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⑫ “경주 최부자가 곳간 열었듯… 글로벌 기업 걸맞은 성숙한 기부 필요”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⑫… 류종수 유니세프 사무총장
미국 포담 대학원 시절 ‘유나이티드 웨이’에서 방과후학교 모금 도와
‘아시아나’와 유니세프의 ‘사랑의 기내동전모으기’ 18년 동안 70여억원 기부
60년전 도움받던 아이들 글로벌 리더로 성장해 민간기부 7위 한국으로

대구 청구고를 졸업하고 영남대에 입학한 류 사무총장은 1985년 미국에 건너가 뉴욕 포담대에서 사회복지정책을 전공했다. 2009년 CNN설립자 테드 터너가 설립한 유엔 재단 상임고문으로 재직하며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아프리카에 모기장을 보내는 ‘넷츠 고’(Nets Go)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했다.
대구 청구고를 졸업하고 영남대에 입학한 류 사무총장은 1985년 미국에 건너가 뉴욕 포담대에서 사회복지정책을 전공했다. 2009년 CNN설립자 테드 터너가 설립한 유엔 재단 상임고문으로 재직하며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아프리카에 모기장을 보내는 ‘넷츠 고’(Nets Go)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했다.

의외의 인물이었다. 지난 4월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 한국위원회 신임 사무총장을 맡은 ‘류종수(50)’라는 이름은 국내에선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1994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생긴 이래 18년 동안 박동은(77) 사무총장 체제로 운영되던 사무국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궁금했다. 취임 6개월여가 흐른 지난 15일, 창밖으로 경복궁이 바라보이는 서울 종로구 창성동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실 4층에서 류 사무총장을 만났다.

―대학 시절 이후 20년 동안 미국에서 모금전문가로 활약해온 경력을 인정받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어떤 포부를 갖고 있는지요.

“뉴욕 포담대 대학원 시절, 미국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격인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 뉴욕본부에서 인턴생활을 했어요. 지역아동센터의 방과후학교를 맡아 프로그램 개발과 기금 모금을 하는 일이었어요. 시니어가 임신으로 공석이 된 자리를 제가 이끌었는데 모금이 400% 늘었어요. 저는 숫자에 탁월하고 목표 집중도가 높습니다. 뉴욕은 모금·배분이 매우 발전돼 있어요. 교육·보건·환경 등 종류별, 기관별로 카테고리가 세밀하게 나뉘어 있어 기부자가 선택만 하면 되죠. 사립고등학교, 뉴욕중앙노조위 등의 기금 모금을 도왔고 뉴욕 플러싱 YMCA에서 동양인으로서 최연소로 이사장이 됐어요. 모금 분야도 전문가가 되려면 여러 종류·기관의 기금 모금을 해봐야 해요. 경험에서 나오는 동물적인 본능이 중요하죠. 저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국제 구호개발의 ‘파워하우스(Power House)’로 만들고 싶습니다.”

―”현재 5% 수준인 기업 기부도 국제 평균인 12~13%로 늘리고, 월 50만원 이상의 고액기부도 늘리겠다”고 하셨는데요.

“유엔에서 ‘말라리아 퇴치특사’로 임명한 미국 기업가 한 분이 있는데, 이분이 6년 동안 활동하면서 50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모았어요. 하지만 그 기업이 ‘IBM말라리아퇴치기금’이나 ‘아멕스기금’ 같이 회사 이름을 전혀 넣지 않았어요. 우리 기업도 기부의 성숙도가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기업 이름으로, 기업 재단 만들고, 그 재단에서 회사 이름표 달고 기부하는 것을 넘어서야 해요. 경주 최 부자가 가뭄 때는 표도 내지 않고 곳간을 내줬듯이 말이죠. 20% 정도는 기업 꼬리표를 뗀 기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우리가 5% 기부하면, 뭐가 이득으로 돌아오는데?’ 하는 건 리더십이 아니에요. 아깝다고 생각하는 순간, 1% 기부도 아까워요. ‘부자 되면 나중에 기부해야지’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기부하지 않으면 죽는 생명을 10년 후에 살릴 수 있나요? 기부는 자기도 치유하면서, 타인을 치유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재단이 그렇게 많은 돈을 갖고도, 세계기후나 식량, 어린이 분야의 지도급 인사 원탁회의에 앉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런 리더십이 없어서입니다.”

