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모금의 설계부터 리스크 관리까지
김효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본부장
모금은 친구에게 돈을 꾸는 것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말 한 마디 꺼내는 일조차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비영리 조직에게 모금은 떨쳐낼 수 없는 숙명 같은 일입니다. 각 기관에 맞는 모금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를 성공적으로 이끈 김효진 모금본부장은 수강생들의 소속기관에 맞춰 모금 설계부터 리스크까지 전반적인 모금 기획과 실행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Q1. 모금을 설계할 때 염두에 둬야할 사항들은 무엇인가요?
우선 염두에 둘 것은 ‘모금의 황금 비율’입니다. 이 비율은 ‘2:8의 원칙’으로도 불리는데요, ‘전체 기부자 20%가 전체 모금액의 80%를 차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 어느 기관이나 이런 룰을 가지고 있지요. 각 기관의 모금 용량(capacity)은 모금액 상위 기관의 모금액에 곱하기 10을 하면 산출된다고 합니다.
모금 구조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모금은 고액기부, 중‧소액기부, 소액기부로 나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모금 목표 1000만원을 달성하기 위해 ‘1만 원짜리 티켓을 1000장 팔자’는 전략을 세운다면, ‘중‧소액 기부만으로 모금을 하겠다’는 한 셈이 되죠.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2000원’이라고 합니다. 1만원을 내기도 힘들고, 1000장이라는 많은 숫자만큼 파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땐 ‘100만 원짜리 표 3장, 50만 원짜리 10장, 1만 원짜리 몇 장, 1000원짜리 대부분’과 같은 식으로 전략을 짜야합니다.
각 모금의 난이도와 단체의 역량을 따져 적합한 모금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합니다. 가장 낮은 난이도의 모금은 일시적인 이벤트, 포인트 기부 등입니다. 다소 수월하게 모금이 되지만, 투입되는 직원이 많이 필요하죠. 그 다음이 직장 단위로 월급을 기부하는 ‘직장인 나눔’, 가게 수익을 기부하는 ‘착한 가게’와 같은 ‘정기 기부’이고, ‘아너 소사이어티’ 같은 고액기부가 그 다음으로 어렵습니다. 최고 난이도는 유산기부, 초고액기부 등의 ‘계획기부’인데, 기부자와 단체 간 관계망이 형성돼있지 않으면 해내기 어렵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년 개인 기부액 1942억 원 중 310억원이 고액기부 모금액인데, 전체 기부자 중에서는 0.01%도 안 되는 이들이 전체 모금액의 16%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모금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할 키워드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장가능성’입니다. 프로그램이 얼마만큼 시장성이 있는가, 기부자가 얼마나 있는가 등을 따져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효율성’입니다. 인력, 예산, 행정력 투입 대비 모금액이 높은가도 따져봐야 합니다. 다음은 ‘확장성’, 1명의 기부자 개발하는데 드는 에너지와 난이도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기부자와의 관계 유지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의미하는 ‘관계성’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Q2. 조직의 자체 모금 역량을 파악할 때 고려해야할 점들은 무엇인가요?
우선, 각 조직이 ‘조직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명확한 사명이 있고 이를 직원들이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엘리베이터를 타는 짧은 순간동안 조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소위 ‘엘리베이터 토킹’이 가능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이를 어려워하는 구성원이 많습니다.
조직의 명성과 브랜드가 약하다면 두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세요. 하나는, 인적 네트워크 전략, 즉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위촉해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법입니다. 공동모금회도 모금위, 배분위, 기획위, 시민평가지원단 등 위원회를 엄청 많이 둡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모금시장 타겟을 아주 좁히는 방법도 가능합니다. 아프리카 미래재단이라고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하는 단체가 있는데, 굉장히 작은 조직인데도 탄탄합니다. 조직 미션에 부합해 기독교인과 의사만을 대상으로 모금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기부자와 미래 기부자가 항시 컨택할 수 있는 모금 담당자도 있어야 합니다. 기부자 현황, 모금액 사용처 등 ‘기부 히스토리’를 관리할 수 있는 내부 전산시스템 구축, 모금기술과 외부정보 수집 능력을 갖춘 직원들의 역량도 중요합니다.
