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⑥ 세이브더칠드런 김노보 이사장

“내가 직접…” 참여형 캠페인 든든한 후원자 모집 비결이죠
적선하듯 돈 주던 사람들 정기후원자 한 명도 없어
길거리 캠페인 최초 시도 현재 15만명 270억 모금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아내 잃은 남편이 뜨개질 해 보내는 등 감동적 사연 잇달아
한국NGO 해외원조 과제 한 지역 오래 지원해야

1919년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에글렌타인 젭이라는 여성이 전단지를 나눠주다 체포됐다. “굶주림을 물리치자”는 제목과 함께 기아에 시달리는 오스트리아 어린이의 사진을 담은 전단지 때문이었다. 적국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며칠 뒤 열린 재판에서 그녀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그 취지에 공감한 재판장은 단지 벌금 5파운드만 선고했다. 검찰은 이 5파운드를 기부했고, 이것이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기금의 시작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1953년 6·25전쟁 당시 한국지부를 세웠던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 30개 중 9위에 속한다. 지난해 12월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노보 이사장은 2004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30년간 기업에서 일하시다 한국네슬레 상무로 퇴직한 후 2004년 세이브더칠드런에 합류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당시 저는 심장병 어린이 치료지원을 하던 한국어린이보호재단의 후원자였습니다. 2003년 정년퇴직하고 쉬고 있는데, 2004년 무렵 전임 이사장님께서 세이브더칠드런과 한국어린이보호재단의 합병작업을 도와달라고 하셔서, 감사로 활동했습니다. 직원 수 10여명인 작은 조직이었는데, 6개월 정도 지켜보니 너무 허술했어요. 직원들한테 10명씩 할당을 주면서 아는 사람을 통해 후원을 부탁하는 식이었어요. 기업체에 제안서를 써가는 것도, 구걸하는 형태였어요. ‘평생 할 일인데 전문성을 키워야겠다’ 싶어서, 제가 전임 이사장님께 ‘3개월만 후원자 모으는 일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죠.”

―후원자를 모집하는 일을 담당한 후 변화가 많이 있으셨나요.

“이것저것 다 시도해봤어요. 길거리에 나가 후원자를 모집한 것도 처음으로 시도했죠. 이전에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길거리 캠페인을 맡기다 보니 설득력도 없고 절박함도 없어서인지, 사람들이 적선하듯 주는 1000원짜리, 1만원짜리뿐 정기후원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예 직업적으로 후원자 모집을 할 사람을 뽑아 하루 일당을 주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한 후 지하철역 등으로 배치했어요. 10개월 만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도 가장 확고한 후원자 모집 방법입니다. 요즘은 여러 NGO에서 길거리 모금을 하지만,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 NGO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 정형화된 매너와 화법을 갖춘 직원 교육 등 노하우가 필요합니다.”(2004년 개인모금액이 6억원에 불과하던 세이브더칠드런은 현재 15만명의 개인후원자가 낸 모금액만 270억여원에 달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국내 10위권 안에 드는 중견 NGO인데요. 종교적인 기반이 없는 NGO로서, 후원자를 늘려온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성공한 비결 중 하나는 캠페인입니다.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 인지도가 세이브더칠드런이란 단체 인지도보다 더 높아요. 아프리카 어린이와 가정에 주요 생계 수단인 염소를 보내주는 ‘아프리카에 염소 보내기’ 캠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연예인을 아프리카에 보내서 슬프고 가슴 아픈 장면만 찍어서 방영하지 말고, 새로운 비주얼을 도입해보자고 했어요. 염소를 통해 쉽게 기부하는 스토리를 개발해, 이를 유튜브 등을 통해 전파시키고 있어요. 저희는 1:1 아동결연 후원이 전체의 10%밖에 안 됩니다. 보건의료나, 에이즈 인식 개선, 교육 등 분야별로 후원금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5년째 계속되는 모자뜨기 캠페인처럼 꾸준한 관심을 받는 캠페인이 많지 않은데, 캠페인의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요.

