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림의 떡’ 돼버린 세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만2156원.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1년간 개도국 발전을 위해 부담하는 공적개발원조(이하 ODA) 비용이다. 2012년 26.6달러에서 2년 새 10달러나 증가했다. 이 돈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하 코이카), 한국수출입은행이 운용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이하 EDCF)을 통해 유·무상원조로 지원된다. 우리가 낸 세금은 개도국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제대로 쓰이고 있을까. ODA 감시 단체인 ‘ODA Watch’와 함께 캄보디아에서 진행된 코이카와 EDCF 사업 현장을 모니터링했다.

코이카(KOICA)가 캄보디아 캄퐁참주 크로치마군에 설치한 핸드펌프와 바이오샌드필터의 모습.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설치하는 바람에 방치된 채 주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ODA Watch 제공
코이카(KOICA)가 캄보디아 캄퐁참주 크로치마군에 설치한 핸드펌프와 바이오샌드필터의 모습.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설치하는 바람에 방치된 채 주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ODA Watch 제공

“처음엔 식수로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더라고요. 비소로 오염돼 마실 수 없어요. 작동도 제대로 안 되고요.”

캄보디아 캄퐁참주 크로치마군에서 만난 주민들은 마을 어귀에 놓인 ‘핸드펌프(손으로 위아래 펌프질을 해 물을 끌어올리는 장치)’를 가리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캄보디아는 지형 특성상 비소 등 독성이 많아 우물을 깊이 파야 하는데, 20m로 얕게 파는 바람에 쓸모없어졌다는 것. 핸드펌프 옆에 놓인 ‘바이오샌드필터(모인 흙탕물을 정수해 식수로 만드는 장치)’ 역시 방치된 지 오래였다. 뚜껑을 열어보자 필터 내부는 녹슬어 있었다. 마을 촌장 츠어이 스러은씨는 “민간 업체에서 이미 수도를 설치한 뒤라, 꼭 필요한 장치도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2010년 코이카는 상습 침수 지역인 이 마을에 관개시설 및 농로 구축, 농업 생산성 교육 등 30억원 규모의 농촌 개발 사업을 시작, 3년간 지원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방문한 크로치마군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코이카가 준설한 저수지와 농업 교육 덕분에 생산량이 많이 늘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설치돼 결국 버려진 시설을 가리키며 ‘그 돈이 더 필요한 곳에 쓰였다면…’ 하고 아쉬움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을을 나오는 길. 방치돼 있던 적정 기술 제품에 ‘KOICA(코이카)’란 글씨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의 대표 관광 도시, 시엠립. 이곳 중심가에 있는 시엠립 주립병원에 들어서자 3층 규모의 ‘모자보건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코이카가 2010년부터 3년간 약 39억원을 투자해 건립한 병원이다. 병원 내부엔 한국 기자재들이 곳곳에 방치돼 있었다. 수술실 전등은 반년 넘게 깨진 채로 위태롭게 달려 있었고, 코이카가 지원한 신생아 보온장치(Infant Warmer) 역시 고장 나 있었다. 이 병원 의사들은 “기자재 활용에 대한 교육이 없었고, 매뉴얼은 영어·한국어로만 돼 있어 현지업체를 불러도 ‘못 고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말했다.

한재광 ODA Watch 사무총장은 “아무리 한국 제품이 질이 좋다고 해도 정확한 기술 이전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라면서 “국제개발사업의 기본은 해당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행히 병실에서 만난 출산 전후 임산부들이 평가한 모자보건센터의 서비스 만족도는 높았다. 다만 “인근에 있는 앙코르아동병원과 자야바르만7세병원은 비용도 무료고, 해외 전문 의사도 많은 데다가 교통비까지 준다”며 “차라리 시엠립에서 떨어진 지역에 모자보건센터가 더 필요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제왕절개수술을 한 또잇어웨이씨는 “지역 보건소에서 응급으로 이 병원에 수송됐다”며 “마을 주민 대부분 모자보건센터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시엠립 주립병원에서 도보로 5~10분 거리에 있는 앙코르아동병원과 자야바르만7세병원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에 따르면 모자보건센터엔 산과, 부인과, 소아과 등 3가지 기능이 필수적이다. 반면, 시엠립 주립병원은 입지 조건 때문에 1997년부터 소아과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백숙희 코이카 캄보디아 사무소 소장은 “가까운 곳에 경쟁 병원들이 있기 때문에 모자보건센터의 위치 선정이나 사전조사가 미흡한 부분은 있었지만, 접근성과 도시 유입력이 좋다는 장점도 있다”고 답변했다.

EDCF 사업 현장을 보기 위해, 시엠립에서 북서부 방향으로 3시간을 달렸다. 몽골보레이강 어귀엔 양철 판자로 덧댄 집들이 가득했다. 집집마다 대문에 빨간색 페인트로 쓰인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캄보디아 정부에서 써 붙인 이주 대상자 번호라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자원공사가 EDCF 자금 1870만달러(약 200억원)로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와 2011년 착공한 타헨댐, 캄핑푸이댐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 주민들은 “곧 우기인데 댐을 가동하면 저수지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가구들이 홍수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이주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거주지를 옮기지 못한 주민들도 대다수였다. 녀언 르은씨는 “저수지 내에서 연꽃 재배, 어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개발 사업으로 고정 수입이 사라졌다”면서 “제대로 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아 가족들 모두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주민들의 농업 개선과 삶의 질을 위해 시작한 사업임에도, 정작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선 캄보디아와 한국 정부 모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응언 꼬설 캄보디아 기상부 공무원은 “보상 절차에 합의하지 않고 이주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불법 거주자”라면서 “홍수 피해로 쓸려 내려가더라도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송일 한국수자원공사 단장은 “우리의 역할은 댐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보상 및 이주 문제는 캄보디아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에, 댐 가동 후 우리는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우리 세금으로 지원한 댐, 핸드펌프, 모자보건센터 등은 캄보디아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일까. 한국이 지원한 시설들이 ‘그림의 떡’이 되는 건 아닌지,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지 되새겨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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