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기업 사회공헌의 최근 동향과 비영리단체의 대응 전략
김병기 사단법인 아이들과미래 실장
우리나라 모금 시장 중 기업 기부금은 약 5조, 개인 기부금은 약 8조라고 합니다. 언뜻 보면 개인 기부금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 8조 중 5조가 종교 기부금이기에, 사실상 기부금 규모는 기업이 가장 크지요. 이렇듯 기업은 비영리단체에게 꼭 필요한 파트너입니다. 기업과 협력해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성공적인 사회공헌활동을 이루기 위해선 기업의 CSR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맞춰 기업의 CSR 동향을 분석하는 일도 중요하죠.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재단의 경영전략실 실장이자 재단법인 한국가이드스타에서 IT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병기 실장이, 문재인 정부 출범에 따른 기업들의 CSR 동향부터 성공적인 협력 비결까지, 샅샅이 알려 드립니다.
Q1. 기업의 사회공헌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업은 물론 사회공헌 전체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세금을 더 걷어들여 공공의 목적에 더 쓰겠다고 했는데요. 바로 ‘큰 정부’를 표방한 것이지요. 더욱이 정부가 기업 사회공헌, 모금시장, 제3섹터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함에 따라 각 섹터별 사회공헌 동향도 격변의 흐름 속에 있답니다.
섹터별로 설명을 드리자면, 먼저 2섹터인 기업은 보다 재무 투명성은 물론 ‘사회공헌’에 대한 책무도 강해질 것입니다. 지난 1월 정부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일명 외감법)’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로 개정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언뜻 보면 ‘등’자만 더 들어간 걸로 보이지만, 사실 큰 변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식회사만이 재무 상태표나 사업실적 등을 다 공시해야 했죠. 그런데 몇몇 회사들 특히 외국계 기업들이 이 ‘의무 공시(公示)’를 피하기 위해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 회사 형태로 한국에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찌, 구글 등이 그랬죠. 이런 회사들은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가도 공시할 필요가 없으니 그만큼 사회공헌에도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회공헌에 돈을 쓰는지, 안 쓰는지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요. 그런데 이 법이 개정되면 여태 재무상태나 사업실적을 공시할 필요가 없었던 유한회사에도 CSR 정보의 공시 의무를 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공시기준이 더 강화될 전망이에요. 국회에 사회공헌포럼이라고 있습니다. 원혜영 의원 등, 각 당 국회의원들이 여기 소속돼 있는데요. 이 포럼에서는 ‘CSR 성과와 정보의 공시는 중소기업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요.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중소기업의 CSR 성과와 정보에 대한 공시가 이뤄지고 있고 심지어 중국도 작년에 자산법이 통과되면서 의무공시가 됐어요. 특히 독일은 기업 공시 항목 16개 중에 ‘공익의 목적으로 어느 재단에 얼마를 줬다’까지도 다 쓰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의무 공시 기준을 강화해 기업 사회공헌과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을 짚어보겠다는 겁니다.
이제 이런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한국 정부 입장에서 외국기업이 한국에서 돈을 수백, 수천억을 벌어가는데 사회공헌 비용은 0원이라면 그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겠어요? 그러니 기업 입장에선 의무 공시를 함에 따라 사회공헌에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이죠. 또 중소기업들도 사회공헌에 보다 공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예 사회공헌에 신경쓰지 않거나, 보여주기식으로 했던 기업들은 이제 대대적인 사회공헌 전략 개편이 필요하지요.
그럼 비영리단체는 이런 기업들을 공략해야 합니다. 기업의 연차보고서를 분석해서 회사에 맞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짜야죠. 비영리단체의 투명성도 강조해야 합니다. 당장 마음이 급한 기업들은 자신을 대신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 비영리단체와 필히 함께하고 싶을 겁니다.
Q2. 문재인 정부 정책은 기업뿐 아니라 시민사회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하는데요. 문재인정부의 제3섹터 관한 대표적인 정책은 무엇이며 단체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낸 공약집의 1번 항목이 뭔지 아세요? 바로 ‘적폐청산’이에요. 그 적폐청산에는 6개 항목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시민공익위원회’ 설치입니다.
