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혹시 일요일 오후에 잠깐 저희 애들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지난 18일, 저는 다급히 몇 통의 전화를 돌렸습니다. 더나은미래는 2주에 한 번씩 일요일 오후에 지면제작을 합니다. 그때마다 남편이 애들을 돌보는데, 이번 주 갑작스레 남편의 일정이 잡힌 것입니다. 급하게 베이비시터를 섭외하기 시작했습니다. 1)시누이.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산행이 잡혀 있었습니다. 2)손윗동서. 난색을 표하며, 어쩔 수 없으면 봐주겠다고 했습니다. 차량에 아이 둘을 태워 경기도까지 왔다갔다 해서 번거로움과 부담감에 포기했습니다. 3)큰딸 친구 엄마. 아홉 살짜리 큰딸은 문제없지만, 손이 많이 가는 네 살짜리까지 부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4)내가 직접 회사에 데리고 간다. 2주 전에도 애 둘을 데려갔는데, 또 그러기엔 엄두가 안 났습니다. 충청도의 시어머니, 경상도의 친정엄마까지 목록에 올렸다 지웠습니다. 결국 믿을 구석은 저한테 월급 받는 ‘또 하나의 일하는 엄마’인 베이비시터뿐이었습니다. “주말엔 안 봐주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으니까 봐준다”고 했습니다. 고마움, 서러움, 분노, 억울함까지 북받쳐서 눈물이 좀 나왔습니다.
하루 전날, 식사자리에서 지속가능한 기업을 위한 컨설팅을 담당하는 A씨를 만났습니다. 아빠가 된 지 얼마 안 된 그는 “추석에도 시골에 못 가고 일했다” “일주일에 하루도 집에 못 들어가서 아내가 속옷을 챙겨서 회사에 온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A씨의 상사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했습니다. 저는 농담 반 진담 반 “그래서야 지속가능한 가정이 유지되겠느냐”고 했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저와 절친한 워킹맘 2명이 아이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20~30년 후 딸들이 살게 될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다면,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올 ‘미래의 할머니’들이 제 주변에는 여럿 됩니다. 무서울 게 없는 할머니들은 다소 급진적인 정책을 요구할 겁니다. 결혼을 위한 필수서류로, 남성들에게 ▲부모교육 400시간 수강 의무화 ▲육아·가사분담을 위한 쌍방계약서 ▲최소 40시간 ‘가족을 위한’ 근무제 등을 포함시키도록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또 회식 파파라치제(월 3~4회 이상 회식을 하는 기업을 신고하면 포상하는 제도), 사내보육시설 미비 기업에 대한 제재 및 과징금 폭탄 등도 있을 겁니다.
만약 이런 정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할머니들은 급기야 유엔 인권이사회에 대한민국 정부를 제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십년간 성차별적인 사회를 방치함으로써 여성들의 직업선택권, 행복추구권 등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여성문제는 어쩌면 남성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기 전에는 풀리지 않을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불가능에 가까운, 정글 같은 대한민국 사회에선 남성도, 여성도, 그들의 자녀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가족’이 건강해야, 그 사회가 건강한 법입니다. 당신의 가족은 건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