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사회는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면 부하직원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상사가 그 이유를 납득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네’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상사가 지시하면 우선 ‘네’라는 답을 하고 뒤돌아서 ‘왜?’라고 의구심을 가진다.
직무중심의 조직문화는 납득할 만한 직무를 부여할 때 업무가 작동하는 원리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직급중심의 조직문화란 사람 사이에 서열을 정해주면 업무가 작동하는 원리를 뜻한다. 따라서 전자는 이유가 중요하고 합의과정이 중시되어 능동성이 개입된다. 후자는 직급에 적합한 권한과 책임의 부여가 중요하고 일정한 당위성이 개입된다. 직무중심이냐 직급중심이냐의 기준으로 미국 기업문화와 일본 기업문화를 조망한 윌리엄 오우치의 Z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인한 조직을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은 수직인가, 수평인가라는 이분법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질서가 있는지(hierarchy, 하이어라키), 아니면 복잡하여 질서가 잘 드러나지 않는지(heterarchy, 헤테라키)에 대한 논쟁이 그 시작이다. 하이어라키는 서열을 뜻하는 위계(位階)로 풀이된다. 질서가 있으되 잘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상황을 일컫는 헤테라키는 혼계(混界) 또는 비위계라고 불린다. 혼계는 권한이 분산되고 협력과 유연한 작동이 가능하여 수평적 조직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계를 수평적 조직으로 단언하면 안된다. 그 이유는 수직적 조직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화를 급속히 이행하는 많은 경우 예기치 못한 변수와 왜곡이 불거지고 구성원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완벽한 수평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구현되지 않는 까닭이다. 혼계가 지향하는 것은 기계적으로 완벽한 수평이라기보다 각자의 역할에 따른 행동이 보장되고 그 바탕 위에 서로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에 가깝다.
◇ 겉보기 ‘수평조직’, 왜 현실은 더 피로한가
MZ세대의 등장과 코로나를 거치며 개인주의가 퍼지고 능력주의가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된 지금 비영리 전반의 사내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가족주의에 기반한 결집문화로 출발했던 곳이 현대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분업주의 기반의 경쟁문화로 바뀌었다. 언뜻 보면 엄격한 직급중심 조직에서 탈피하여 탈권위적인 조직으로 이행한 것 같지만 실상은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겉으로는 수평적 조직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서열이 주는 무게감은 여전하다. 잦은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과정은 공유되지 않는다. 윗사람의 결정이 구성원들의 공들인 논의과정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꼰대 상사를 가리켜 ‘가해자’라고 단정짓는 것은 섣부르다. 그들 역시 그들의 윗선배로부터 받은 것이 충분치 않았으므로 ‘피해자’의 신분을 겸할 수 있다는 가정을 배제할 수 없다. 비영리 현장의 구성원들이 무탈한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비영리의 전통을 회고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비영리조직은 원래 이런 식으로 일한다’는 전통을 전하는 것만큼 최근 논쟁적인 이슈도 없다. 비영리 영역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행위가 상대방의 동기부여로 작동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현장은 경쟁적으로 변했고 다들 눈앞에 닥친 업무를 쳐내기도 바빠졌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며 자연스럽게 성장해왔던 과거의 조직문화가 누구를 가르쳐주거나 혹은 누군가로부터 배움을 얻겠다는 풍토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입이나 경력을 가진 신규 입사자가 비영리 영역에 합류할 때 그들에게 조직의 사명이나 조직문화를 전달하는 교육이 얼마나 중차대한 요인인지 말하는 것이 고루한 주장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조직문화가 곧 경쟁력이라는 믿음이 도전받을 때 조직의 경쟁력은 집단적 협업 위에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직무능력으로만 귀결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영리 영역 전반에 많은 교육이 왜 개인적인 직무능력 향상만을 위해 설계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 능력주의로 포장된 ‘조직문화 실종 시대’
조직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능한 인재의 입사가 아니다. 즉각 보상이 가능한 ‘개인농장제’와 달리 즉각 보상이 불가한 ‘집단농장제’에서 유능한 농부는 농장 자체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헌신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노동을 최소화하는 선택을 한다는 공유지의 비극은 오늘날 현장에서 나타나는 썩은 사과, 빌런, 무임승차자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비유된다. 무능한 인재보다 유능한 인재가 조직을 망치려 들 때 그 파괴력은 더욱 강하다.
관건은 조직 내의 썩은 사과와 빌런들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스스로 그 역할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면에서 비영리 현장이 먼저 주목해야 할 일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 아니라 조직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일이어야 한다. 각자가 제 역할을 하면서도 공동의 목표를 위해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조직 건강성 이론은 조직 내에 이기적인 똑똑이들만 가득할 때 임팩트 창출이 얼마나 고단한지 가늠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조직의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건강성 회복이 아니라 보상을 주면 된다는 식의 단순한 해법에서 찾으려 할 때 나타난다. 우리 사회의 조직을 농업에 비유하면 개인농장제보다 집단농장제에 가깝다. 경쟁과 능률을 선택한 미국 중심의 노동법과 달리 우리 사회의 노동법은 안정성과 노동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상보다 사회적 안전망을 중시하는 취지의 제도라 할 수 있다. 즉각보상이나 개인적 포상을 지급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관리자 혼자서 바꿔나갈 수 있는 리더십의 영역도 아니다.
더군다나 비영리 영역은 구성원들을 위한 보상을 고민할 때 무형의 보상을 배제하고서 사실상 제공할 것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이러한 현실은 비영리 현장의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대안이 기업 흉내내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80년 전 허즈버그의 주장처럼 조직에서 제공하는 보상 등의 만족요인은 불만을 잠재우는 목적이 있지 몰입까지 연결되지 못한다고 했다. 몰입은 조직이 제공할 수 없고 오로지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라 했다. 행정조직은 세금, 기업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작동하지만 비영리조직은 의미가 채워져야 작동한다. 몰입은 조직과 자신의 연결, 일치감, 동질화 등을 통해 발현되는 결과물이다.
즉 자신이 담당하는 구체적 과업이 전체 조직과 사회 변화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낼 수 있을 때 몰입의 밀도가 높아진다. NPO스쿨이 비영리에 합류하는 신입·신규 입사자들을 위해 조직과 영역을 이해하는 교육 프로그램 <애프터스쿨>을 꾸준히 실행하려는 이유다.
이재현 NPO스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