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장에 도착한 아이들에게 차에서 내리는 순서대로 세계 각 나라의 국적을 부여한다. 국적이라는 것이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프랑스나 일본 등 부자나라 국민이 된 아이들은 밥과 반찬, 물, 담요 등을 풍성하게 받고, 수단 등 가난한 나라의 국적을 받은 아이들은 캠프 기간 내내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지내게 된다.”(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중에서)
지난주 한비야씨와 존번 델라웨어대 교수를 만난 후 저는 ‘나라의 품격’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겐 ‘사람의 품격’이 있듯, 나라에도 ‘나라의 품격’이 있겠지요. 품격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고위직에 있다가 은퇴해보면, 세상살이의 쓴맛을 제법 느끼게 된다고 하지요. 저도 한때 그런 상처 아닌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더나은미래’ 편집장이 된 후, 조선일보 사회부나 정치부 기자 시절 친분이 있었던 몇몇 취재원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기자직을 뒤로한 지 4년 만에 복귀한 저는 ‘순진하게도’ 그들도 반가워할 줄 알았습니다.
“우와~ 반가워요. 이게 얼마 만이야? 언제 한번 밥이나 먹어요.”
이런 멘트를 날린 상대방은 일주일이나 이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필요에 의해 사람을 만나고, 필요에 의해 사람을 버리는 ‘진짜 세상’이 좀 느껴지더군요. 덕분에 중요한 교훈도 얻었습니다. 경찰청 출입기자, 한나라당 출입기자라는 알량한 권력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예전과 다름없이 저를 ‘인간 박란희’로 대해주는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을 권력·지위의 높낮이로 판단하지 않는 것, 강자에게 약해지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는 것,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주위에 나누어주는 것. 진짜로 품격 있는 사람은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스펙이 멋지고 능력이 뛰어나도 이런 품격이 없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약자나 실패자가 되었을 때 스스로를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200여 개국 중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입니다. 올해 초 라오스에 갔을 때도, 지난달 인도에 갔을 때도, 현지의 공무원이나 NGO대표들은 “너희들은 어떻게 그리 잘살게 되었니”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도전은 이제 시작된 것인지 모릅니다. 내부적으로는 초고속 압축성장의 그늘을 치유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선진국에 걸맞은 제도와 시스템을 선보여야 합니다. 가치중심적인 이 과제들은 ‘돌격! 앞으로’라는 구호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우리나라도 ‘품격 있는’ 나라가 되어 있겠지요. 지난주 28년 역사를 지닌 프랑스의 사회적기업 SOS그룹의 니콜라 아자르 대표가 한 포럼에서 충고한 멘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Don’t 빨리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