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4일(목)

편견 없는 이곳… “우린 장애인 고용해 장려금도 받아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르포
모기업 출자 지분 50% 넘고 직원 30% 이상 장애인 고용
전문 교육 및 수화 통역사도 배치, 병원·IT 기업 등 일터 다양해져

3420억원. 기업들의 한 해 장애인고용부담금 총액이다(2014년 기준). 상시 5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직원의 2.7%를 장애인으로 고용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2008년 1월부터 장애인의 직접 고용을 보완하기 위해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하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제도를 시행했다. 출자 지분이 50%를 넘고, 직원의 30%(중증장애인 비율 50%)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는 자회사를 운영하면 된다. 자회사의 고용 장애인은 모회사에서 고용한 것으로 간주돼, 기업의 장애인고용부담금이 줄어든다. 또한 정부는 이 사업장에 대해 최대 10억원의 지원금과 고용장려금도 지원한다. 현재 37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50대 기업 중에서는 11개 기업이 표준사업장 14곳을 설립·운영하고 있다.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이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까. 더나은미래가 그 현장을 방문해봤다. 편집자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를 통해 기업은 고용부담금도 감면받고, 사회적 책임도 다할 수 있다. 캐논코리아의 자회사 표준사업장 ‘엔젤위드’ 현장. /엔젤위드 제공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를 통해 기업은 고용부담금도 감면받고, 사회적 책임도 다할 수 있다. 캐논코리아의 자회사 표준사업장 ‘엔젤위드’ 현장. /엔젤위드 제공

“휴일이 되면, 월요일이 기다려져요.”

이현숙(58·뇌병변 3급)씨는 매일 아침 6시가 되기 전 집을 나선다. 정식 출근 시각은 7시 30분이지만, 1시간 전에 도착한다. 회사 오는 길이 그렇게 즐겁단다.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던 이씨는 10년 전,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려졌다. 이후 왼쪽 신경이 모두 마비됐다.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증에 심하게 시달렸다. 지인의 추천으로 2014년 7월부터 ‘오픈핸즈(삼성SDS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지원사업팀에서 일하고 있다. 이씨는 “뒤뚱뒤뚱 걸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는데 이곳에서는 장애인이라고 편견을 가지는 일이 전혀 없다”고 했다. 마음이 밝아지니 몸도 호전됐다. 이씨는 걸음걸이도 한층 당당해졌다고 했다. “이전에는 식구들한테 짜증만 냈는데 회사 다니고 나서는 불화가 없어요. 항상 즐겁고, 너무 행복해요.”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에 월급은 70만~80만원선.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2010년 설립된 ‘오픈핸즈(삼성SDS)’는 IT업계 최초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2011년 말 50명이었던 회사 직원이 4년 만에 185명으로 4배가량 증가했다. 오픈핸즈는 삼성SDS의 주요 협력회사 중 하나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하거나 웹 보안성을 점검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IT사업팀과 지원사업팀으로 나눠서 채용하는데, IT사업팀의 경우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라 채용 시스템은 복잡하다. 입사 예정자는 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에서 3~6개월간 ICT 기본교육을 받는다. 입사 후에도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교육이 계속 진행된다. 현재 IT사업팀 94명 중 절반 이상이 한 개 이상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로 입사 4년 차에 접어든 유재훈(31·시각장애 5급)씨의 업무는 웹페이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하는 작업이다. 유씨는 “직장에서 연금이나 상여금도 나오고 복지 혜택도 있어 진짜 직장인이 된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김인종 오픈핸즈 대표는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제도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강조되는 시대에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장애인 평균 고용률 1.5%, 장애인들의 설 자리 만들어준다

