 죽어서 어떤 식으로 발견될지 모른다는 거야. 그럼 뒤치닥꺼리는 누가 할 거야?

오후 3시, 부산역 광장에서 조금만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눈에 띄는 벤치들이 있다. 여행객들은 그 벤치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풀풀 풍기는 술 냄새와 담배 한 대 때문에 싸우는 노숙인들이 몸을 뉘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만난 A씨는 여기서 생활한지 7년째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 682명이던 무연고자는 매년 늘어 지난 2016년에 1232명에 달했다. 무연고자들의 가족은 대개 장례비용이 부담돼 시신 인수를 포기하고 있다고 한다.

“트럭 몰았어. 화물 트럭. 근데 일이 자꾸 끊기더라고. 술 마시고 일 안 나가고 그래서 마누라랑은 이혼하고, 뭐 어디 갈 데가 있나. 어디 잠깐씩 일하고 그런 것도 힘들어서 이렇게 산지가 7년이야.” 올해로 57세인 그는 이제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이후가 더 두렵다고 했다.

무연고자. 죽을 때 자신을 거둬줄 가족이 한 명도 없는 사람을 뜻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 682명이던 무연고자는 매년 늘어 지난 2016년에 1232명에 달했다. 구청 담당자들은 “무연고자들 중에서 가족이 시신을 인수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며 “대부분 장례를 치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 및 연고자 시신인수포기자 현황’ 조사 결과 시신인수 포기자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특별시로 125명이었고, 대구광역시가 43명, 인천광역시가 40명, 부산광역시가 33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정춘숙 의원실은 “무연고 사망자 숫자가 늘어난 이유는 시신인수 포기가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평균 1000만 원에 달하는 장례비 … 나라 지원에도 사각지대 존재해

기초생활수급자가 사망했을 때 나오는 장례비는 75만원. 그나마 장례를 다 치른 다음 지급하는 구조다. 문상객들로부터 조문을 받을 수 있는 빈소를 차리고, 입관과 발인의 절차를 갖춘 장례식은 3일장 기준 평균 1198만원. 그것도 한 번에 현금으로 내야한다. 장례비는 커녕 당장 10만원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서울시민의 장례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 준다는 서울시의 ‘착한장례’ 또한 거의 6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가난하면 삶을 마무리할 권리조차 빼앗기는 구조다.

이 때문에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존엄’을 나라에서 책임져주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게 ‘공영장례’다. 현재 공영장례에 관한 조례가 있는 곳은 광주광역시와 대전광역시 서구, 충청북도 괴산군, 전라남도 신안군, 서울특별시 금천구다. 광주광역시 서구청 희망복지팀 김명숙 담당자는 “어르신들은 죽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며 “죽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사후에 자신이 어떤 식으로 발견될지, 그 뒤처리는 누가 해줄 것인지에 대한 걱정들이 많다”며 공영장례 서비스를 도입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공영장례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2014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무연고 사망자는 1008명. 이 가운데 노숙인은 300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광주광역시 조례의 경우 ‘공영장례 지원은 저소득층 사망자로서, 사망 시 (광주)지역구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제로 거주한 사람’이라고 제한을 두고 있다. 주민등록상 소재지가 광주광역시가 아닐 수도 있는 노숙자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뿐 아니라. 서울시에서는 공영장례 절차를 도입한 곳이 금천구청 한곳으로 유일하지만, 실제로 조례가 집행되지는 않았다. 금천구청 복지지원과 정진원 주무관은 “조례는 올해 시행되지만, 현재 예산이 잡혀 있지 않아 바로 시행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무연고 사망자가 입관하기 전 간단히 빈소를 차려놓은 모습. 흔히 알던 빈소보다 텅 비었다.ⓒ나눔과나눔

 

 

◇“존엄하게 살 권리 있으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

2011년 출범해 홀몸어르신·기초생활수급자·무연고자 장례 지원을 해온나눔과 나눔의 박진옥 사무처장은 저소득층 공영장례 지원에서 더 나아가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식까지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으며,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으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

“시신 인수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던 아내 분이 있었어요. 아이가 2~3살 무렵 남편이 집을 나가 30년 동안 연락이 없었죠. 그리고 죽었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이 장례식에 오셨어요. 정말 밉고, 정말 원망스러웠을텐데 왜 그 미운 남편 장례식에 왔을까…. 장례식은 그런 거예요. 무연고 사망자들을 위한 장례를 치러주는 것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겁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어도 그 사람과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장례식입니다. 장례를 안했다면?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어 평생 한이 됐을 겁니다.”

서울시는 ‘공영장례’의 당위성에 공감해 내년 상반기 시범 시행할 계획이다. 서울시청 어르신복지과 박영실 주무관은 “기초수급자와 무연고 사망자들에게 간소하게나마 빈소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골자로 한 공영장례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례 발의를 맡은 서울특별시의회 이문성 전문 위원은 “고독사와 같이 마지막까지 불행했던 사람들의 시신을 챙겨주지 못하는 장면을 볼 때, 국민으로서 나라가 자신을 마지막까지 책임져 주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공공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며 발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타 지역까지 뻗어나가지 못한 ‘공영장례’

하지만 아직 이같은 담론이 타 지역으로는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진구 쪽방촌 상담소 관계자는 ‘무연고자 또한 존엄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장례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원을 해주면 좋긴 하겠지만, 살아생전에도 교류가 없던 분들이 돌아가시고 빈소를 마련한다고 해서 추모하러 찾아올 분들이 있을까 싶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박진옥 사무처장은 “공공서비스란 국가가 개인들이 더이상 대면할 수 없는 문제들에게 대해 사회보장을 통해 개입한다는 의미”라며 “지금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무연고자의 가족에게 시신을 포기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가장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그 사회가 얼마나 수준 있는 사회인지를 알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사회가 산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따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합니다.

 

박지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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