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이어온 사진 봉사…비영리단체 설립해 나눔 올인
입양아 안은 스타들의 사진전 10년째 열어
소년원생·노숙자 대상 사진 강의하기도
사진으로 자아 찾아 자폐아 치료에 활용
시대 맞춘 교육 필요 다양한 환경서 꿈 키워야
스타 연예인 화보 사진과 신제품 마케팅을 위한 잡지 광고 촬영까지…. 12년 전까지만 해도 조세현(54) 사진작가의 일정은 이렇게 채워졌다. 하지만 요즘 그의 일정표엔 노숙인 사진 교육, 소외 계층 아동 사진 치유 프로그램, 다문화 가족, 입양아를 위한 사진 촬영이 가득 추가됐다. 그는 최근 오랜 꿈을 이뤘다. 2000년부터 시작된 ‘사진을 통한 나눔’을 확산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든 것이다. 이름은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할 일만 100가지가 넘는다”며 의욕이 넘치는 조세현 사진작가, 아니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이사장을 만났다.
―몇년 전 함께 월드비전의 아프리카 케냐 기아 현장을 취재·촬영할 때 동행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시만 해도 재능 나눔으로 ‘참 좋은 일 하시는구나’ 생각했는데, 아예 비영리 단체까지 설립하면서 제2의 인생을 ‘나눔’에 올인할 줄 몰랐습니다.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사진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돕기 시작한 게 2000년부터였어요. 대한사회복지회와 함께 입양아를 안은 스타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담아 사진전(‘천사들의 편지’)을 연 게 올해로 10년째예요. 한 사회복지사의 부탁으로 입양아 백일사진 찍어주던 것이 인연이 돼 시작한 일이죠. 재작년에는 경기도 의왕의 소년원생들을 대상으로 쇠창살 안에서 사진을 강의했어요. 숙제를 내니까 기가 막혀요. ‘나가고 싶다’ ‘반성’ 등의 제목으로 구석에 웅크린 자신의 모습을 찍어와요. 이주 노동자나 서울시의 노숙자 대상 사진 강의를 통해서도 ‘사진을 통해 이들을 치유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찾아보니 사진을 통해 직접 봉사하는 단체가 없었습니다. 직접 비영리 단체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비영리 단체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무척 어렵고 까다롭습니다. 어떤 비전과 사업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사진 봉사를 시작한 초기에는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봤어요. 연예인을 이용한다는 악성 루머도 많았죠. 하지만 10년이 넘으니까 도와주는 사람이 많이 생겼어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기업체 CEO들을 대상으로 사진 강의를 오래 했는데, 제자가 400명 정도 됩니다. 이 중 본격적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진 CEO들이 10여명 되는데, 이번에 사단법인 이사로 선뜻 참여해주셨어요. 앞으로 사진을 통한 사회 공헌 확산 캠페인, 소외 계층 대상 사진 교육, 사진 촬영 봉사자 양성 등 할 일만 100가지가 넘습니다. 특히 소외 계층 어린이들의 사진 교육에 가장 주력할 계획입니다.”(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이사에는 김중민 스탭뱅크 회장, 주영욱 마크로밀코리아 대표, 황도연 오비고 대표, 정은미 종로편입아카데미 대표, 배우 이서진씨 등이 참여했다.)
―현재 저소득 가정 아동·청소년들의 문화예술 교육 지원사업인 ‘조세현의 그린프레임’을 진행하고 계시잖아요.
“주5일제 수업이 되면서 소외 계층 아이들에겐 문화적인 갭(Gap)이 더 커졌어요. 방학과 ‘놀토’등 여가시간에 문화적 혜택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8월에 지역아동센터나 그룹홈의 아동·청소년 60명 정도를 대상으로 사진 캠프를 했는데, 상당히 반응이 좋았어요. 삼성이 지원해서 내년 6월까지 200명을 대상으로 사진 교육을 할 예정입니다. 사진은 언어가 필요없는 시각예술이잖아요. 언어가 미숙한 다문화 가족 아이들의 경우 사진을 통해 표현력이 높아지고 또래 집단끼리 쉽게 소통할 수 있어 사회성도 좋아지더군요. 런던 유학까지 다녀온 제자도 강사로 나서서 도와주고 있어요. 지금은 입문 교육이지만 사진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중급반도 하고 싶어요. 또 아시아 지역의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도 사진 교육 캠프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과 같은 문화예술을 통한 치유 효과가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요.
“두 가지 효과가 있어요. 사진은 직설적이거든요. 가감 없이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그 아이의 사진을 통해 치유할 방법이 보입니다. 또 하나는 아이가 사진을 통해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응어리가 풀려요. 마음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미국에서는 자폐아들의 치료를 위해 사진을 활용해요. 6년 전쯤 서울보라매공원 시립복지관에서 자폐아 가족 기념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 왔어요. 자폐아들은 막 돌아다니거나 행패를 부려서 일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버스 두 대를 대절해 중앙대 안성 캠퍼스 운동장으로 갔어요. 그중 한 자폐아는 도저히 사진 촬영이 불가능했어요. 슬리퍼를 벗어서 동생을 때리기도 하고…. 아이를 카메라 옆으로 데리고 와서 손을 잡고 셔터를 눌렀어요. 부모의 얼굴이 카메라에 나오니까 가만히 멈춰요. 엄청나게 집중하더군요. 이후에 아이 엄마가 ‘카메라를 사줬더니 사진을 찍어 엄마한테 보여준다’면서 너무 기뻐하며 전화가 왔어요.”
―우리 사회에 재능을 가진 분들이 많지만 막상 이들이 나눔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조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경제적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거 아니면 못했죠. 프로골퍼 최경주씨와 산악인 엄홍길씨도 자선 재단을 만들었잖아요. 신예 골퍼들을 돕고, 소외 계층을 돕는 최경주씨의 자선 재단을 보고 롤모델로 삼았어요. 우선 자신이 자립하고 잘되어야 합니다. 내가 힘든데 남을 돕는 것은 어려워요. 저는 대구교구의 신부님으로 계신 외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타 사진에 빠져 있던 저에게 ‘여기 어려운 사람들 있으니 사진 좀 찍어봐라’고 부르셨죠. 보람과 책임감 때문에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사실 오래 전부터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싶었지만, 절차도 복잡하고 갖춰야 할 게 많아서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비영리단체를 만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돈과 재능을 나누려는 뜻있는 사람들을 돕는 이런 매개기관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2년 동안 현장에서 소외 계층을 만나면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직접 목격하셨을 텐데요. 어떤 해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메이저가 마이너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합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선 ‘빛과 그림자’가 있어야 합니다. 빛이 그림자를 점차 밝게 해줘야 해요.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절대 잘되지 않습니다. 소외된 아이들과의 불균형이 점점 심해지면 어느 순간에 다 허물어집니다. 사회적 비용을 계산해야 해요.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잘 키우는 게 내 아이를 잘 키우는 길입니다. 또 시대에 맞춘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도서관을 지어주거나 피자를 나눠주는 시대가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사진 교육을 시도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비용이면 아이들에게 빵을 실컷 먹일 수 있다고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유명 아이돌그룹이 소외 계층 아이들의 사진 촬영 모델로 나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