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대학생이 바꿉니다, 미화원 어머니의 삶

달라진 대학가 풍경

서강대 인기 주점 ‘어머니 손맛’
93명 미화원 모여 축제 때 운영… 매년 수익 절반 장학금으로 기부
숙명여대 커뮤니티 ‘대나무숲’
교내 비정규직 처우 개선 위해 4500명 학생 서명운동 동참도

“부침개 하나 주세요!”

지난달 20일 저녁, 서강대 축제 현장. 빨간 앞치마를 두른 50~60대 여성들은 전과 계란말이를 부치느라 분주했다. 음식을 주문하는 수십명의 학생들로 주점 부스는 북새통을 이뤘다. 서강대 여성 환경미화원들이 봄 축제 때마다 여는 ‘어머니 손맛’ 주점 풍경이다. 축제가 열리는 이틀간 93명의 미화원들은 두 조로 나눠 역할 분담을 하고, 시장조사와 메뉴 구성에만 일주일을 투자한다. 학교 측에선 축제 기간에 퇴근시간을 30분씩 앞당겨주고,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서빙 및 뒷정리를 돕고 있다. ‘어머니 손맛’이 7년 넘게 서강대 최고 인기 주점으로 자리매김한 비결이다. 2012년부터는 수익금의 절반을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김민희(가명·61) 분회장은 “2010년 서강대 개교 50주년을 맞아 미화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민들레장학금을 마련했는데, 매년 주점 수익금을 이에 보태 기부하고 있다”면서 “사실 수익금 기부는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시작한 것”이라며 웃었다.

실제로 서강대 학생들은 학내 미화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2007년부터 동아리 연합회는 미화원을 위한 정기 풍물교실을 진행해왔고, 2011년엔 사회과학대 학생들이 ‘맑음 교실’을 열었다. 컴퓨터·영어 교실, 네일 아트, 팔찌 만들기, 춤·노래 교실 등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미화원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다. 매주 열리는 맑음 교실엔 최소 학생 10명과 미화원 20명이 참여할 만큼 인기가 높다. 미화원들은 ‘어머니 손맛’ 주점 수익금의 10%를 맑음 교실에 기부하고, 학생들은 이를 다시 민들레 장학금에 기부해 나눔의 선순환을 이룬다. 맑음 대표를 맡고 있는 정민주(22·커뮤니케이션학과)씨는 “오히려 학생들이 더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20일 서강대 축제 현장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 주점 ‘어머니 손맛’에선 93명의 미화원 어머니들이 전과 계란말이를 직접 부쳤다. 수익금의 절반이 서강대 학생들의 장학금 및 동아리 활동비로 기부된다. / 김리은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5기) 제공
지난달 20일 서강대 축제 현장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 주점 ‘어머니 손맛’에선 93명의 미화원 어머니들이 전과 계란말이를 직접 부쳤다. 수익금의 절반이 서강대 학생들의 장학금 및 동아리 활동비로 기부된다. / 김리은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5기) 제공

 

◇달라진 대학 축제 풍경… 나누고 혁신하고

대학가 축제 풍경이 달라졌다. 학생들끼리 즐기는 문화를 넘어서 학내 미화원·경비원으로 수고하는 분들께 감사를 전하는 대학이 늘고 있는 것. 고려대 동아리연합회는 매년 가을 축제 때마다 학교 미화원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를 기획한다. 지난 9월 축제 땐 부스에 비치된 생수·비타민·양말·파스·견과류·반창고 등 미화원에게 필요한 물품을 학생들이 직접 구입해 에코백에 담아 전달하는 ‘기부백(Give Back·Bag)’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장에서 완성된 200개의 기부백(Bag)이 미화원들에게 전달됐다. 올해 여름방학 땐 교내 동아리들이 미화원들에게 풍물 및 댄스스포츠를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9월 축제 때 학생과 미화원이 합동 무대를 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화여대는 6년 넘게 학생들과 미화원들이 함께 축제 부스를 마련해 부침개를 팔고, 수익금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있다. 성신여대는 지난달 정문 앞 게시판을 활용, 학생들이 미화원들에게 전하는 감사 편지를 모아 카네이션과 함께 전달하기도 했다.

