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지키는 투명한 운영 복지계의 벤처 꿈꿉니다”
소자본·소인력으로 시작, 35개 기업 프로젝트 진행
기업의 사회공헌은 장기적인 계획 필요해
기부자 의도대로 예산 쓰는 것이 중요
전문성 축적하려면 인재 대우 제대로 해야
밑바닥 현장을 아는 리더는 무섭다.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췄기 때문에, 추진동력만 있으면 로켓포처럼 불을 뿜는다.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민간독립재단인 ‘아이들과미래’ 박두준(48) 상임이사를 만났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선배의 권유로 자원봉사 관련 일을 하다 그 매력에 빠져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2004년 그는 송자 이사장의 면접을 거쳐 ‘아이들과미래’ 사무국장이 됐다. 직원 4명에 사업비는 거의 바닥나 있던 상태였다.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며 기업 사회공헌을 전문영역으로 택한 지 8년째, 직원은 22명으로 늘었고 기부금도 60억원에 이른다. 지난 6월, 그는 ‘아이들과미래’ 상임이사가 됐다. “밥벌이가 어려워 서른아홉 살에야 결혼했는데, 예전에 말렸던 친구들이 지금은 모두 부러워한다”고 했다. 종교기관이나 기업체의 지원이 없는 독립재단으로, 매년 꾸준히 성장한 비결을 들어봤다.
―’아이들과미래’는 기업 CSR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아이들과미래’는 2000년 벤처기업들이 ‘복지계의 벤처를 만들자’며 설립한 것입니다. 당시 아름다운재단, 여성재단 등 독립재단을 만드는 트렌드가 있었거든요. 58억원을 갖고 시작했는데, 자본금 30억원을 제외한 사업비가 28억원 정도였어요. 사무국장으로 왔더니, 사업비는 거의 다 쓴 상태였어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처럼 모금활동을 해서 사업을 배분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인력도 인프라도 없었죠. 틈새시장으로 ‘기업 사회공헌을 해보자’고 했어요. 2005년 8월에 삼성증권으로부터 1억원을 받아 ‘청소년 경제증권교실’ 프로젝트를 한 게 최초였는데, 매년 한두 개씩 늘어 지금은 35개 기업과 함께 46개의 프로젝트를 해나가고 있어요. 삼성증권은 7년째 계속하고 있고, 단기성 프로젝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매년 계속되니까 돌담 쌓듯이 쌓아온 거죠.”
―지속적으로 기업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기부자의 뜻대로 돈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기부자들은 자기 돈이 잘 쓰이고, 깔끔하게 쓰이기를 원합니다. 약속한 대로 돈을 쓰고, 예산과목별로 10% 이상 변경할 일이 생기면, 기부자와 협의해서 변경하고요. 간혹 기부금을 편법으로 쓰려고 하는 기업도 있어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저희는 거절합니다. 협약식 체결하기 3일 전에, 3억원을 거절한 적도 있어요. 6개월간 공들여 제안서를 수없이 변경하고 이제 막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데 이 거액을 거절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하지만 돈을 집행하는 과정이 우리 재단의 원칙에 어긋나서 거절했어요. 외부의 돈을 맡아서 쓰는 입장인데, 원칙이 없으면 흔들리니까요. 기업이든 비영리단체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약속을 하면 지키면 됩니다. 사소한 게 쌓여서 신뢰가 틀어지거든요.”
―많은 NGO들이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지속성이 없어, 정식직원이 아닌 계약직원을 쓴다고 합니다.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만으로 조직을 운영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듯한데요.
“저희는 22명이 모두 정규직입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들은 모두 정규직을 써야 그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공헌도 아이디어 싸움입니다. 김장 담그기처럼 2~3일 만에 끝나는 프로그램이 아니죠. 기업의 핵심제품과 고객을 분석하고, 직원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고, 아동이나 지역사회에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처음에는 ‘소외아동 제주도 여행 같은 프로그램을 하면 사진도 나오고 좋을 텐데 왜 이걸 하나’라는 내부 불만도 있었어요. 교육 프로그램은 개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국 그게 경쟁력이 됐어요. 2007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와 공부방 어린이 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할 때, ‘저런 걸 왜 하느냐’고 했는데 1~2년 있으니까 다른 NPO에서도 많이 따라 했어요. NPO와 기업의 파트너십이 잘되려면 결국 전문성과 신뢰, 두 가지 모두 필요한 것 같아요.”
―미국 내 최대 비영리분야 등급평가기관인 ‘채러티 내비게이터(Charity Navigator)’의 평가를 보니 조직의 효율성과 능력이 높아졌다고 되어있더군요. 운영비는 10.9%로 전년대비 9.5% 감소했고, 모금액은 41.13%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해외 NPO 평가기관에 등록, 평가를 받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채러티 내비게이터에는 현재 미국 내 5200개 자선단체 평가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아이들과미래’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주 자세히 공개하는데, 이에 대해 공식적인 외부평가를 한번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프로젝트 전체금액 중 10%를 운영비로 쓰면 효율성이 아주 높은 상위 클래스에 속합니다. 30%가량을 운영비로 쓰면 적당하다고 보고, 40~50%를 쓰면 효율성이 매우 낮다고 보지요. 저희는 효율성이 높은 축에 속합니다. 올해부턴 개인모금을 통한 기부금은 운영비를 하나도 떼지 않고 전액을 장학금이나 결연사업에 지원하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자기가 기부한 돈을 NPO의 운영비로 안 썼으면 하는 게 사람들 심리거든요. 물론 재정에 얼마나 부담이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벤처정신을 갖고 도전해보고 있어요.”
―이와 관련, ‘한국 가이드스타’의 사무총장을 겸직하면서 비영리단체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고 계신데요. 이런 논의들이 비영리단체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제기되다 보니 일부 반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국 가이드스타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미국의 180만개 비영리단체 회계정보와 사업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5년 미국 가이드스타 측에 한국에도 이런 걸 도입하고 싶다고 타진했을 때의 일입니다. 송자 이사장님께서 기업 주식공개 당시의 일화를 말씀하셨어요. 대기업 오너들이 ‘내 재산을 왜 공개하느냐’며 반발이 심했는데, 결국 한국 기업이 주식공개를 통해 외부자본을 끌어들여 글로벌 기업으로 클 수 있었다고요. 비영리단체의 회계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이걸 통해 비영리시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자산규모가 10억원 이상이거나, 연간 기부금이 5억원 이상인 단체는 운영이나 기부금 정보를 국세청에 공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가장 보완되어야 할 시스템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저는 이제 우리 재단의 직원들이 가장 좋은 조건에서 자랑스러운 마음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내년에는 급여도 올리고 싶습니다. 비영리단체도 유능한 인재를 쓸 때는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전문성이 유지되고, 동기부여가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거든요. 앞으로 우리 사회도 자원봉사자와 비영리단체 유급직원, 기부자에 대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자원봉사자는 돈을 받지 않고 봉사하고, 비영리단체 직원들도 공무원이나 삼성전자 직원처럼 대우해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