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⑤ 英 ‘글로벌 에식스’ 창업자 던칸 구즈

“생수 팔아서 아프리카 생명수 끌어올립니다”… ‘One Water’ 브랜드 생수 판매
수익금으로 ‘플레이펌프’ 보급… 英 최고 사회적기업 반열 올라

사회적 기업이 가장 발전한 국가는 영국이다. 그 위상답게 영국에는 사회적 기업의 수가 5만5000개를 넘는다. 사회적 기업의 매출만도 50조원을 넘어, 국가 GDP의 2%, 고용의 5%를 담당하고 있다. 이 5만5000곳 중 올해 영국 기업이사기구(IOD)로부터 의장상을 수상하고, 지난해에는 사회적기업런던(SEL)으로부터 최우수 사회적 기업상을 수상한 기업이 있다. 바로 글로벌 에식스(Global Ethics)다. 철저히 시장 시스템 안에서 경쟁하면서 아프리카 빈곤퇴치에도 기여하는 글로벌 에식스의 노하우를 배워보고자 창업자, 던칸 구즈(Duncan Goose·41)씨를 찾았다.

런던=노세환 객원기자
런던=노세환 객원기자

사무실에서 나와 반갑게 인사하는 구즈씨의 손엔 샌드위치가 들려 있었다. 연속되는 회의 때문에 이렇게 점심을 때운단다. 정부 지원금이나 기부금 하나 없이 치열하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그의 ‘기업가 정신’이 살짝 엿보였다. 점심시간을 뺏은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오히려 그가 적극적으로 질문한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어떠한지를.

구즈씨는 마케팅 및 사업기획 전문가였다. 미친 듯 일을 하던 29살(1998년), ‘이 일을 진짜 내가 원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묻기 시작했단다. 한참을 고민해보아도 답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2년간의 여행 경비는 집과 차를 팔아 마련했다. 자아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는 일부러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지진을 겪기도 하고, 심지어는 총에 맞은 적도, 어느 부족에게 잡혀 경찰의 도움으로 구출된 적도 있다. 구즈씨는 “여행 중 온두라스에서 허리케인을 만난 것이 인생을 바꾼 계기”라고 회상했다.

미상_사진_사회적기업가_글로벌에식스_2010
글로벌 에식스 제품들.

“한 국가가 완전이 폐허가 되어버렸죠. 다행히 저는 살아남았고,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현지 주민들을 도왔습니다. 다들 가족들, 친구들에게 안전하다고 알리면서 동시에 온두라스를 도와달라고 모금을 부탁했죠.” 그렇게 1달러, 2달러 모은 돈으로 구즈씨와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머물던 마을을 포함해 인근 12개 마을의 재건을 도왔다.

2000년 영국으로 돌아온 구즈씨는 다시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가난한 이웃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5년간의 고민 끝에 그는, 2005년 사회적 기업인 ‘글로벌 에식스’를 시작했다. ‘글로벌 에식스’의 첫 번째 제품은 생수.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물 부족을 겪고, 매년 200만명이 물과 관련된 질병으로 죽기 때문이다. ‘One Water’라는 브랜드의 생수를 판매해 수익금의 절반은 ‘플레이펌프’ 보급에, 나머지 절반은 아프리카 어린이 영양상태 개선에 기부한다. 플레이펌프는 놀이기구와 수동식 펌프의 결합 형태로 적정기술의 대표적 예다. 아이들은 쇠바퀴를 돌리며 놀 수 있고, 이 놀이를 통해 지하수가 땅속에서 끌어올려져 물탱크에 저장되는 원리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보급한 플레이펌프.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보급한 플레이펌프.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사업은 쉽지 않았다.

“대형 마트부터 작은 구멍가게 주인까지 매일 만났죠. 제발 우리 ‘One Water’ 제품을 넣어달라고. 이미 계약된 제품들 때문에 안 된다는 얘기뿐이었어요.”

사업 시작 1년 만에 구즈씨는 빈털터리가 됐다.

“그동안 모아 둔 모든 재산을 다 써 버렸죠. 심지어는 주택담보대출도 한 번 더 받았는걸요.”

마지막으로 일주일만 더 버텨보고 안 되면 포기하자고 마음을 정하던 때였다. 그 일주일의 마지막 날, 마치 기적처럼 마트 프랜차이즈 ‘토탈’을 만났다.

“토탈은 우리와 계약을 해 줬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원해줬어요. 공익캠페인 계획까지 세워 진행해 줬으니까요.”

지금은 ‘One Water’ 생수를 영국의 유명 마트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생수뿐 아니라, 비타민 물, 휴지, 손 세정제 등의 제품도 출시했다. 지금까지 사업을 통해 500만파운드(약 92억원)의 수익금이 기부됐다. 아프리카에 설치한 플레이펌프만도 600개가 넘는다.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여러 대학에서 강연을 한다는 구즈씨. 사회적 기업가의 성공 노하우를 묻자, “비전, 우선순위, 열정”이라고 답한다. 점심시간도 아껴가며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열심히 뛰는 그는 “한국에서도 훌륭한 사회적 기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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