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전쟁입니다. 둘째 딸 유치원 보내기 말입니다. 발품 팔아 정보 모으고, 눈치작전으로 원서 넣고, 당첨돼도 유치원비에 ‘억’ 소리 나는 게 대학 입시 전쟁 못지않습니다. 역시 우리나라에선 ‘눈치’가 빨라야 살아남습니다. 만 3세까지만 있는 가정어린이집에 보낼 때, “미리 5세반이 있는 다른 어린이집에 등록해둬야 한다”는 조언을 흘려 들었습니다. ‘설마’ 했죠.
지난 11월부터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알아보며,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며칠 전, 한 어린이집에 원서를 넣으러 갔더니 “어머니, 어차피 넣어봐도 안 되니까 그냥 가세요” 하더군요. 서울시 보육 포털 서비스에 들어가, 어린이집에 대기 등록하니 한 곳은 37명, 또 한 곳은 120명 넘게 줄 서 있더군요.
유치원은 더 가관입니다. 근처 공립학교 유치원은 모조리 반일반(9~1시)뿐이었습니다. 공짜라고 해도, 직장맘에게 ‘그림의 떡’입니다. 사립 유치원은 70만~90만원대의 학원비를 자랑합니다. 대개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하는, 하루 5시간 교육비치곤 너무 비쌉니다. 청소년수련관에서 운영하는 유아 체능단에 접수, 저녁 9시 무렵 추첨을 하러 갔습니다. 작년까지는 선착순이어서 “새벽 2시부터 줄 섰다”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올해 교육부의 ‘선착순 금지’ 지침 때문인지 추첨제로 바뀌었더군요. ‘김○○’. 추첨 항아리에서, 제 딸아이의 이름이 불리자 환호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날 추첨이 끝난 강당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접수만 해놓고 당일 추첨에 참가 못한 이들을 두고, ‘당첨된 것으로 봐야 한다’ ‘추첨 의사를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 등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탈락한 부모들은 “재추첨하라”고 소리를 높여 결국 재추첨이 벌어졌고, 결국 이미 탈락한 줄 알고 자리를 떴던 학부모들만 손해를 보게 됐습니다.
오는 19일이면 대통령을 뽑습니다. 집으로 배달된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들여다봤습니다. ‘0~5세 무상 보육’ 혹은 ‘5세까지 국가가 책임지며 보육 걱정 없애겠다’는 두루뭉술한 약속뿐입니다. 제대로 된 보육 정책을 펼칠 후보한테 투표하고 싶건만, 별 차이도 없습니다.
아랫물은 이렇게 엉망인데, 윗물은 뜬구름 잡는 약속만 하네요. 엄마들이 이익집단처럼 똘똘 뭉쳐서 “이 사람한테는 절대 표 못 준다”고 못해서일까요? 대입 전쟁과 마찬가지로, ‘내 아이만 무사히 승리하면 된다’는 부모들의 이기심 때문일까요? 보육정책이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눈치 빠르지 않아도, 운 좋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대한민국, 그런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