시민공익위원회가 무엇이냐. 미르재단 아시죠? 전 정권에서 재단 관련 비리가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제3섹터의 투명성 강화가 시급한 해결 과제로 떠올랐죠. 그래서 제3섹터가 돈을 제대로 잘 쓰는지 감시하는 조직이 시민공익위원회입니다. 사실 예전에도 정부에서 시민사회를 관리 감독하긴 했지만, 단체의 종류에 따라 주무관청이 다 달랐어요. 예를 들어 사회복지법인은 보건복지부, 국제구호 사단법인은 외교부가 주무관청이 됩니다. 게다가 그 관리 범위가 허가 등에만 한해 있어서 실질적인 관리 감독은 국세청에서 하게 되죠. 기부금과 같은 세법에 관련된 것들은 전부 다 국세청의 통과를 받아야 하니까요. 일본이나 호주는 예전부터 이런 방식을 사용해왔어요. 일본은 공익법인인정등위원회가 있어서 단체의 설립부터 청산까지 한곳에서 다 관리합니다. 반면 여러 주무관청이 각기 관리하기 때문에 관리에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시민공익위원회는 이걸 다 한번에 관리 감독하겠다는 겁니다. 힘을 집중하겠다는 거죠.
다음은 민법 32조의 개정. 문제가 된 K스포츠재단은 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잖아요. 사회복지법인 같은 경우에는 사회복지기관에 대한 법률이 있고, 의료재단은 의료법, 학교법인은 학교사학법이 있는데, 사단법인, 재단법인은 민법 32조에 규정만 되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부정부패가 일어나도 제대로 관리 감독, 적발이 안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법 32조도 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요.
또 법인 설립 관련 법도 바뀔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공익법인 수가 인구대비 좀 많아요. 게다가 자산이 10억인데 천만원 지출하는 데도 있고, 자산이 10억인데 천만원도 안 쓰는 데가 있어요. 후자는 주로 장학재단이 이러는데요. 금리가 낮으니 재단 이익이 안 나오고 따라서 장학금도 못 주는… 이런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몇몇 장학재단은 자기 장학재단과 타 장학재단을 합병하려고 합니다. 왜 청산을 하지 않고 합병을 할까요? 우리나라는 재단 설립은 쉬워도 청산은 어려워요. 청산 후에는 재단의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고요. 그러니 재단 사정이 안 좋아서 문을 닫고 싶어도 못 닫는 거죠.
이렇게 재단 설립과 관리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존재하기에 정부는 재단 설립은 쉽지만 관리 감독은 까다롭게 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꾸려고 합니다.
즉 문재인 정부는 이런 법제도의 개정, 감독 기관의 설립 등을 통해서 계속해서 3섹터에게 허용해줄 건 허용해 주지만 여태까지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요.
정리하면, ‘문재인 정부는 큰 정부를 표방한다. 공익의 목적이 필요한 행위들을 우리가 하겠다. 그리고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낱낱이 밝혀라. 더불어 NGO들이 정부와 기업 지원금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감독할 것이며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3섹터들이 나오기를 지원하겠다.’ 이게 지금 정부의 움직임입니다.
그럼 제3섹터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정부의 규제와 처벌이 강화됨에 따라 제3섹터는 스스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준비를 빠르게 해나가야 합니다. 이제 공시양식도 바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 비영리단체 공시 항목 양식이 11장 밖에 안돼요. 반면 미국의 공시 항목은 엄청나게 많아요. 심지어 사무국장 이상 임원들의 연봉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어요. 이제 우리나라 비영리단체들도 정보의 투명성 압박을 엄청나게 받을 겁니다. 비단 정부가 요구하지 않아도 비영리단체들은 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미국 NGO들이 한국에 직접 진출을 시도, 페이스북의 도네이션 서비스를 통해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펼쳐 가고 있는데요. 반응이 꽤 좋습니다.
이제 젊은 사람들의 기부 단체 선택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단체 규모나 명성을 봤다면 이제는 단체의 투명성과 깊이 있고 재미있는 모금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내느냐를 가지고 기부 여부를 판단해요. 지금 많은 대형 비영리단체들의 주 후원자들은 중노년층이 대부분인데요. 단체의 미래를 생각해선 젊은 층을 절대 무시하면 안됩니다. 이들을 주 후원층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그 첫번째 단계가 정보 투명성, 정보 공개라는 거예요.