미화원의 수고를 덜기 위해 축제 문화 자체를 바꾼 대학들도 많다. 숭실대는 축제 기간에 ‘빈병존(Zone)’을 설치했다. “맥주병 등은 깨지기 쉽고 무거워 청소하기 힘들다”는 미화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빈 병을 수거하는 공간을 캠퍼스 곳곳에 마련한 것. 공병을 반환해 받은 보증금은 전액 미화원들에게 전달됐다. 성균관대는 축제 단골 무대 효과로 꼽혔던 ‘종이 폭죽’을 올해 전면 금지했다. 축제는 물론 종강 후에도 최소 20~30명의 학생이 미화원들의 일손돕기 자원봉사도 지속하고 있다.

1 성신여대 학생들은 미화원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정문 앞 게시판에 적었다. 2 숭실대는 학내 미화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식사 대접 행사를 진행했다. / 성신여대·숭실대 제공
1 성신여대 학생들은 미화원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정문 앞 게시판에 적었다. 2 숭실대는 학내 미화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식사 대접 행사를 진행했다. / 성신여대·숭실대 제공

 

◇SNS·공고문으로 서명 운동… 비정규직 처우 개선까지

“저희 어머니, 아버지 같은 분들입니다.”

지난 3월, 숙명여대 페이스북 커뮤니티 ‘대나무숲’엔 감사 메시지가 줄지어 올라왔다. “배가 너무 아파 쓰러져 있는데 미화원 아주머니가 약과 죽을 주시며 다독여 주셨어요” “‘바바리맨’을 마주쳤는데 경비원 분들이 달려와 주셨어요”…. 당시 경비원들은 학교 측이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해고 위기에 놓여 있었다. 10년 넘는 근무 기간에 유급휴가는 하루도 허락되지 않았고, 기본 24시간 근무에 대체 근로자가 없을 경우 최장 72시간까지 일해야 한다는 열악한 상황도 속속 드러났다. 역사문화학과 배미림(21)씨는 대자보를 써서 교내에 게시했고, 4500여명의 학생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SNS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용역업체와의 협상 과정은 실시간 페이스북에 공유됐고, 1000명 이상이 댓글과 ‘좋아요’로 열띤 응원을 펼쳤다. 학생들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경비원들은 전원 고용 승계를 약속받았고, 근무 시간도 12시간으로 줄었다. 미화원들의 임금도 전년 대비 30만원가량 인상됐다.

미화원과 숙명여대 캐릭터 '눈송이'가 손을 잡고 있는 일러스트.
미화원과 숙명여대 캐릭터 ‘눈송이’가 손을 잡고 있는 일러스트. /숙명여대 제공 

이처럼 대학 내 경비원·미화원 등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학생들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서울대는 학내 2300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플랫폼 ‘빗소리’를 만들었다. 지난 1월 서울대 셔틀버스 하도급업체 소속 기사가 분신 자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청소·셔틀버스·경비·식당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등에 올리고 있다. 게시물은 600건 이상 추천을 얻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김윤혜(22·철학과)씨는 “비정규직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을 극복하는 등 일반 학생들의 인식 개선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학내 2300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플랫폼 '빗소리'를 만들었다.
서울대는 학내 2300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플랫폼 ‘빗소리’를 만들었다. /서울대 제공 

이뿐만 아니다. 성균관대는 미화원들에게 점심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본도시락과 제휴해 1만원 상당의 도시락을 5개월간 후원했다. 한국외국어대는 지난 5월 미화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깡통과 페트병은 작은 쓰레기통에 버립시다’ ‘정수기에 라면 국물을 넣지 맙시다’ 등 안내 문구를 곳곳에 붙여 환경 개선 효과를 얻어냈다. 가톨릭대 역시 미화원들의 애로사항을 듣는 다과회 ‘그루터기’를 개최하고, 청소를 대신하는 봉사 및 분리수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김리은·김민주·김지현·오다인·이기욱·이슬기·한동희·한미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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