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깎아도 너무 깎아… 우리가 자원봉사단체인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영리단체에 쏟아지는 기업의 甲질

“하다못해 부부가 갈라설 때도 숙려 기간을 갖지 않습니까? 두 단체가 수년을 같이 일해왔는데, 이런 식으로 관계를 끊어버리면 기관 간의 관계는 그렇다치고 이 사업에서 수혜받는 아이들한테는 갑자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걸 대체 어떻게 설명합니까?”

아동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모 비영리 재단 관계자 A씨의 말이다. 이 재단은 3년 전 한 기업이 제안을 해와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브랜딩’ 작업에서부터 파일럿 프로그램 개발과 프로그램 실제 진행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잡아나가는 어려움만큼 보람도 컸다. 이후 3년을 함께 진행했다. 프로그램도 자리가 잡히고 브랜드도 굳어졌다. 3년 사업이 끝난 후 다음해 사업도 당연히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지만, 한순간에 뒤집혔다. 기업에서 “사업은 계속 진행할 예정이지만, 여러 비영리단체 간 입찰 경쟁을 부쳐 시행 단체를 결정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재단의 약 10배 규모인 다른 비영리 재단에서 같은 사업을 가져가게 됐다. A씨는 “좋은 사업인데 기업에서 관두지는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인가 싶다”면서도 “우리를 지금까지 3년 동안 공들여 함께 사업을 쌓아올려 온 파트너라고 여기긴커녕 자기들이 돈 낸 사업 대행해주는 ‘하도급업체’로 여기는 게 극명히 드러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기업과 비영리단체, 두 기관의 파트너십을 두고 ‘기업의 갑(甲)질이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기업과 비영리단체 갑을 관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기업의 사회공헌’이 비영리단체 후려치기와 경쟁, 줄세우기로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가 안 좋아지고 기업 내 사회공헌이 위축되면서 그 부담이 비영리단체로 더 전가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하는 B씨는 “앞에선 사회공헌이라고 말하면서 뒤에선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토로했다. 사업 제안을 하면서 책정한 200만원 인건비가 너무 비싸다고 지적해 울며 겨자 먹기로 150만원까지 내렸지만, “사회복지기관에서 아무래도 이건 너무 높은 게 아니냐”며 100만원까지 깎았다는 것이다. B씨는 “비영리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기본 생활은 가능해야 하고 조직도 운영이 가능해야 굴러가는 건데, 인건비를 이 정도까지 깎고 결과는 최고를 기대하는 게 황당하다”고 했다. 비영리단체에 종사하는 또 다른 한 관계자는 “기업에 제안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 기획안을 짜는 건 인력·시간·아이디어 등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기업에선 그걸’너무나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며 “모 기업과 사업 관련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의사 결정자가 바뀌는 바람에 사업을 확정하기까지 일년 남짓이 걸렸고, 그 사이에 기획서는 열댓 번을 수정해야 해서 인력은 인력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투입됐는데 결국 진행된 프로젝트는 기업에서 준 기획안이었다”고 했다.

정부는 어떨까. 아동 관련 비영리 기관에서 종사하는 C씨는 “정부와 기업이 비영리단체의 가장 큰 경쟁자”라고 지적했다. 비영리단체에서 수년에 걸쳐서 만들어놓으면 정부나 기업에서 비영리단체의 사업을 베껴서 직접 한다는 것이다. C씨는 “물론 민간이 잘하던 사업을 공공에서 가져가 더 잘 확산시키고 제도권 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면 좋지만, 많은 경우 사업도 제대로 안되고 비영리단체 밥벌이만 빼앗긴다”고 했다. ‘어린이 경제교육’은 그 한 예다. 초기에는 비영리단체들 주도로 시작됐지만 정부는 2009년 경제교육지원법을 공포하고 한국경제교육협회를 경제교육 주관 기관으로 지정했다. 이후 3년간 민간단체에서 경제교육을 진행하는 비율은 훨씬 줄어든 반면, 공공기관에서의 교육 횟수 및 유형은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후 국고보조금을 총 268억원 받은 한국경제교육협회가 요건 미달에 횡령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년 넘게 비영리기관에서 일해온 한 전문가는 “부족한 인력과 자원에도 사회문제를 해결할 다양한 사업을 해오고 있는 비영리단체를 지원하기는커녕 착취하는 구조가 계속되다 보니 갈수록 비영리에서 일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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