―아시아나항공과 유니세프가 1994년부터 펼친 ‘사랑의 기내 동전 모으기 운동’ 모금액이 18년 만에 70억원을 돌파했는데요. 18년 동안 이어온 기부프로그램도 흔치 않은데, 혁신적 기부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사업의 사명이 중요합니다. 유니세프의 노력뿐 아니라 이 사업을 계속 하겠다는 회사 오너와 직원들의 결단도 중요합니다. 기내(機內)에서 동전 모으기 홍보비디오를 상영하고, 승무원들이 활동하는 시간을 쪼개, 동전 봉투를 모으는 일이 쉽지 않잖아요. 동전의 3분의 1은 아시아나에서, 나머지는 자원봉사자들이 세는데, 엄청난 사람이 투입돼요. 동전과 지폐가 모여 70억원이란 돈을 만든 거예요. 최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및 유엔 관계자들, 가수 싸이, 아시아나 대표와 승무원 등을 초청해 뉴욕에서 기념행사를 벌였어요. ’18년 동안 동전을 모아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모델을 제시했다’는 걸 알렸지요. 모금 행사도 그냥 이벤트로 끝나면 안 되고,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유니세프를 통해 전달된 사랑으로 웃음을 되찾은 아이들.
유니세프를 통해 전달된 사랑으로 웃음을 되찾은 아이들.

―유니세프는 국제구호개발의 리딩 기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구호개발 NGO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고, 아직도 작은 규모의 NGO도 많습니다. 상생하며 발전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도 유엔재단에서 직원들 몇 명 데리고 일하면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아프리카 어린이돕기 캠페인을 했는데, 상당히 외로웠어요. 하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어요. 내 주위의 요소를 갖고, 어떻게 에너지를 몰입해, 창조적이고 발전적으로 만들까만 생각합니다. ‘저 기관은 물량공세를 하는데, 우리는 정성으로 합니다’ ‘저 기관은 일대일 후원만 하는데 우리는 지역사회 발전을 추구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어프로치(approach)가 설득력이 있을까요. 일을 하는데 기관 규모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시선은 국내에만 머무르면 안 되고 글로벌하게 봐야 합니다. ‘파워하우스’가 되려면 직원들이 글로벌 전문가가 돼야 해요. 전 한국에 오면서 수입이 많이 깎였지만, 세계와 북한 어린이를 돕는 최전선에 있다는 존재감, 다이내믹함, 한국에서 이 분야를 리딩하고 싶다는 점 때문에 여길 선택했어요.”

―취임 이후 지난 9월 중국 사천성 지역사업장을 방문했는데, 첫 현장방문 소감이 어땠습니까.

“유니세프가 지진이 난 사천의 40개 지역 학교에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차일드 세이프티 존(Child Safety Zone)’을 통해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조짐이 보이면, 대피처에 가도록 교육했습니다. 교실의 모든 설비를 지진에 대비해 고치고, 재난 후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3년 됐는데, 중국 정부에서 5억달러(5400억원)를 들여 성마다 20개 모범사례를 만들도록 했어요. 이게 유니세프의 전략입니다. 롤 모델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정부가 이를 퍼뜨리면서 어린이 권리를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지요.”

―한 해 걷는 후원금 700억원 중 85%는 매달 2만~3만원을 내는 개인 기부자들 돈이라고 하는데요. 최근 익명의 후원자 두 분이 7억원과 2억원을 보내왔다고 하는데요. 불경기인데, 우리나라의 기부가 늘고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전화를 걸어와서 익명으로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어요. 귀한 돈인데, 자신의 편리를 위해 쓰지 않고 보이지 않는 어린이를 위해 쓰는 분들은 숨은 영웅입니다. 유니세프는 여기에 기금을 더 보태서 100만달러(10억)를 만들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소아마비와의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에 백신사업을 벌이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엔 소아마비가 거의 없어졌어요.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많았거든요. 유니세프가 건강 보건사업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5대 백신을 맞히면서 서서히 사라진 겁니다. 제가 2주 전쯤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유니세프 직장인 자원봉사회가 주최한 ‘나눔과 기부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60년 전, 폐허 속에서 구걸하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세계를 리드하는 아이들이 통신회사 건물에 앉아있다. 이게 우연하게 이뤄졌을까. 배급받던 아이 중 누군가는 언젠가 자신도 주는 손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그게 없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없다’고 했어요. 유니세프 36개 공여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민간기금 7위예요. 국민 각자가 모은 십시일반이 모여 그렇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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