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부문화 확산’ 한다는 국세청, 비영리 연구 활용엔 “정보 못 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해부터 ‘공익법인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한국NPO공동회의는 국세청 공시시스템에 올라온 9000여 개 공익법인의 결산서류 등을 손수 다운로드했다. 이를 위해 연구보조원 10명을 새로 고용했고, 자료를 다운받고 일일이 코딩하는 데만 5개월이 걸렸다. 국세청에 수차례 공시자료 로데이터(원본자료) 제공을 요청했지만, ‘국세청 고시에 의해 제공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최근 비영리 현장에서는 공익법인 국세청 공시 자료에 대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공시자료는 누구에게나 공개된 공공 데이터임에도 사실상 전체 데이터에 접근할 길이 없다는 것. 현재 우리나라 공익법인 중 자산 5억원 또는 수익 3억원 이상의 단체는 국세청 홈택스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 공시시스템’에 결산서류, 기부 금품의 모집 및 지출 명세서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하고 있다. 국세청 공시 시스템에서는 특정 단체의 이름을 검색해야만 자료를 볼 수 있고, 단체 간 비교 분석을 하려면 각 단체의 공시자료 파일을 일일이 다운로드해야 한다. 기부자와 대중은 물론, 연구자들의 공시 자료 활용이 쉽지 않은 이유다.

2012년, 정부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을 ‘국세청장이 지정한 공익법인’에 제공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후 국세청은 2013년과 2016년 고시를 통해 공익법인 결산서류 데이터 수령 법인으로 (재)한국가이드스타(이하 가이드스타)를 단독 지정했다. 가이드스타는 이를 가공해 비영리정보시스템을 운영해왔으며, 지난 2017년부터는 비영리 평가지표(GSK2.0)를 개발해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단체들을 매년 별 3개 만점인 별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pixabay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공시자료 로데이터를 가이드스타에 독점 제공하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간기관 한 곳이 불완전한 국세청 공시자료로 단체를 평가하고, 이를 공표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 최호윤 삼화회계법인 회계사는 “현 결산 공시 양식은 항목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등 사실을 반영할 수 없는 불완전한 형식”이라며 “현재 공시자료를 기반으로 별을 매겨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이드스타가 지난 3월까지 기업 회원에게만 특정 자료를 제공해왔음이 알려지면서 “국세청이 특정 민간기관을 지원하는 셈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가이드스타는 일정 금액을 재단에 후원한 기업들에 골드·다이아몬드 회원 등급을 부여, NPO경영진단보고서와 도너비게이터(NPO 분석 설루션)상 ‘대기업 출연금 정보’ 등을 열람할 수 있게 해왔다.

이에 대해 가이드스타 담당자는 “NPO경영진단보고서는 가이드스타가 기존 후원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제공한 혜택으로, 후원 여부와 무관하게 일반 회원도 요청하면 받아볼 수 있는 자료를 재구성한 것”이라며 “지난 3월 국세청에 소명해 수익 사업이 아님을 확인받았다”고 해명했다. 공시자료 독점 논란에 대해서는 “가이드스타는 공시 내용을 제공받을 공익법인을 모집하는 국세청 공고를 통해 선정된 것으로, 국세청이 타 기관에 자료를 제공하는 데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공시자료가 활용 불가능한 수준에 머무른다면, 학계 및 연구자들의 비영리 영역에 대한 제안과 연구의 길도 막히게 된다. ‘기부 문화 확산과 공익법인 등의 발전’을 위해 공시자료를 제공한다는 국세청 고시상의 목적과는 멀어지는 셈이다. 더나은미래도 ‘비영리 지형도 분석’ ‘비영리 부동산 대해부’ 등 비영리 생태계를 조망하는 기사를 취재하며 자산 순위별 공익법인 리스트 등에 대해 국세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순위별 자료는 세부적인 공시 내용에서 나오는 것이라 공개가 불가능하며 전체 평균치 정도만 제공할 수 있다”고 통보를 받았다.

이에 대해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상증세법 시행령이 국세청장이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대상을 ‘지정 공익법인’으로 한정하면서 범위가 좁혀진 것”이라며 “공시자료는 이미 공개된 것으로, 로데이터를 제공받는 기관을 몇 군데 더 지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세청 공시시스템만 쉽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구조로 바꿔도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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