Q3. 모금 대상자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우선, 공중(public)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중’은 조직과 이해관계를 가진, 이슈가 있는, 견해가 있는 집단을 뜻합니다. 그래프를 그려볼까요. X축은 ‘조직에 대한 이해도’로, Y축은 ‘조직에 대한 관여도’로 두면 그래프를 크게 4분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중을 이렇게 활동공중(이해도, 관여도 High), 잠재적 공중(이해도 Low, 관여도 High), 자각적 공중(이해도 High, 관여도 Low), 비공중(이해도, 관여도 Low)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모금을 효과적으로 한다면 당연히 ‘활동공중’부터 해야 하는데, 단체들은 ‘비공중’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지자체장, 국회의원 등의 ‘잠재적 공중’을 ‘활동 공중’으로 데려오려면 이 집단에 대한 홍보는 특별히 관리 해야겠죠. ‘자각적 공중’을 끌어들이려면 위원으로 위촉해 관여도를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기부자는 대부분 ‘비공중’에 있어요. 그럴 때 저희는 관여도를 갑자기 높여서 이해도를 높이는 전략을 씁니다. 대기업 회장님을 중앙회 회장으로 위촉하고, 이사회 위원들에게는 각종 워크숍을 통해 특별 교육을 하는 것들이 여기 해당됩니다. 특히 고액기부의 경우는 ‘안에서 바깥으로’, 조직 내부에서 먼저 시작해야합니다.
두 번째 숙제는 ‘자원분석’입니다. 자원분석은 지금 우리에게 기부할 수 있는 자원이 누구인지 찾아내고 기부자를 카테고리화하는 과정입니다. 현재 기부자 리스트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고, 기부를 했다가 중단한 사람은 누구고 왜 중단했는지, 한 번도 안했던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공동모금회의 경우는 이런 이들을 여러 경로로 찾습니다. ‘재벌닷컴’에서 고액 자산가를 찾기도 하고, 금융전문지 포브스지, 타 기관 고액기부자 리스트, 공직자의 재산 공개 정보 등이죠. 여기서 중요한 인적네트워크 전략이 바로 ‘키 퍼슨(key person)’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키 퍼슨은 돈이 많다기보다 영향력이 큰 사람을 의미합니다.
Q4. 분석을 끝낸 후 모금을 어떻게 요청해야할까요?
첫째, 요청하고, 또 요청하세요. 기부자는 요청을 받으면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자신감 있게 적극적, 지속적으로 요청하세요. 둘째, 기부자에 따라서 다르게 요청해야 합니다. 영국 Money for good의 ‘기부자 유형 연구(2013)’에 따르면, 기부자의 유형은 겸손한 ‘종교형 기부자’부터, “내가 기부하면 훈장 줄 거냐”며 기부를 거래처럼 생각하는 ‘사업가형 기부자’까지 다양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모금은 ‘심사숙고형 기부자’와 종교형 기부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하지만 작은 기관일수록 사업가형을 더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유형을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저는 모금 직원교육을 할 때 “사무실이 아니라 기부자가 있는 공간으로 가서 만나라”고 합니다. 주거래 은행부터 그 사람의 과시 성향, 관심사 등까지 알아차릴 게 많습니다.
여기서 좀 더 영업력을 증강시키는 팁을 드리자면, 기부자에게 ‘감동적인 피드백’을 하십시오. 그게 비영리기관이 줄 수 있는 선물입니다. 기부 내역과 결과를 성실히 보고하고, ‘포도알’처럼 기부자가 속한 연결망을 전부 관리하세요. 그럼 기부자가 모금가가 돼 새로운 기부자를 끌어옵니다.
