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닌 가슴으로 운영”… 거리의 아이들을 ‘꿈꾸는 아이’로
미소년 소팟(Sophat)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부엌이다. 채소를 다듬고 잘게 써는 일부터 고기를 알맞게 구워내는 일까지 다 그의 몫이다. 소팟과 함께 일하는 다른 요리사들은 “요리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성격도, 태도도 너무 좋은 친구”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자신에 대한 칭찬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소팟은 “너무 행복하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어요.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거리의 아이로 자랐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쓰레기를 뒤지며 간신히 굶어 죽지 않는 삶을 살았죠.”
꿈꾸는 일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던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7년 ‘하갈(Hagar)’을 만난 이후다. ‘하갈’은 아동 성매매, 가정폭력 등으로 상처 입고 버려진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쉼터다. 직업훈련, 사회훈련을 위해 출장요리 업체 ‘하갈 케이터링’ 같은 사회적 기업도 운영한다. ‘하갈’은 당시 소팟에게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거리의 아이였던 소팟에게는, 재료를 다듬는 즐거움도, 음식을 만드는 흥분도, 손님이 깨끗하게 비운 접시를 닦는 보람도 다 처음이었다. 직업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소팟은 현재 다른 레스토랑에서 정식 요리사로 일한다.
프놈펜에 위치한 ‘하갈’은 이처럼 가장 사랑받아야 할 가정에서 버림받은, 또는 상처를 받은 이들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곳이다. 집에 감금되어 남편에게 매일 폭행을 당하다 구출된 젊은 여성, 가난 때문에 고작 300달러에 팔려가 아동 성매매에 수년간 희생되다 탈출한 소녀 등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하갈’을 찾는다. 지난 15년간 30만 명이 넘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했다.
성매매, 가정폭력 등의 사회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단체가 치료, 복지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에 반해, ‘하갈’은 쉼터와 사회적 기업 모델을 병행하며 ‘사회로의 재통합’을 추구하는 차별성을 갖는다. 쉼터를 통한 치유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을 통해 자존감 회복, 사회성 개발, 경제적 자립을 꾀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성으로 하갈의 설립자 피에르 타미(Pierre Tami, 51)씨는 슈밥재단으로부터 사회적 기업가로 선정(2005), 미 국무부로부터 ‘국제 인신매매 퇴치를 위해 싸우는 여섯 영웅’에 선정(2004)되기도 하였고, 스위스 브란덴버거 재단상(2006)과 캄보디아 정부의 명예훈장(2003)도 수상했다.
스위스인인 그가 캄보디아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묻자, 타미씨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스위스국제공항, 스위스항공, 브리티시항공 등에서 경력을 쌓으며 좋은 집, 좋은 차에 남부러울 게 없는 부유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공허하고 지루했어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그는 1983년 결혼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노숙자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7년 정도 흘러서는 싱가포르로 옮겨 청소년 지원사업을 펼쳤다.
“그 무렵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1990년 6월,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아 잠시 방문했습니다. 당시 북동부 지역을 방문했는데, 빈곤과 말라리아로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제 생애 그렇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후, 제가 말라리아에 걸린 것입니다. 캄보디아 북동부에만 있는 희귀 변종 말라리아로 생존확률이 극히 낮다더군요. 의사들도 포기했죠.”
모두가 포기한 가운데서도, 가족과 함께 기도하며 투병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성경을 읽는데,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그렇게 위로할 수 있다는 구절이 맘에 꽂혔습니다. 왠지 저를 위한 말씀 같았어요. 그리고 그 순간, 얼마 전에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병세가 기적처럼 나았습니다.”
죽을 뻔한 경험에서 오히려 인생의 ‘사명’이자 ‘목적’을 발견한 타미씨는 1993년 가족과 함께 캄보디아로 갔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1994년 ‘하갈’을 세웠다. 비즈니스맨이었던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상처 입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직업훈련, 사회훈련을 시키며 인생의 새 출발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자존감은 다시 떨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안으로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요. 아니, 오히려 가난 때문에 그 고통과 상처의 늪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태반이죠.”
현재 ‘하갈 케이터링’에서 일하는 직원은 140명. 다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자신이 뿌듯한 표정이다. 연 매출은 120만달러, 한화로 13억원이 넘는다. 출장요리 사업부문의 주요 고객도 미국대사관, 인터콘티넨탈호텔, 월드비전 캄보디아, BAT 등 스무 곳이 넘는다. 현재는 베트남, 라오스, 아프가니스탄으로 확장했다. 베이커리, 쉼터 등 형태도 다양하다. 작년부터는 리더십의 상당 부분도 위임하고, ‘하갈 국제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아시아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자 준비 중이다.
“사회적 기업이라면 사업적인 측면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왜 이 비즈니스를 하는가’에 대한 부분 말입니다. 이를 위해선, 사회문제를 머리(brain)가 아닌 가슴(heart)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조금만 힘들어지면 금방 포기하기 쉽죠. 난관에 닥치면 이것 저것 안 되는 이유들을 들며 비판만 하게 되죠. 그러나 가슴으로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면, 행동하게 됩니다. 난관도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타미씨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오히려 기자를 붙잡고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이, 아시아 빈곤국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해주면 좋겠다’면서 대한민국의 복지체계·기부문화·기업사회공헌 등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전 세계 가난한 여성과 아이들의 삶은 그의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