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 ‘정치로 푸는 기후 위기’ 해법을 논하다

성수동서 열린 ‘기후에너지 혁신간담회’…“정파 넘어 협력해야”
英 보수당 의원단·韓 혁신기업들, 전환 비용·기술 해법 논의

“에너지 전환은 본질적으로 정치의 문제다. 화석연료 산업이 퇴조하고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장다울 오션에너지패스웨이 한국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기후에너지 혁신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에너지 논의가 지나치게 정쟁화돼 피로감이 크다”며 “영국은 정파 간 차이가 있어도 활발히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기후에너지 혁신간담회’ 현장의 모습. /김규리 기자

이날 간담회에는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과 김세연 전 의원을 비롯해 영국 보수당의 마크 가니어(Mark Garnier) 하원의원, 바로네스 커피(Baroness Coffey) 상원의원 등 영국 정치인 2명이 참석했다. 식스티헤르츠, 도시유전, 오션에너지패스웨이 등 20여 개 기후·에너지 혁신기업과 단체 관계자들도 함께 자리했다. 참석자들은 글로벌 정책 연계와 산업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정치와 기술의 균형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공유했다. 아래는 주요 참석자들의 발언이다(이름 가나다순).

지난달 30일 열린 ‘기후에너지 혁신간담회’에서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김용태 의원실

김세연 前 국민의힘 의원 

“에너지 문제를 정쟁에서 분리하려는 시도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였다. 당시 원전에 대한 진영 간 대립은 극심했지만, 시민배심원단 500명이 4개월간 학습과 토론을 거듭한 끝에 공사 재개로 결론을 냈다. ‘비정치화’라는 명분 아래 논의를 배제하기보다, 정치의 절차 안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토론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정치가 기후 문제를 다룰 때 생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감축은 중요하지만, 생산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만 가서는 안 된다. 보수 정치가 기후변화 대응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은 기술에 있다고 본다. 탄소를 포집하거나 줄일 수 있는 기술에 적극 투자하고, 자발적인 탄소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 기업이 친환경적 생산 공정으로 전환할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탄소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보수 정치의 역할이다.”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

“에너지 문제는 여전히 정치 논쟁의 중심에 있다. 과거 에너지 스타트업 대표로 토론에 나섰을 때, 재생에너지 정책 질문만으로도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의 에너지 시장은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공이 주도하는 계획경제에 가깝다. 앞으로는 민간과 시장의 역량을 키워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영국의 독립 규제기관 오프젬(Ofgem)처럼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지난달 30일 열린 ‘기후에너지 혁신간담회’에 참여한 마크 가니어(Mark Garnier) 영국 하원의원(좌측에서 두 번째)과 바로네스 커피(Baroness Coffey) 영국 상원의원(좌측에서 세 번째)의 모습. /김규리 기자

마크 가니어(Mark Garnier) 영국 하원의원

“영국에서도 기후와 에너지 전환은 매우 정치적인 사안이다. 모두가 탈화석연료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속도와 방법에서 의견이 다르다. 풍력·조력·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다양한 에너지원이 논의되고 있으며, 우주 태양광 발전 같은 차세대 기술에도 관심이 높다. 문제는 ‘언제, 어떤 비용으로 전환하느냐’다. 북해의 가스 생산을 전면 중단하면 국내 수요는 여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해외에서 더 비싼 가스를 수입하고 탄소 배출이 늘어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시장의 원리를 존중하면서 산업과 지역이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바로네스 커피(Baroness Coffey) 영국 상원의원

“기후위기 대응에서 협력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민간이 앞장설 때 훨씬 빠르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영국의 ‘오프쇼어 윈드 위원회(Offshore Wind Council)’는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해상풍력 정책을 논의하는 민관 협의체로, 재생에너지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되어왔다. 다만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비용 부담은 여전히 큰 과제다. 세금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민간 자본과 금융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한국의 국영 에너지 기업 구조가 이런 과제를 어떻게 풀지 주목하고 있다.”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

“조선산업은 탄소 감축 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선박 한 척이 배출하는 탄소량이 워낙 많아 탈탄소 전환은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과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온난화’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생존의 문제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40% 이상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만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남은 시간은 5년, 약 2억8000만 톤을 줄여야 한다. 지금은 보수와 진보를 따질 때가 아니라 기술이 정치보다 앞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형근 도시유전 사업본부 전략기획부문장

“폐기물 기반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지역사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자체의 정책 결정권이 주민 민원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기업들은 매출의 일부를 지역에 환원하거나 주민사업을 지원하며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공 인프라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마련돼야 산업이 지속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김용태 의원은 다음 날(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KOR-UK 보수당 기후에너지 라운드테이블’에서 “지속가능한 녹색경제를 위해 보수정당 간 국제협력이 필요하다”며 ‘글로벌 녹색성장 보수정당 협의체(가칭)’ 설립을 공식 제안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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