최근 5년간 장애인 평균 고용률은 1.5%. 표준사업장 제도는 장애인들이 사회에 ‘설 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2013년 엔젤위드(캐논코리아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에 입사한 한대연(35·청각장애 2급)씨는 자동차와 반도체 회사 여러 곳을 전전하다 엔젤위드로 이직한 케이스다. 엔젤위드는 프린터, 복사기, 스캐너, 복합기 등 사무자동화 기기를 만드는 기업이다. 한씨는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도 일할 기회를 얻어 좋다”면서 “이전 회사에 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차별이 없고, 회사에 수화통역사도 있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엔젤위드의 장애인은 49명. 이들은 제품 상담 업무나 사무자동화기기를 조립한다. 매출은 연간 34억원 정도다.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에게 적합한 ‘업무’를 발굴하는 것이 핵심이다. 장애인보호시설이 아니기 때문. 업무 방식을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엔젤위드는 일자형 ‘컨베이어벨트’ 방식의 조립 라인을 ‘셀(cell)’ 방식으로 바꿨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긴 공정을 여러 단계로 쪼개, 한 부분을 한 셀(5~6명 규모)이 책임지는 것이다. 작은 단위로 의사소통이 진행되다 보니 실수가 줄어든다. 무엇보다 셀 안에서 한 사람이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메울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의사소통이나 이해력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 전략이다. 엔젤위드의 주춘오 부서장은 “협력 시스템을 통해 이전보다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모회사·자회사 윈윈(win-win)하는 업무 개발 필요해

모기업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행복두드리미는 효성ITX가 2013년 설립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효성ITX는 콜센터, IT 서비스 제공 전문 업체로 임직원은 7700명이 넘는다. 행복두드리미의 김현수 경영지원본부장은 “콜센터 업무 특성상 모기업 직원들의 감정노동이 심한 편”이라면서 “사내 카페와 네일아트실, 헬스키퍼실 등 임직원들의 복지 서비스 사업을 행복두드리미가 수행하는 모델을 생각해냈다”고 했다. 장애인 의무고용에 대한 부담금도 줄이고, 직원들의 복지도 향상시키겠다는 목표였다. 행복두드리미 총 직원 수는 35명. 당산·영등포점을 비롯해 서울시내 4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네일(손톱) 관리를 받는다는 조은미 효성ITX 인사팀 대리는 “사내 카페가 생긴 것도 좋고 짬짬이 네일아트를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다”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 포인트로 이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을 가까이서 만나고 소통하는 기회가 많이 생기다 보니 편견도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의 장애인 직무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IT기업, 병원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이 참여하면서 업무까지 개발되고 있는 것. ‘가천누리(가천대 길병원 표준사업장)’의 직원 32명은 모두 장애인이다. 이들은 수기로 작성된 진료기록부를 스캐닝한 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기존에는 아르바이트생이 하던 업무였다. “당시 매년 4억~5억 정도 부담금을 내고 있었어요. 병원에서는 장애인이 근무하기 쉬운 환경이 아니었어요. 돈도 돈이지만, 장애인들에게 좋은 직장을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였어요.”(한문덕 가천누리 대표) 저신장장애인 지수원(21)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가천누리에 입사했다. 지씨는 “장애인사업장이다 보니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아 일하기 좋다”면서 “청년실업이 심각한 시대에 일찍 취업에 성공해 부모님 걱정이 한층 줄었다”고 했다.

한편 올해부터는 장애인 고용부담금 부담 기초액도 월 71만원에서 75만7000원으로 인상됐다.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1인당 126만270원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상시근로자 1000명인 기업에서 장애인 5명을 고용(장애인 고용률 0.5%)하고 있다면 약 1억6400여만원의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설립해, 장애인을 28명 채용하면 고용부담금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1억1300만원의 장려금까지 받을 수 있다. 자회사 설립 후 연간 2억7000만원의 경제적 효과를 얻게 되는 셈이다. 또한 2016년까지 설립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최초 소득이 발생한 과세연도의 개시일부터 3년간 법인세 또는 소득세를 100% 감면받을 수 있고, 그다음 2년간은 법인세 또는 소득세의 50%를 감면받을 수 있다.

김경하·오민아 기자

김지혜·유경선 청년기자(청세담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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