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은 뜻으로 기부했는데 ‘세금 폭탄’… 구제할 법제도 없다고?

현행법상 규정 없어 법정 다툼 이어져
공익법인 통해 기부받을 단체 지정을
올바른 공익기부 돕는 장치·제도 필요

42억원 기부에 부과된 세금 27억원.

백범 김구 선생의 가문은 해외 대학에 출연한 기부금에 매겨진 세금 탓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구 선생의 차남인 고(故)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2006년부터 미국 하버드대, 브라운대, 터프츠대와 대만 국립대 등 여러 대학에 10년에 걸쳐 42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장학금을 비롯해 한국학 강좌 개설, 항일 투쟁의 역사를 알리는 김구포럼 개설 등 대한민국을 알리는 데 쓰였다.

김 전 총장이 낸 기부금에 대해 국세청은 세금 27억원(상속세 9억원, 증여세 18억원)을 그의 자녀들에게 부과했다. 김 전 총장 사망 2년 후인 2018년 10월이었다. 국세청은 국내 공익법인에 출연하지 않고 해외 단체에 직접 기부한 점을 문제 삼았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상 공익법인이 아닌 단체에 기부하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신 전 총장 자녀는 과세처분에 불복하고 지난해 1월 조세심판원에 구제를 요청했다.

공익 기부에 상속·증여세를 부과받은 대표 사례자로 꼽히는 고 황필상(위 사진 가운데) 박사와 김신(아래 사진) 전 공군참모총장. /조선일보DB

‘선의의 기부자’에 과세 처분 잇따라

공익 목적의 고액 기부에 ‘세금 폭탄’이 떨어지는 일은 기부업계의 오랜 과제다. 대부분 기부자가 미리 세법을 살피지 못한 탓이 크지만, 공익 기부에 막대한 세금을 매기는 사례는 종종 발생한다. 문제는 이를 마땅히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선의로 출발한 기부가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몇 해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기부자로부터 180억원을 증여받은 공익재단에 증여세 140억원을 부과한 ‘수원교차로 사건’이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창업주인 고 황필상 박사는 지난 2002년 180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 90%를 모교인 아주대에 기부했다. 당시 아주대 측은 황 박사와 공동으로 ‘구원장학재단’을 세웠고, 재단을 통해 대학생 1000여 명을 지원했다. 그런데 국세청은 6년 뒤 세무조사를 통해 증여세 140억원을 부과했다. 본세 100억원에 미리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산세 40억원이 붙었다.

2009년 시작된 행정소송은 2017년 대법원 결정이 나오기까지 거의 10년을 끌었다. 황 박사는 그 과정에서 2016년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대법원은 “경제력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까지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황 박사는 대법원 결정 이듬해 사망했다. 당시 황 박사를 무료 변론한 소순무 율촌 변호사는 “2008년 1심에서는 원고 손을 들어줬지만, 2011년 2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혔고, 상고심에서 다시 원고 손을 들어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이어 “세법도 상식에 따라 적용돼야 한다”며 “누가 들어도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할 정도의 가혹한 처분이라면 취소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국회입법조사처는 ‘공익 기부 과세에 대한 입법과제’ 보고서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조세 회피 목적이 없는 선의의 공익 기부에 대한 상속·증여세 부과를 ‘위헌적 과세 처분’이라고 표현했다. 과세관청이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세금을 매겼지만, 결과적으로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예방책으로 행정처분 단계에서 세금을 면제할 수 있는 ‘형평면제처분제도’를 제안했다. 문은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에는 김신 전 총장이나 황필상 박사 사례를 구제할 수 있는 규정 자체가 없고, 국세청도 과세처분을 면제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하면 재판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독일은 공익 기부자가 미처 예측하지 못해 세금을 짊어지는 억울한 사례를 구제하기 위해 국세기본법상에 형평면제처분 규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부자에겐 어렵고 불친절한 법제도

반론도 있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례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새로운 제도를 통해 또 다른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박훈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부소장은 “형평면제처분제도에 대한 정신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과세처분을 면제하는 규정을 둔다면 어떻게 기준을 정하느냐에 따라 판단하기 어려운 모호한 사례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부소장은 “과세 관청에서 조세 회피 목적이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하나하나 다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만큼의 행정력을 동원하기는 어렵다”며 “기부처에서 올바르게 기부자를 안내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우선돼야 하며 예외적인 케이스는 사법적으로 구제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김신 전 총장의 사례처럼 해외 대학 등 비공익법인에 기부하고 싶다면 국내 공익법인을 통해서 기부받을 단체를 지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익법인을 통해야 조세 회피 목적인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여세가 부과될 경우 자녀들이 연대 납부 책임을 지는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 만약 예상치 못한 세금이 발생할 경우 상속인들이 떠안지 않도록 기부받은 단체에서 책임지도록 별도의 약정을 맺으면 된다.

기부업계에서는 김신 전 총장 케이스처럼 세법을 고려하지 않고 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국세청이 전수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얘기다. 다만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국내 세법은 여전히 어렵고 불친절한 측면이 크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정부 차원에서 기부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별 탈 없이 고액 기부가 이뤄지도록 도움을 주는 제도나 장치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혹시 세법에 어긋나게 기부했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줄 필요가 있다”면서 “또 고액 기부를 안내하는 기관이나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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