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6일(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금 아이디어에 캠페인 이름까지… 비영리 업계 도넘은 베끼기

최근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이 고민에 빠졌다. 지난 2013년부터 진행해온 ‘열여덟 어른’ 캠페인 때문이다. 열여덟 어른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나와 혼자 살아야 하는 보육원 출신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을 알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이 캠페인이 여러 언론 매체에 보도되고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면서 똑같은 캠페인명을 내걸고 모금하는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열여덟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는 단체는 대략 5곳.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는 “보호 종료 아동 문제가 관심을 받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재단에서 공들여 만든 캠페인 이름을 상의 없이 가져다 쓰는 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진행하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 홈페이지 화면.

성공한 모금명이나 기획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하는 건 비영리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5년 차 비영리단체 활동가 A씨는 “비영리가 대체로 영세하니 서로 참고하며 돕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0년 차 활동가 B씨도 “모금 캠페인은 특정 사회문제에 대해 알리는 ‘옹호’ 측면도 있기 때문에 비슷한 사업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본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 단체의 모델을 참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베끼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모금 전략이나 슬로건은 단체의 철학과 현장 사업 역량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면서 “남의 기획을 베껴서라도 모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단체들은 대체로 사업 내용보다 모금을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사업을 수행할 역량도 부족하다”고 했다.

다른 단체들의 성공한 캠페인만 골라 모금 활동을 하는 단체까지 생기면서 활동가들 사이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호 종료 아동 지원, 생리대 지원 등 전방위적 모금을 펼치는 C단체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가 모금을 진행하며 내건 홍보 문구와 스토리텔링 방식, 디자인 요소가 다른 단체에서 만든 것과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 보호 종료 아동 캠페인은 ‘열여덟 어른’을 그대로 베꼈고, 생리대 지원 모금에서 사용한 이미지와 스토리텔링 문구, 글씨체 등 디자인 요소는 굿네이버스의 캠페인과 구별이 안 될 정도다. 한 비영리재단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활동가는 “비영리단체 홍보물은 홍보 담당자가 사업 담당자와 수혜자 등 관계자들을 만나며 고심해 만든 결과물”이라며 “그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대놓고 지적하진 못해도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런 베끼기를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저작권 침해는 상당한 수준의 독창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일상적인 언어를 조합한 캠페인 이름이나 추상적 아이디어인 기획이 입은 피해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론화도 어려운 상황이다. 공익 활동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가 자칫 기부금을 두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억울해도 참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는 “열여덟 어른이라는 캠페인이 늘어난 것 자체를 ‘재단이 펼친 옹호 활동의 성과’로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영리 내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신애 이사는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책무성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 “좋은 일을 하니 절차적 정당성엔 일부 느슨함이 있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활동을 이어가자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