Q5.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의 성공 비결이 궁금합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2007년 12월 1일에 시작한 ‘1억 원 고액 기부자 모임’입니다. 원래는 1억 원을 한 번에 완납하는 정회원밖에 없었지만, 자산과 소득이 많아도 한 번에 1억을 내기 어려운 이들도 있기에 ‘약정회원’이라는 것을 만들게 됐어요. 하다 보니 유가족들이 돌아가신 가족들의 이름으로 유산, 보험금 등을 기부하는 경우도 자꾸 생기는 등, 계속 진화해왔습니다.
우선, ‘아너 소사이어티’란 이름은 ‘브랜드 고급화 전략’의 일환으로 나왔습니다. 1980년대에 ‘가성비 좋은 자동차’로 시장을 석권한 도요타가 ‘넥서스’라는 고급세단을 개발하면서 도요타란 이름을 빼버린 전략과 유사하죠. 두 번째 전략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했습니다. 1호 기부자는 우연히 들어왔지만, 그 후론 조직 내부 기업 회장님 위원들에게 부탁하여 기부를 받아냈어요. 그 분들이 아는 이들을 계속 연결하면서 성장해나간 거죠. 31명이 될 때까지도 조직 내에서 “이거 괜히 했다” 소리가 나왔지만, 2012년 ‘인간관계전략’을 도입한 후론 드라마틱한 효과가 났습니다. 기부자를 지역별로 관리하면서 “10명 이상이 돼야 ‘지역클럽’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각 지역의 클럽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클럽 간 경쟁이 붙기 시작할 무렵, ‘키 퍼슨’들을 불러 클럽 회장, 부회장에 앉히고 ‘패밀리 아너’를 만들어 그 가족까지 연계하니 폭발적인 힘으로 늘어났습니다.
아너 소사이어티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4가지 문제점이 있었어요. 첫째는 ‘완납을 하고 나면 기부 증액이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만들어 진 것이 ‘패밀리 아너(가족 연계)’였지만 아직 완전 해결이 되진 않았습니다. ‘평생회원’으로 지속적인 예우 관리를 해나가는 부분도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전산 시스템 구축으로 대처하고 있죠. 10억 이상 초고액 기부자가 4명에 불과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를 대처하기 위해 ‘레거시 클럽(유산 기부)’ 등을 만들었죠. 우리나라는 현금 외 기부가 어렵다는 환경적 제한도 있는데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희망자산나눔 캠페인’으로 자산기부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Q6. 모금가는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할까요?
저는 네 가지 키워드로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사람’, 상대방을 연구하고 그의 마음을 얻는 일이 중요합니다. 인물 정보를 연구하는데도 절대 돈을 아까워하지 마세요. 요즘 온라인 사이트를 보면 그 사람의 동창 관계, 지인 관계 등 인맥 관계도 다 나옵니다. 둘째는 ‘동기’입니다. 그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인센티브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욕구를 파악하고, 기부에 대한 교환가치를 찾아내 교환하는 것도 윈-윈의 방법입니다. 때로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모금에 성공할 수 있죠. 다음은 ‘기준’, 상대방의 기준으로 협상해야 하는데, 이 역시 상대방을 잘 분석하면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론 ‘손해 본 듯’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내가 다 얻겠다, 100% 전승을 하겠다”가 아니라 상호이득을 보기 위해 ‘손해 본 듯’ 하는 사람이 승리하게 됩니다.
좋은 모금가는 모금액을 많이 끌어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스토리를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실전을 통해 기부자들로부터 이야기를 가져왔는가, 또 그 것이 내 이야기가 됐는가가 중요하거든요. 후배들에게 10년 지나서 난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누구도 만났었다는 등 기부자들과의 스토리를 많이 얘기 해줄 수 있는 그런 모금가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1. 비판을 받고 싶지 않으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
2.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3.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을 활용하라
4. 감정을 공유하라
5. 공감력을 키워라
6. 잘 듣는 사람이 되어라
7. 상대를 연구하라 (이름을 기억하라)
8. 신세를 지게 하라 (베풀어라)
9. 상대가 결정하게 유도하라
※ 이 글은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열린 ‘2017 비영리리더스쿨 4기’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