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8일(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법원마다 다른 결정

트랜스젠더 여성 A씨는 지난 2015년 법원으로부터 성별 정정 허가를 받았다. 법원을 한차례 옮긴 끝에 얻어 낸 결과다. 처음 성별 정정을 신청했던 지방법원에서는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성별 정정을 해주지 않았다. 재신청해 봤자 다시 기각될 게 뻔했기 때문에 A씨는 등록기준지를 옮겨 다른 법원에서 절차를 밟았다. 성별 정정은 가족관계등록부상 등록 기준지의 관할 법원에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청한 법원은 A씨를 법적인 여성으로 허가했다.

같은 사례를 놓고도 법원이나 배당 판사의 재량에 따라 성별 정정 허가 신청의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 성별 정정에 대한 명시적인 법률이나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 2006년 6월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사상 첫 성별 정정 판단이 나온 뒤, 같은 해 9월6일 마련된 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 유일하다. 하급심 법원들은 성별 정정 요건을 명시한 예규에 근거해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예규에 명시된 요건을 법원이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례라도 결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에서는 이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왔다. 사법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일부 하급심에서 대법원 결정과 다른 이례적인 판단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다. 지난 2013년 서울서부지법은 외부 성기를 갖추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에게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당시 재판부는 “어떤 사람을 남성이라고 판단함에 있어 의복, 두발 등 신체의 외관과 목소리, 행동거지 등이 남성적이면 FTM(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 정정)이 외부 성기를 형성하지 아니했어도 남성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마련된 예규에는 여전히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여부’를 요건으로 두고 있다.

일부 담당 판사들이 심문 과정에서 저지르는 인권침해도 문제다. 지난 2018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에서 발표한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절차 개선을 위한 성별 정정 경험 조사’에 따르면, 성별 정정 신청자들은 심문 과정에서 ‘나중에 장인어른한테 얘기할 거냐’ ‘굳이 왜 하냐’ ‘수술 다 해봐야 어차피 불완전하지 않느냐’ ‘성별 정정이 된다고 해서 완벽한 남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병원에서만 진단서, 수술 확인서 받아 오는데 우리가 이거 믿어야 하는지’ 등 각종 모욕적인 질문을 받았다고 조사됐다. 송지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똥 변호사는 “성 정체성은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바꾸는 게 아니다”라며 “법률상 성별을 바꾸는 것을 ‘변경’이 아닌 ‘정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대법원은 예규 일부 수정을 통해 성별 정정 절차를 간소하게 바꿨다. 이번이 8번째 개정이다. 기존에 반드시 제출해야 했던 ▲가족관계증명서 ▲2명 이상 정신과 전문의 진단서나 감정서 ▲성전환 시술 의사 소견서 ▲생식능력 없다는 전문의 감정서 ▲2명 이상 성장 환경 진술서 및 인우 보증서 등이 ‘참고용’ 제출 가능 서류로 변경됐다. ‘2명 이상’을 요구하던 문구도 삭제됐다. 해당 예규는 다음 달 16일 시행된다. 국내 40개 인권 단체 연합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 28일 성명을 통해 “성별 정정 절차에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건 서류상 부담만이 아니라 서류 작성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는 문제, 판사의 인권침해적인 질문,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심리” 등이라며 “올해 초 다양하게 드러난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성별 정정 특별법을 포함한 관련 법 제도가 마련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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