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잃은 주민에 용기 북돋우니 ‘맨발의 기적’ 일어나”
델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차를 타고 장장 10시간을 움직였다. 바로 ‘베어풋 컬리지(Barefoot College)’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산짓 벙커 로이(Sanjit Bunker Roy·65)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베어풋 컬리지는 인도의 가난한 시골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그 기술과 재능을 개발하도록 돕는 비영리 단체다. 국제구호단체가 전문가들을 파견해 ‘제공’하는 형태였던 기존의 지역사회개발 모델과 달리,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결정해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자력으로 개발해 나가도록 돕는다. 이러한 혁신성 때문에, 베이풋 컬리지는 스콜(Skoll) 재단과 슈밥(Schwab) 재단 등 세계적인 기관들로부터 우수한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올해 초에는 타임(Time)지가 선정한 ‘10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에도 뽑혔다.
로이 씨가 베어풋 컬리지를 설립한 것은 1971년이다. 지역사회개발에 관심이 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찾아간 작은 마을, 틸로니아로 왔다.
“약 5년간 우물을 파는 기술자로 일했어요. 정말 서툴고 숙련되지 않은(unskilled) 채였죠. 그렇게 5년간 함께 일하고 함께 살면서, 인도의 농촌 마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등지는 청년들, 남겨진 노인과 여성, 아이들은 결국 소득거리가 없어 가난하고 무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삶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베어풋 컬리지를 시작했죠.”
지역사회개발이란 존중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그는 “마을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는 바로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스스로에게 있다”며 베어풋 컬리지의 정신을 반복해 강조했다. 그래서 단체의 이름도 맨발의 농촌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도우며 성장하고 개발한다는 의미로 ‘베어풋 컬리지(Barefoot College, 맨발의 대학)’라고 지었단다.
베어풋 컬리지의 사업은 크게 식수, 보건, 교육, 에너지, 수공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사업은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과 워크숍, 트레이닝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가축을 돌보거나 농사일을 돕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야간 학교를 운영하고, 여성들이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기술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기술 교육을 통해 베어풋 컬리지는 지역사회와 자신의 삶의 개선을 이끄는 기술자, 건축가, 교사 등 다양한 ‘맨발의 전문가(barefoot professional)’를 길러낸다.
이 중 에너지, 수공예 등의 분야에서는 수익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태양열을 이용한 조리 냄비, 직접 만든 이불이나 가방 등 수공예 제품 등을 판매하여 벌어들이는 수입이 지난해 2000만 루피(5억4000만원)에 달한다. 베어풋 컬리지의 예산은 이러한 매출 수입이 20%, 기부 수입이 20%, 그리고 인도 정부의 지원액이 60%를 차지한다. 작년 한 해 약 1억 루피(약 27억원)가 사용됐다.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로이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아동 노동 및 학대, 여성 차별, 알코올 중독 같은 농촌 주민들이 매일 같이 접하는 중요한 일들을 문제로 인식조차 못 하는 것이 큰 문제였어요. 또 농촌 주민들이 그들 스스로를 과소평가해서 작은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장애물이었죠. 우리는 인형극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나갔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작업실에 가득 놓인 인형들을 가리키며 로이씨는 설명했다. 농촌 주민들에게 친숙한 인형극을 사용해 연극, 공연의 형태로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2년 전부터는 라디오 방송국도 열어 농촌 주민들, 특히 여성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아직 인도 농촌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이러한 인형극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가게 되는 셈이죠.”
2년 전부터는 인도 외무부와 함께 아프리카의 최빈국 여성들을 초대, 태양열 에너지를 통해 지역 내 전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기술과 노하우, 리더십 등을 훈련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탄자니아, 잠비아, 차드, 시에라리온 등 총 23개 나라에서 115명이 연수를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 베어풋 컬리지에서 배운 노하우로 각자의 마을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로이씨는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지혜는 바로 삶에 적용할 수 있고, 쉽게 널리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 노하우와 기술을 배우러 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환영”이라고 말했다. 방문한 당일 하루만도 아프리카에서 온 연수생 26명 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온 젊은이들을 캠퍼스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란 가슴에 뜨거운 불을 품은 사람”이라는 로이씨. 그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는 사회적 기업가의 삶에는 희생이 따르지만, 분명 그 희생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로이씨는 오는 9월 2일, 베어풋 컬리지의 철학과 방법론을 나누고자 한국을 찾는다. 그의 방문과 나눔을 통해 한국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뜨거운 불이 지펴지기를 기대해 본다.
틸로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