“참여형 캠페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직접, 내 시간을 할애해서, 내 재능을 써서’ 하는 기부이지요. 처음엔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왜 털모자가 필요해?’라는 의문을 가졌어요. 신생아 체온을 보호하고 유지시켜, 사망률을 70%까지 줄일 수 있다니,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요. 유산을 한 여성이 뜨개질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고 다시 아기를 갖게 된 스토리, 아내를 잃은 남편이 아내를 대신해 직접 뜨개질을 해서 보내온 스토리 등 감동적인 사연이 많았어요. 올해 6주년을 준비하고 있는데, 참여자들은 작년부터 ‘뜨고보는 날’을 만들어 오프라인 만남도 갖고 있어요. 캠페인이 성공하려면 오래 해야 합니다. 원래 모자뜨기 캠페인도 길거리 후원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계속 한 겁니다. 또 캠페인에 동참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 성공합니다. 사람들을 좀 귀찮게 해야 합니다.”(이 캠페인은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에 속한 30개 원조공여국 중 혁신사례로 꼽혀, 독일과 홍콩에서도 캠페인을 배워가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4월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학교를 방문한 김노보 이사장.
지난 4월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학교를 방문한 김노보 이사장.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권리 옹호 분야에서 인식개선 캠페인 등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국내의 아동관련 애드보커시(Advocacy·권리옹호) 활동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미진합니다.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수준이 낮고, 4년째 OECD 중 아동·청소년 행복지수가 꼴찌로 조사되기도 했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많은 NGO에서 정책옹호활동을 힘있게 못하는 것은 준비가 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옹호활동을 하려면 상당한 기초자료 연구가 필요해요. 작년에 우리가 처음으로 아동의 목소리를 담은 보고서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했어요. 경남 합천에 있는 아이들을 제네바에 데리고 가서,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담은 불만 목소리를 아동권리위원회에서 설명했어요. 유엔에서 이걸 채택해, 한국 정부에 보내는 권고안에 실어서 보냈어요. 이것이 대표적인 옹호활동 사례예요. 지난해 교대생·사범대생 1400명에 대해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더니, 78%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어요. 아동권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교사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교과부에 ‘아동인권’을 필수과목으로 해달라고 건의를 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을 비롯한 많은 NGO들이 점점 해외원조를 많이 늘려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한국형 해외원조 방식을 두고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해외원조협의회에 등록된 NGO 90여곳 중 거의 대부분이 10억 미만의 소규모 NGO입니다.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합니다. 또 단발성으로 이 지역, 저 지역에다 학교를 지어주는 프로젝트보다 한 지역에 오랫동안 눌러앉아서 그 지역 사람들의 역량을 키워줘야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사업장 중 하나는 방글라데시의 4대 성매매촌 가운데 있어요. 1000여명의 성매매 여성이 있는데, 열 살인 아이한테 성매매를 시키고, 부모들은 그걸로 노후생활을 하는 게 관행이에요. 그 지역에서 인권교육을 하고, 학교를 짓고, ‘그룹홈’을 만들어 살도록 하는 등 꾸준히 애드보커시 활동을 했어요. 이 학교가 전국 상위권에 속하자, 그전에는 성매매촌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며 지역주민들이 외면했는데 점점 자신의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지속가능한 원조 방식이 효과가 있습니다.”

―지난 8년간 비영리단체의 리더로서 보낸 8년이 30년의 기업체 임직원으로 있던 시간과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영리기관에서 보지 못하는 세상이 보였죠. 주위에 죄 없이 고통받는 애들이 너무 많아요. 또 그 애들을 마음 아파하고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좋은 분들도 참 많아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선천성심장병 어린이가 4~5시간 수술을 받고 회복을 하고 나면, 뛰어다녀요. 상상할 수조차 없던 모습이죠. 다행히 도와주는 기관을 잘 만난 경우죠. 반대 사례도 많아요. 부모한테 학대받던 아이를 ‘그룹홈’에 데려와 한 달 정도 잘 먹이고 학교에 보내주면, 상처투성이이던 아이가 깨끗해집니다. 일하는 보람을 느끼죠. 하지만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없으니 부모한테 각서를 받고 되돌려보내야 해요. 그 애들을 보낼 때면 참 가슴이 아파요. ‘또 학대당할 텐데’ 하는 어두운 마음이 자꾸 들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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