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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이 기본소득 실험 신호탄을 쏘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부터 만 24세 경기도민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100만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청년배당’을 시작한다. 전남 해남도 오는 3월부터 모든 농가에 매년 60만원을 지급하는 ‘농민수당’ 제도를 시행한다.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 수준,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수당을 뜻한다. 국민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의 생활비를 주는 ‘완전 기본소득’과 특정 세대나 계층, 지역에 지급하는 ‘부분 기본소득’으로 나뉜다. 청년배당과 농민수당은 부분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셈이다.
경기도와 해남의 움직임에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 도입과 실효성’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저성장 시대에 기본소득 도입은 필요하다는 입장과 예산 대비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찬성 “일자리 부족 양극화 문제 대안 될 수 있어”
우선 찬성 측은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와 기술의 진보가 가져오는 불평등, 불안정성 문제에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주요 논거로 제시한다.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전일제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노동자의 수입이 불안정해질 뿐 아니라 근로자 중심이었던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플랫폼 노동자와 같이 새로 등장한 계층을 포괄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다치거나 해고를 당해도 관련 산재보험이나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
구교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여러 나라가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등 친(親)자본주의 성향의 인물들도 기본소득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핀란드, 미국, 스페인 등지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실제 미국은 시민단체, 실리콘밸리 기업 등 민간이 기본소득 실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 에어비엔비 등을 키워낸 대표적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는 미국 내1만 명의 집단에서 선정된 3000명에게 한 달에 1000달러를 3년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다.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 크리스 휴즈가 설립한 이코노믹 시큐리티 프로젝트(Economic Security Project)도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탁턴에서 500달러를 매달 100명에게 지급했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복지 함정’ 문제에 대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복지 함정이란 사회보장비를 지급받는 이들이 노동을 포기하면서 정부 재정에 구멍이 뚫리고 경제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실업수당이나 기초수당 등 대부분의 조건부 수당이 취업이나 소득 발생 시 사라지는 반면, 기본소득은 소득이 생겨도 그대로 지급되기 때문에 근로 의욕이 줄어들지 않는다”면서 “여러 가지 수당 지급을 위한 조사와 관리 등 복지 관련 운영 예산을 줄이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 “근로 의욕 떨어뜨리고 재정에 과도한 부담”
반면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기본소득이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고 재원 마련에 막대한 세금이 필요하다”며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2017년 OECD에서도 근로 활동을 하고 소득이 있는 대다수의 사람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오히려 기존 복지 수혜자들이 가장 큰 수급액 감소의 피해를 보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낸 바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소득제는 노동자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사회 전체의 소득 분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면서 “특히 모든 계층에 기본소득을 주는 완전 기본소득에서 이러한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본소득 도입이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기본소득 지지론자들은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 OECD 국가 평균 수준보다 낮은 복지지출비(GDP의 10%) 등을 고려했을 때 부분적 기본소득은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한국의 빠른 고령화 속도와 서구권에 비해 짧은 국민연금 납입 기간 등을 따져봤을 때 현재의 복지 지출 수준을 유지해도 약 20년 뒤엔 서구와 비슷하게 복지 비용을 쓰게 될 것이라며 반박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전 국민을 대상으로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연간 총 305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이미 지급하는 사회부조 방식의 현금형 급여액(약 17조원)을 차감하면 실제 필요한 재원은 약 288조원으로 올해 일자리 대책을 포함한 복지예산(161조원)의 약 1.8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라고 전했다.
[박민영 더나은미래 기자 bad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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