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넥스트·AGI·UBS, 지속가능성 투자에 방산 규정 완화
스페인 유럽 최초 국방비로 기후위기 대응
방위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영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안보도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장 아래 방위산업 투자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는가 하면, 반대로 윤리적 투자 원칙을 고수하려는 흐름이 유럽 내에서 충돌하고 있다. 스페인은 유럽 국가 최초로 방산 예산의 일부를 기후위기 대응에 사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 유로넥스트 “ESG의 S는 안보(Security)”
대표적인 변화의 신호탄은 유럽 최대 전자증권거래소 유로넥스트에서 시작됐다. 유로넥스트는 5월 초, ESG의 정의를 ‘에너지(Energy), 안보(Security), 지정학(Geostrategy)’으로 재해석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제조약으로 금지된 무기’를 제외한 방위산업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을 완화했다. 이에 따라 대표 ESG 지수인 ‘CAC 40 ESG’와 ‘MIB ESG’의 산정 방식도 2025년 6월까지 개편된다.

기존 ESG 투자에서는 방산 기업이 담배, 도박, 주류 산업과 함께 대표적인 ‘네거티브 스크리닝(투자 배제)’ 대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내 안보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유럽은 자국 방산 역량을 강화하고자 기존 기준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 3월, 최대 8000억 유로(한화 약 1250조원)의 방산산업 지원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 ESG 투자에 방산 포함한 유럽, 노르웨이는 암초 만나
이 같은 변화는 민간 금융기관에도 확산되고 있다. 독일의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AGI)는 지난 3월, 지속가능성 펀드에서 방산 기업 투자를 제한하던 두 가지 조건을 철회했다. 이제 군수 장비 매출이 10%를 초과하거나 핵확산금지조약(NPT) 내의 핵무기 관련 매출이 있는 기업에도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국제 규범을 심각히 위반한 기업과 화학·생물학 무기 제조 기업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금지다.
AGI 글로벌 지속가능·임팩트 투자 책임자 맷 크리스텐슨은 “국방과 안보는 더 이상 ESG 가치와 모순되지 않는다”며 “지속가능성 규제가 오히려 사회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에는 1조 8000억 달러(한화 약 2513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UBS 자산운용도 재래식 무기로 매출의 10% 이상을 올리는 기업에 대한 투자 금지 규정을 철회했다. 또한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지난 3월 11일 공식 성명에서 자사의 “지속가능성 규정이 방위산업 기업에 대한 투자나 금융 지원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밝다.
반면,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내부 논쟁에 직면해 있다. 올해 초 야당은 투자 확대를 요구했지만, 여당과 노르웨이 재무부는 기존 입장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핵무기 생산에 관여하지 않는 방산기업에는 투자가 가능하지만, 핵무기 부품을 생산하는 에어버스, 보잉, 록히드마틴 등 대형 방산기업에는 투자할 수 없다.
노르웨이 중앙은행 총재는 “군비 확장이 다시 현실이 되고 있다”며 “윤리적 기준도 시대에 맞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여당인 노동당 소속 옌스 스톨텐베르그가 이끄는 노르웨이 재무부는 이러한 변화에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 4월 발표한 국부펀드 관련 백서에서도 이 규정 변경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스페인, 국방 예산으로 기후위기 대응
스페인은 방산 예산과 기후위기 대응을 통합하려는 ‘하이브리드 국방 전략’을 선택했다. 지난 4월,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기존 국방 예산 223억 유로에 104억 유로를 추가해 총 327억 유로(한화 약 51조원) 규모의 방위비 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일부를 기후위기 대응 예산으로 할당했다. 산불 진압용 항공기, 재난 구조 헬기, 물류 수송 장비 등 자연재해 대응 역량을 국방 체계 안에 편입시킨 것이다. 방산 예산이 기후 회복력 향상에 직접 쓰이는 유럽 최초 사례다.
이처럼 유럽 전역에서 안보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관련 투자도 급증했다. ARK 인베스트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유럽 테마형 ETF 순유입 자금의 72%인 41억 8400만 달러(한화 5조 8400억원)가 방산 ETF에 집중됐다. 반면 청정에너지 ETF는 2억 2700만 달러(한화 약 3168억원)의 순유출로 가장 부진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