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6일(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韓 활동가 파견 원하는데… NGO 구호활동 발목잡는 ‘여권법’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는 전 세계 국경없는의사회 지부 29개 가운데 유일하게 여행금지제도의 영향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한국 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료진과 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 예멘, 리비아 등 분쟁 지역에서 인도적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은 NGO의 인도적 지원조차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르단 람사(Ramtha)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외상 수술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재헌(오른쪽) 정형외과 전문의가 회복 중인 어린이 환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요르단 람사(Ramtha)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외상 수술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재헌(오른쪽) 정형외과 전문의가 회복 중인 어린이 환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우리 정부는 여권법 제17조에 따라 여행금지 국가에서 여권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자국민 보호’가 이유다. 이를 위반하면 여권법 제26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지난 2월 전쟁이 발생한 우크라이나도 현재 여행금지 국가로 분류돼 있어 인접국에서 구호활동을 진행해야 한다.

특수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 여권사용 신청 절차를 밟으면 여행금지 지역에 방문하거나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NGO’는 신청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영주(永住)권이 있거나 ▲공공이익을 위한 취재·보도를 하는 경우 ▲본인·배우자의 직계존비속 등이 사망하거나 사고·질병으로 긴급히 출국하는 경우 ▲외교·안보 임무나 재외국민 보호 등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이나 국제기구인 경우 ▲국가이익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는 기업인 경우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코펜스 사무총장은 “한국 의료진은 우수한 기술력으로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인도적 지원 요청이 들어와도 일부 국가에는 의료진을 파견할 수 없고, 이로 인한 인력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구호활동이 주요 사업인 NGO들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글로벌 NGO는 인도적 위기 현장에서 광범위한 지원 활동을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이라며 “한국 정부가 NGO 활동가의 입국을 무조건 제한할 것이 아니라 여권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설아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인도적지원팀 매니저는 최근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글로벌 차원의 ‘크로스보더팀(Cross Border Team)’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참여하지 못했다. 장 매니저는 “예외적 여권사용을 위해 외교부에 우크라이나 입국 신청 서류를 제출하고 국제 NGO의 업무 방식과 입국을 통한 활동의 필요성을 상세히 담은 승인 요청 공문도 보냈지만 결국 반려됐다”면서 “외교부는 ‘민간단체는 예외적 여권사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만 내고 있다”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 교전 지역을 벗어나 서부로 이동하는 국내실향민 710여 명을 지원하기 위해 크로스보더팀을 꾸렸다. 현재 팀은 리비우(Lviv) 등 우크라이나 서부 주요 지역에 거점 사무소를 세워 활동 중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는 사정이 다르다. 이들 정부는 분쟁 취약국 등 특정 지역에 방문·체류할 것을 경고·권고하는 의무만 갖는다. 이 때문에 특정 국가에 입국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자국민을 기소하거나 처벌하는 경우도 없다. 자진 입국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은 모두 개인과 기관이 책임지는 것으로 합의된 상태다.

장설아 매니저는 “국제 NGO들은 매우 엄격한 안전 프로토콜과 국제 기준에 맞는 전문성을 갖고 있다”며 “UN기구나 각국 정부가 닿지 못하는 인도적 위기 현장에서까지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 NGO는 출신 국적과 관계없이 활동가를 선발하는 자체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 ▲경력 ▲트레이닝·교육 이수 횟수 ▲테스트(자기 관리, 스트레스 관리 역량 등을 평가) 등이 활동가 선발 기준이 된다. 이경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HnD사업부장은 “한국 활동가들이 분쟁지역에서 무장 상황에 돌입하는 상황을 대비해 구체적인 보호 서비스와 대응 절차를 마련해놓은 상태지만 막상 현장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 NGO 사이에서도 “인도적 지원까지 금지하는 한국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국제구호개발 NGO 관계자는 “각 NGO의 국제 본부에서는 인력을 요청할 때 한국인 활동가 파견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더나은미래와 통화에서 “여권법 시행령 29조에 따라 예외적 여권사용 대상에 NGO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경주 부장은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건 정부가 NGO의 국제구호활동을 단순한 자원봉사 활동, 선교 활동과 명확히 구분 짓는 것”이라며 “KCOC는 여권법 개선을 위해 정부에 간담회를 요청하고 NGO 구호활동 관련 자료·문서를 공유해 글로벌 NGO의 역량과 활동을 알릴 예정”이라고 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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