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기부 그 후] 콩 한쪽, 닭 한 마리가 일으킨 아프간 여성들의 삶

아프간 여성 자리파씨 이야기

 

무료이미지_아프간_여성

제 이름은 자리파(Zarifa)입니다.

저는 두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는 하루하루의 삶이 고통의 연속입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 카불(Kabul)주의 콸리 슘자이(Qaly Shumlzai) 마을에 살고 있어요. 우리 마을엔 저와 같은 여성들이 200명이 넘습니다.

마당에서 키우는 암탉 몇 마리가 유일한 생계원입니다. 닭을 살 돈조차 없는 이웃들에 비해선 그나마 나은 편이죠. 하지만 아침마다 알 수확량이 넉넉하진 않습니다. 닭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꾸준히 알을 낳게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배고픔보다 더 힘든건 아프간의 문화적 관습입니다. 아프간 여성들은 집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습니다. 대부분 남편의 허락 없인 혼자 일을 하거나 회사에 다니는 등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죠. 생계를 위해서는 오로지 남편이나 아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남편마저 잃은 과부들은 아이들과 함께 거리를 전전하며 구걸을 해서 먹고 삽니다. 

거리를 걷는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

 

옆 마을 할리마씨 이야기 

우리도 비슷합니다. 우리 가족의 생계는 오로지 어린 아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한창 학교 다닐 나이인데도 아들은 매일 거리에 나가 돈을 벌었죠. 온 가족이 아들의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저도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싶었지만, 여성인 제게 허락된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죠. 

시골인 우리 마을에서는 많은 산모들이 아이를 낳다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고기나 달걀처럼 단백질이 든 음식을 먹지 못해 다들 영양결핍 상태이기 때문이죠. 특히 닭고기나 달걀은 그림의 떡입니다. 닭을 키울 수는 있어요. 하지만 닭을 살 돈도, 닭을 키울 수 있는 기본 시설도 없습니다. 

먹을 게 없으니 먹을 입을 줄일 수밖에요. 그래서 아프간에선 딸을 낳으면 빨리 결혼을 시킵니다. 딸을 혼인시켜야 식구도 줄이고 결혼 자금으로 남은 식구들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부르카(이슬람 전통 여성 의상)로 온 몸을 칭칭 감아야 외출이 가능한 나라라서, 여성의 권리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차라리 돈벌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죠. 

부르카를 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이슬람 여성은 바깥 출입 시 부르카 등으로 전신을 가려야 한다.
부르카를 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이슬람 여성은 바깥 출입 시 부르카 등으로 전신을 가려야 한다.

 

아프간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NEI

2003년, 휴가차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권순영 박사는 이러한 현지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재미교포 식품영양학자인 그는, 심각한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아이들과 산모들, 경제력이 없어 살아남지 못하는 취약계층들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권 박사는 사단법인 엔이아이(NEI‧Nutrition and Education International)라는 NGO를 만들었습니다. 엔이아이는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현지 아동과 산모들이 저렴하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아프간에 콩을 소개했습니다. 

현지 농부들에게 재배 방법도 가르치고, 기본적인 비료와 콩 씨앗을 제공한 것이죠. 단순하게 먹을거리를 공수해줄 수도 있었지만 엔이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단기 지원이 끊기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농사를 짓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2016년부터는 현지 여성들을 선정해 양계 사업을 가르쳤습니다. 여성들이 스스로 닭을 키우고 그 달걀을 먹거나 팔아 경제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난해 7월, 현지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엔이아이코리아는 네이버 해피빈에 모금함을 개설했습니다. 여성들에게 병아리와 모이통 등을 제공하고, 집집마다 닭장을 설치해주기 위함이었죠. 개인 기부자 87명과 후원 기업들의 도움으로 총 200만200원의 모금액이 모였습니다. 덕분에 아프간 여성들은 집 안에서 닭을 키워 자신만의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양계 사업 지원으로 집 마당에 양계장을 마련한 아프가니스탄 여성. ⓒ엔이아이코리아
양계 사업 지원으로 집 마당에 양계장을 마련한 아프가니스탄 여성. ⓒ엔이아이코리아

 

아프간 여성들의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해 

절망적이었던 우리 가족의 삶이 한결 나아졌어요. 믿기지가 않습니다. (할리마)

엔이아이의 양계 사업 지원을 통해 자리파씨는 자신만의 닭 농장을 갖게 됐습니다. 일을 하러 다니던 할리마씨의 어린 아들은 마을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아프간 여성들이 매일 아침 수확하는 달걀을 통해 필요한 물품이나 식량도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프간 내 양계사업이 더 확대되면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으로 인한 권리 신장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여성이 집에서 직접 생산한 달걀을 판매하고 있다. ⓒ엔이아이코리아
한 여성이 집에서 직접 생산한 달걀을 판매하고 있다. ⓒ엔이아이코리아

하지만 아직은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합니다. 양계사업으로 여성이 자립하려면, 닭을 90일 정도는 길러야 합니다. 여성 한 명당 최소 3개월의 사료와 유지비가 필요한 것이죠. 여전히 남편의 허락 없이는 양계 사업을 시작할 수 없기에, 현지 여성들이 참여하기도 다소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차별로 고통 받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이 경제력을 갖추고 안정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엔이아이의 활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세요!

 ▼모금함 바로가기

http://happybean.naver.com/donations/H000000138311 

 

사단법인 엔이아이(NEI)는
아프가니스탄의 영양실조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아프가니스탄 농가들에 콩 재배 방법과 콩 음식을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쳐 왔습니다. 아프간 국민들이 고단백 콩 제품을 쉽게 섭취하고, 농업 및 양계 사업을 통해 경제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NEI의 목표는 30년간 내전으로 고통 받은 아프간 취약계층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고 활기를 되찾도록 돕는 것입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