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와글와글] 4년간 후원해온 결연 아동이 ‘20만원 짜리 점퍼’ 요구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결연아동 선물 둘러싼 갑론을박   

 

지난 7일, 한 온라인 포털 사이트의 커뮤니티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글의 제목은 ‘20만원짜리 점퍼를 선물로 요구한 후원 아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4년간 한 아동을 일대일 결연 후원해왔다는 36세 직장인 A씨가 올린 글이었다. 

글에 따르면, A씨는 2013년 10월부터 어린이재단을 통해 매달 3만원씩, 1년 전부터는 월 5만원씩 한 11세 아동을 후원해왔다. 매년 생일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보냈고, 아동에게 형제가 두 명 있음을 알고는 세 명의 선물을 사서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최근 아동에게 편지를 보내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비싼 것 말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얘기해달라”고 물었고, 기관이 보내온 문자메시지에는 모 아웃도어 브랜드 패딩 점퍼의 상품명과 사이즈가 적혀왔다. 

실제 아동이 꼽은 점퍼의 온라인 시중가는 약 20만원대. A씨는 후원 아동이 본인을 “후원자가 아닌 물주로 생각했다는 감정이 들었다”며 “그동안 선물했던 것을 아동이 싸구려처럼 생각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상하고 열받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해당 기관 사이트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글을 썼지만 기관 측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후원을 끊었고, 전산오류로 후원아동 정보가 지워졌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아동과의 만남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기관이 단 한 번도 만남을 주선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후원 남성이 올린 글의 일부를 캡처한 이미지. 현재 원글은 삭제된 상태다.

 

◇조회 수 25만개 넘으며 온라인서 화제…기관 입장은

 

해당 글은 등록 하루 만에 조회 수 25만 명, 댓글 600여개가 달리며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았다. A씨가 24시간 만에 글을 삭제했지만, 이미 타 사이트 주요 커뮤니티에 공유된 글에도 1000여개 넘는 댓글이 달리며 주말 내 화제였다. 어린이재단 측은 글의 내용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는 입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후원자(A씨)가 먼저 ‘선물로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으면 요새 유행하는 롱패딩 점퍼를 보내줄게’라고 편지에 썼다”며 “후원자가 4년 동안 약 15만원 상당 선물을 보내왔기에 정황상 괜찮을 것으로 판단해 아동이 알아본 상품명을 전달한 것”이라 했다. 

재단 측은 “구체적인 모델명까지 전달해 후원자를 언짢게 한 것은 기관의 실수”라고 인정했다. 관계자는 “후원자가 먼저 온라인으로 후원중단 요청을 했고 사유를 묻는 전화에도 재차 중단 요청을 해 중단 처리한 것이며, 전산오류는 당시 다른 후원자에게도 똑같이 발생한 우연의 일치”라며 “후원 아동과의 만남은 온라인이나 전화로 언제든 신청할 수 있으나 후원 아동의 의사를 확인하고 나서 주선하는 것으로, 아동이나 가정이 원하지 않으면 기관이 강제로 요청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어린이재단은 11일 오후 A씨가 글을 올린 커뮤니티에 입장문을 올려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새희망씨앗, 이영학 사건 등으로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여전히 모금기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담은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글을 보고 몇 년간 지속해온 후원을 중단했다는 댓글도 있었다.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해당 브랜드 점포를 운영하는 분이 글을 보고 패딩을 보내주겠다고 연락해왔고, 해당 아동을 후원하고 싶다는 분도 나타났다”며 “정확한 기록을 제공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최종적으로 후원자(A씨)가 후원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A씨의 후원 아동이 특정한 브랜드의 패딩 점퍼. 시중가 20만원으로, 유명 아이돌이 광고를 찍어 10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후원받는 아동이 고가 브랜드 얘기하나” VS “애초에 조율 못 한 기관 잘못”…네티즌 반응 이모저모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누구의 잘못이냐’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네티즌은 “타 기관은 후원자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선물금으로 쓸 금액을 미리 정하면 기관이 아이에게 필요한 걸 사다준다”며 “후원자에게 ‘아동이 무엇을 갖고 싶어한다’며 전달하는 기관의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모금단체들의 ‘가난 마케팅’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자신보다 어려운 아이를 돕고자 한 건데 자기보다 여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이면 저런 마음 드는게 당연하지 않나”라며 “결국 가난 마케팅을 한 후원 단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후원 아동과 가정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후원이 벼슬도 아닌데 받는 입장에서 브랜드를 골라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한 네티즌은 “빅이슈 판매원들이 길에서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려 ‘제가 입은 브랜드 패딩은 후원받은 겁니다’라고 외친다는 기사를 봤다”며 “가난하면 평생 싸구려만 입어야 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기부는 그 아이가 가난함을 벗어나도록 사다리가 되어주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부 문화는 이상하게 아이가 그냥 먹고살 정도만 유지하길 바라는 느낌이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일련의 사태를 통해 기부나 후원, 모금단체 일반에 대해 거부 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댓글도 많았다.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 “후원 같은 건 하는 게 아니다”부터 “요새 광고를 심하게 하는데 그 비용은 어디서 나는 거냐”는 의심 섞인 의견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해당 기관을 비롯해 모든 모금단체 직원들의 월급과 인센티브, 복지 등을 다 공개하라”며 “몇 년간 기부해왔는데 의구심이 든다”고도 말했다.

어린이재단이 올린 입장글의 댓글 창에서는 여전히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올라온 기관 해명글에 달린 댓글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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