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베껴도 좋습니다” 코페르니크의 남다른 빈곤 해결법 

[GCSC 2026] 나카무라 대표 “검증된 해법은 독점 말고 공유하라”

“일반 기업에게 ‘기술 복제’는 위협이지만, 사회적 가치 영역에서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작은 영향력이 타인을 통해 배가되기 때문입니다. 사회문제는 독점이 아니라, 더 많은 조직이 같은 방식으로 덤벼들 때 비로소 해결됩니다.”

적정기술로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비영리기구 ‘코페르니크(Kopernik)’의 나카무라 토시히로(Toshi Nakamura) 대표가 던진 화두다.

지난 8일 일본 도쿄 국립올림픽기념청소년종합센터에서 열린 ‘한일 대학생 혼성 창업캠프 GCSC 2026’. 이날 인도네시아 발리 현지 화상 연결을 통해 연사로 나선 나카무라 대표는 ‘복제와 확산’을 통한 사회적 임팩트의 극대화를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 UN에서 ‘라스트 마일’로 떠난 이유 

나카무라 대표는 과거 10여 년간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근무하며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시에라리온 등 치열한 개발 협력 현장을 누비면서 거대 조직의 한계를 체감했다.

그는 “대규모 기관은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지만, 의사결정이 느리고 관료적이며 외부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며 “사람들의 삶을 더 직접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더 직접적이고 빠른 임팩트’를 갈망했던 그는 2009년, 아내 에와 워이콥스카(Ewa Wojkowska)와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에 코페르니크를 설립했다. 목표는 전기, 식수, 조리 시설 등 기본 인프라가 닿지 않는 이른바 ‘라스트 마일(Last Mile)’ 지역의 빈곤 문제 해결이었다. 

◇ “찾고, 실험하고, 확산하라” 코페르니크의 3단계 공식  

초기 접근 방식은 단순했다. 전기가 없는 가정에는 등유 램프 대신 낮 동안 태양광으로 충전해 밤에 연기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랜턴을 보급했다. 많은 땔감과 유해 연기를 발생시키던 전통 조리 방식 대신 연료 효율이 높고 연기가 거의 없는 스토브를 도입했고, 값비싼 설비 없이도 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는 간이 정수 필터도 현장에 적용했다. 코페르니크는 전 세계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을 발굴하고, 이것이 현지에 적합한지 검증한 뒤 오지로 확산시키는 플랫폼 역할을 자처했다. 

이 과정에서 정립된 코페르니크의 운영 모델은 ‘미충족 수요 발굴(Identify) →해결책 실험(Test)→확산(Amplify)’의 3단계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2020년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에서 진행된 ‘고무 수액 채취용 빗물 가림막(Rubber Tapping Rain Guard)’ 프로젝트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2위 고무 생산국으로 생산량의 83%가 소규모 농가에서 나오지만, 우기에는 빗물에 고무 수액(라텍스)이 씻겨 내려가 수확량이 급감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에 코페르니크는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폴리염화 비닐(PVC) 소재로 고무나무용 빗물받이(가림막)을 제작해 실험에 착수했다. 75그루의 나무를 대상으로 50일간 진행된 데이터 비교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가림막이 없는 나무는 평균 4.7kg를 수확했으며, PVC 가림막을 설치한 나무는 평균 8.3kg(약 77% 증가)의 수확량을 기록했다.  

특히 흰색 PVC 가림막은 개당 설치 비용이 약 122달러(약 17만 원)으로, 투명 PVC 가림막(517달러·약 75만 원)보다 약 323% 저렴해 도입 시 농가 소득이 3년간 최대 56%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 검증된 모델은 이후 독일 국제협력공사(GIZ) 등이 벤치마킹하며 빠르게 복제되었다. 나카무라 대표는 “기술 자체는 단순하지만, 현장 데이터로 효용성을 입증했기에 가능한 확산이었다”고 설명했다. 

◇ 70개 실험 오픈소스 공개…“실패 숨기면 혁신도 멈춘다”

코페르니크는 2019년 쓰레기 처리와 사료값 폭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동애등에(Black Soldier Fly) 사료화’ 프로젝트도 성공시켰다. 발리의 오리 농가들은 하루 사료비로만 약 150달러(약 21만 원)을 지출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료를 외부에서 비싸게 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크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자라는 동애등에 유충에 주목했다. 유기성 폐기물을 분해하며 자란 유충은 단백질이 풍부해 사료 대체재로 활용할 수 있었다.

40일 동안 유충 사료를 먹인 실험군과 기존 수입 사료를 먹인 대조군을 비교 실험해 최종 체중을 기록했다. 그 결과, 오리의 성장 속도는 그대로 유지됐으며, 사료비는 30~50% 절감됐고, 농가 순이익은 약 25% 증가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후 독립 기업(Magi Farm)으로 분사돼 메기 양식장 등으로 판로를 넓히며 발리 농가의 자생력을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농업, 어업, 위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70개의 실험을 진행한 코페르니크는 모든 실험 과정과 결과를 카탈로그로 투명하게 공개한다. 나카무라 대표는 “데이터를 모으기 전까지는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며 “실패를 숨기면 혁신도 멈춘다”고 단언했다. 

그는 발제를 마치며 “사회문제 해결은 누가 먼저 성공하느냐의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빨리 검증된 해법을 공유하느냐의 문제”라며 “이 자리에 모인 학생들이 국경을 넘어 같은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한일 대학생 80명, 도쿄서 사회문제 해결 머리 맞대

한편, 이번 GCSC 2026은 가천대학교 스타트업칼리지와 일본 히토츠바시대학교 소셜데이터 사이언스 학부가 공동 주최하는 글로벌 창업 캠프다.

사전 선발된 80명의 한일 대학생들은 혼성으로 20개 팀을 이뤄 오는 11일까지 3박 4일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캠프는 ▲기후 변화·빈곤 등을 다루는 ‘글로벌 트랙’과 ▲고령화·지역 소멸 등을 해결하는 ‘로컬 트랙’으로 진행된다.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도쿄 스타트업의 요람인 ‘도쿄 이노베이션 베이스(TiB)’에서 최종 피칭이 열리며, 우수 팀에게는 총 110만 엔(약 1025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장대익 가천대학교 스타트업칼리지 학장은 “많은 청년이 실리콘밸리 창업을 꿈꾸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곳은 한국과 일본”이라며 “먼 곳이 아닌 바로 이곳의 ‘진짜 문제’에 집중해 우리만의 자생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 캠프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도쿄=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