Q3. 기업이 이제 사회공헌을 활발히 그리고 투명하게 할 것이기에 기업에 맞는 CSR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라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 기조 아래 기업 후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정보 공개, 투명성 이야기를 했는데요. 투명성은 개인 기부자 뿐 아니라 기업도 단체에게 필히 요구하는 사항입니다. 벤츠의 경우에는 사회공헌 사업이 끝나면 회계사를 보내서 다 조사해요. 그리고 벤츠가 요구하는 사항을 만족하지 못하면 다시는 벤츠와 일할 수 없죠.
두번째는 기업을 기업보다 잘 알아야 합니다. CSR로 기업 관계자를 만날 때 명함을 잘 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기업이 CSR을 하는 이유, CSR을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CSR 담당자 명함에 마케팅팀이라고 적혀 있다면 ‘돈을 버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뜻이고, 커뮤니케이션 팀이라면 ‘기사가 많이 나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또 HR팀이 나왔다면 ‘임직원 봉사’가 무조건 CSR 활동에 들어가길 원할 겁니다. 이 기업이 사회공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이를 위해선 사회공헌 담당자가 어디 소속인지 아는 게 첫번째이고요.
제가 예전에 A도시공사에게 기업 CSR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평가’라고 하더군요. 공사들은 업무에 대한 평가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데 거기서 A점수를 받아야 성과금이 나온다고 해요. 그래서 경영 평가에서 사회공헌이 가지고 있는 항목이 무엇이고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가 이 기업의 주요 관심사였던 거죠. 그럼 이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기업 사회공헌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취약계층을 돕는다’는 미션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요. 여기에 더불어 기업 사회공헌을 잘 알릴 수 있도록 홍보 채널을 확보해야 하는 거죠. 공기업의 경우 중요 이해관계자가 정부이기 때문에 인터넷 전문 매체 또는 지역 일간지 보다는 전국 일간지 특히 ‘국간지’에 기사를 내는 것이 좋습니다.
또 중요한 것이 기업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에요. CSR 관점에서 보면 기업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이윤을 추구하면서 사회 문제를 발생시키는 기업,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회사 같은 것이죠. 그리고 제품 및 서비스를 생산해도 사회 문제가 생기지 않는 기업이 있어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교육 기업이죠.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사회 문제를 발생시키는 기업에게 사회공헌을 제안할 경우, ‘이 기업이 돈을 벌면서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등,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반대로 교육회사에게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로 어떻게 공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 관련 사회공헌을 어떻게 할지를 제안해야 하죠.
세번째는 기업과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그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을 아웃소싱 받는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의 사회공헌 전략은 우리가 다 만든다’라는 자세로, 그들의 전략에 참여하고 비전에 동참하면 락인(lock in),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게 됩니다. 그럼 파트너십을 끊을 수 없죠. 오랫동안 만들어온 관계를 다른 재단이 다시 만들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른손은 지금 하는 사업을 잘 유지하면서도, 왼손으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맹과 연대를 맺으세요. 비영리 섹터에서 어떤 특정 캠페인, 사회공헌사업을 재단 둘이 함께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일반 기업에 비해 더 사람을 생각하고, 네트워킹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실제 사업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별로 없죠. 그런데 요즘 사회는 어떤가요? 수많은 문제들이 하루에도 열 두번씩 일어나고 문제 또한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이에 한 가지 문제를 풀려고 해도 수준이 상당히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데, 비영리 단체가 여러 전문성을 다 가지고 있나요? 불가능하지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역량에 대해서는 다른 단체와 함께해서 큰 캠페인을 만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동 문화 예술 교육 사회공헌은 아동복지 단체와 문화예술지원 단체가 힘을 합치는 식입니다. 제1, 제2, 제3섹터 간 연대 뿐 아니라 섹터 내에서의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 집단 임팩트)’가 이뤄지면 보다 전문적이고 혁신적인 사회공헌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 이 글은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열린 ‘2017 비영리리더스쿨 4기’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