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투자의 미래, ‘관계 자본’에 달렸다 [창간 15주년 특집]

[인터뷰] 로버트 김 JLIN LLC 매니징디렉터·MYSC 이사

지난해 말, 동남아 대표 유니콘으로 주목받았던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이피셔리(eFishery)’의 대규모 회계 조작 사건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뒤흔들었다. 이피셔리는 소규모 어민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사료 자동화 시스템을 제공하며, 기술 기반의 임팩트를 실현해 온 스타트업이었다. 테마섹,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급성장했지만,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의 매출을 1억5700만달러(한화 약 2280억원)에서 7억5200만달러(한화 약 1조900억원)로 부풀린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회사는 청산과 매각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1월 21일 블룸버그에 보도된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이피셔리(eFishery)’의 대규모 회계 조작 사건. /블룸버그 갈무리

세 달 뒤엔 미국 스타트업 ‘프랭크(Frank)’의 창업자가 1억7500만달러(약 2497억원) 규모의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학생들의 학자금 지원 신청을 간소화하는 플랫폼으로 주목받던 프랭크는 2021년 JP모건 체이스에 인수됐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 수를 3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부풀려 투자자와 인수사를 속인 사실이 드러났다.

임팩트를 내세운 스타트업들이 잇따라 신뢰를 저버리면서, 투자 생태계 전체에 성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15년 뒤 임팩트 생태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그 해답으로 ‘관계 자본(Relational Capital)’을 강조하는 이가 있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제레미 린의 패밀리오피스 ‘JLIN LLC’를 이끄는 로버트 김(Robert Kim) 매니징디렉터다. 지난 7일, <더나은미래> 창간 15주년을 맞아 로버트 김을 만나 ‘임팩트 투자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 임팩트를 말하면서, 사람을 잊는다면

로버트 김은 글로벌 임팩트 투자사 ‘캡록(Caprock)’에서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로 100건 이상의 임팩트 투자를 집행한 전문가다. 2022년부터는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제레미 린의 패밀리오피스인 JLIN LLC에 합류해 청소년과 지역사회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 중심 투자 그룹(People-driven Investment Group)’ 출범을 준비하며, 창업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핵심 투자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임팩트 투자사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이사로 합류하며 한국 임팩트 생태계와의 접점도 넓히고 있다.

JLIN LLC의 매니징디렉터 로버트 김(Robert Kim)의 모습. /김규리 기자

“임팩트 펀드도 결국 회수 기간이 있고, 수익이 나야 다음 펀드를 만들 수 있어요. 이 구조 안에서는 창업자에게 성과 압박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 품었던 미션은 뒷전이 되고, 숫자에 밀려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라는 질문이 사라지죠.”

그는 과거 자신이 투자했던 한 아프리카 기반 스타트업을 떠올렸다. 플랫폼을 통해 취약계층 청년을 글로벌 일자리로 연결하겠다는 비전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상을 ‘보다 경쟁력 있는 인재’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임팩트는 희미해졌다.

“기업이 커지며 처음 품었던 미션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반대로, 제품은 임팩트와 직접 연관이 없어도 조직문화가 ‘타인을 위한’ 방향이라면 회사가 클수록 사회적 영향이 커지기도 하죠.”

로버트 김은 창업가를 평가할 때 ‘말’이 아니라 ‘결정’을 본다고 말한다. 창업 초기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위기 때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살핀다. 코로나 시기 자신의 급여를 줄여 직원을 지킨 창업자, 사내 복지를 위해 스톡옵션 거래 시스템을 만든 경영자 등 그가 소개하는 기업가들에겐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공통으로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조직문화는 그냥 생기지 않아요. 창업자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거예요. 문제는 이런 문화를 창업자 혼자서는 지키기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임팩트 투자자가 있어야 해요. 단기 수익 대신, 창업자가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필요해요.”

◇ “3시간 만나면, 일 얘기는 30분만 합니다”

“창업자와 만나면 3시간 중 2시간 반은 삶의 이야기를 합니다. 마지막 30분만 일 얘기를 하죠. 그게 진짜 그 사람을 보여줍니다.”

그가 이끄는 JLIN LLC는 사업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투자 검토보다 중요한 건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JLIN LLC의 매니징디렉터 로버트 김(Robert Kim)이 지난 7일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 더 많은 관계 자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규리 기자

로버트 김은 최근 연이은 회계 조작 사건들 역시, ‘관계 자본’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투자자와 창업자 사이에 신뢰와 대화가 없으면, 결국 숫자만 남습니다. 그러면 허위 데이터도, 부풀린 사용자 수도 그대로 넘어가게 돼요. 사람을 보려면,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가 바라는 15년 후 미래는 단순하다. 한국의 임팩트 생태계가 서울 중심을 넘어 지역으로, 더 나아가 아시아 전역으로 뻗어가는 것. 다만, 자본만이 아니라 신뢰와 우정, 경험이 흐르는 생태계다.

“임팩트 생태계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 있습니다. 창업가가 직원을 사랑하듯, 우리도 창업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 중요한 시대입니다.”

성남=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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