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하트재단 ‘2014 하트썸머뮤직캠프’
발달장애인 참여하는 무료 음악캠프 열자 문화예술에 관심 많은 부모 열기 뜨거워
KBS교향악단과 함께 배우는 수업… 재능 있는 학생에게 세세한 연주 지도
더 많은 발달장애인 참여하는 행사 할 것
“2년 전부터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수소문했지만, 그런 곳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바우처 사업이 적용되는 학원이 한 곳 있어 아이를 그곳에 보내고 있지만 수업 시간이 매주 2시간 정도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그룹 수업이 절반 가까이라 아쉬움이 남곤 했죠.”
김거곤(16·자폐성장애1급)군의 어머니 김정림(39)씨가 조용히 입을 뗐다.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김군은 평소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나 매미 울음소리만 들어도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소리에 예민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고함을 지를 때마다 날카롭게 반응해 종종 다툼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2년 전 우연히 한 관악제를 관람했을 때 김군은 관악기의 음을 ‘아름다운 선율’로 느끼며 오케스트라 연주에 흥미를 보였다. 김씨는 아들을 위해 클라리넷 교육을 시작했지만, 체계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지역의 유명 음악가들에게 정기 지도를 받는 방법도 알아봤지만, 50만원 가까운 비용을 추가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던 김씨 모자에게 큰 전환의 계기가 찾아왔다.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캠퍼스에서 지난 11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하트하트재단 ‘2014 하트썸머뮤직캠프(Heart Summer Music Camp)’ 참가자 83명에 포함된 것. 김군은 음악대학의 교수님으로부터 연주 방법을 지도받고 동료 6명과 함께 영화 ‘스팅’의 OST ‘엔터테이너’를 연습하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어머니 김씨는 “아이가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다른 친구들처럼 연주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기특했다”면서 “전문가로부터 일대일 레슨을 받아 연주가로 성장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주변 지인들과 나누곤 했는데, 그 소원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발달장애 청소년, 전문적 문화예술 교육 기회를 원하다
발달장애 아동·청소년에게 문화예술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정작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은 이들의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09년 발표한 ‘장애아동·청소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방안 연구Ⅰ: 문화예술·체육활동 지원방안’에 따르면 장애인 부모의 76%는 “자녀가 더 많은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답했지만, “지역 문화예술 시설과 프로그램, 전문 교사 수가 부족해 교육 참여가 어렵다”는 답변도 73%나 됐다.
반면 외국에서는 발달장애인을 포함, 장애 청소년들이 전문 문화예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다. 1974년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단체 ‘VSA(Very Special Arts)’는 52개국과 협력해 ‘극작가 발굴 프로그램’, ‘국제 영 솔로이스트 프로그램’ 등 장애 청소년들이 문화예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 과정을 꾸준히 개최해왔으며, 스웨덴에서도 1992년 유럽 최초의 발달장애인 예술학교 ‘리니아 예술학교’가 설립돼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애인 학생을 대상으로 예술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하트하트재단은 이러한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 문제를 개선해보고자 전국의 발달장애인 청소년 연주가들을 초청한 캠프를 기획했다. 김희은 하트하트재단 오케스트라사업부 부장은 “10년 가까이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얻은 교육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많은 발달장애 청소년이 접할 수 있도록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재단에서 무료로 음악 캠프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국 각지에서 참가 신청이 이어졌다. 서울에 올라오기 어려운 일부 지방 학부모들은 자녀의 연주 동영상을 촬영해 재단에 보내기도 했다. 캠프를 통해 사회성 향상을 기대하는 부모도 있었다.
◇전문가 지도 받고 동료 노래에 귀 기울이는 내일의 연주가들
11일 스트링 오케스트라팀 음악 레슨 시간. 서울여대 바롬관 4층의 연습실에서 현악기 연주자 10명이 자신의 연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연주곡이 엘가의 ‘사랑의 인사’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어떤 곡인지 가늠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불협화음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과연 이 팀이 오늘 내에 음을 맞출 수 있을까’ 궁금증이 들 무렵,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파트를 지도하는 장풀잎이슬 선생님이 참가자들에게 “‘준비’라고 말하면 악기를 들고 활을 켤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장씨는 합주를 멈췄다 재개할 때마다 같은 내용을 수차례 언급하더니, 옆에 있던 박수완(14·자폐성장애2급)양의 자세를 잡아주기 시작했다. 처음에 듣는 둥 마는 둥한 태도를 보이던 다른 참가자들은 시간이 지나자 꼰 다리를 풀거나 등을 곧추세워 의자에 딱 붙이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1층에서는 KBS교향악단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트럼펫 마스터클래스(Masterclass·전문 음악인이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가 열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연주하는 노래는 우울하면서 슬픈 분위기를 연출해야 해. 그런데 한결이의 트럼펫은 소리가 밝고 기쁘게 들려. 선생님이 연주할 테니 잘 들어봐.” 교향악단에서 트럼펫 부수석을 맡고 있는 정용균씨가 호흡을 가다듬더니 트럼펫에 숨을 불어넣는다. 조금 전까지 “빠빠빠빰” 우렁찬 소리가 들린 트럼펫에서 “빰~빰~빰~빰~” 마치 슬픔을 이기지 못한 사람이 작게 흐느끼는 듯한 떨림이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이한결(20·발달장애3급)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도 한층 상기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연주를 마친 정씨는 “평소에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곡의 템포와 소리 크기를 조절하고, 들숨과 날숨을 올바르게 컨트롤하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재단은 단기간 내에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KBS교향악단 단원들과 국내 주요 음악대학 교수진을 초빙했다. 국내 최고 연주자들의 조언을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참가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수업에 집중했다. 유전식 한양대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인데, 다들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임해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서로 음에 귀를 기울이는 하모니를 완성하다
함께 나흘간 같은 곡을 연주하고 음악으로 소통하면서, 참가자들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수완 양의 어머니 배영애(52)씨는 “아이가 평소에 남에게 다가가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는데, 여기서는 다른 조원들과 서로 오빠, 동생 호칭을 정하더니 금세 친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이야기했다.
미래의 발달장애 연주가 83인과 함께했던 하트썸머뮤직캠프는 참가자 전원이 참여한 갈라 콘서트를 끝으로, ‘미완성 교향곡’이 완성됐다.
하트하트재단은 이번 캠프 개최를 시작으로 오는 10월 전국의 발달장애 연주가가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하트포르테 콘서트’ 개최를 준비하는 등 더 많은 발달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