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엔 ‘건강식’ 후진국엔 ‘희망식’ 20엔<약 280원>으로 만드는 기적의 식탁
기업·학교 등 330여 기관과 제휴, 현재까지 1억200만엔 모여…르완다·우간다·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54개 학교에 급식 지원
일본 최대 무역회사 중 하나인 미쓰이(Mitsui & Co.). 이곳 구내식당에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점심메뉴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12시가 가까워지자 직원들이 하나 둘 구내식당으로 모여들었다. 다양한 메뉴들 중에서도 유독 ‘테이블포투(Table for two)’ 메뉴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섰다. 유이치 아오키(57) 사회공헌부장은 “2008년 8월부터 테이블포투 메뉴를 시작했다”며 “직원들이 이 메뉴를 선택할 경우, 판매액에서 자동으로 20엔(약 280원)이 기부되고 회사도 20엔을 매칭해 추가 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미쓰이 상사는 테이블포투 메뉴 판매를 통해 약 148만엔(2000만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지난 7월부터는 포인트 카드 제도를 도입해 이 메뉴를 10번 먹으면 무료 음료수를 제공하면서 기부를 독려하고, 회사는 동시에 아프리카 고아원에 추가 기부를 하고 있다. 회사 내에는 테이블포투 서포터즈 모임도 구성돼 있다. 주로 20~30대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모임은 사내 캠페인 활동을 주도한다. 정기적으로 사내 설문조사를 통해 메뉴 개발, 홍보 전략을 짠다. 서포터즈 중 한 명인 히데아키 시미즈(29)씨는 “사회적 책임은 기업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시민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참 보람있다”고 말했다.
테이블포투 메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사람을 위한 것이다. 비만으로 고심하는 선진국 사람들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후진국 사람들을 위한 메뉴다. 비타민·무기질 등이 높으면서 열량은 낮은 건강한 메뉴인 동시에, 각 메뉴마다 20엔이 아프리카 어린이 급식을 위해 기부된다. 같은 이름의 사회적 기업 ‘테이블포투’가 바로 기업, 학교 등의 구내식당에 이 시스템을 보급하고 있다. 학교, 대학, 공공기관, 병원, 편의점 등 일본 내 330여 기관이 참여한다. 메뉴 판매로 모금된 기부금은 지금까지 1억200만엔(14억4400만원)으로 아프리카의 학교 급식 512만 그릇에 해당한다. 우간다, 르완다, 말라위, 에티오피아의 54개 학교가 이를 통해 급식을 지원받았다.
정직원이 모두 3명뿐이지만, 3년 만에 330여 기관과 제휴를 맺어 테이블포투 메뉴를 일본, 나아가 세계로 퍼뜨리고 있는 작지만 강한 사회적기업 테이블포투. 그 창업자 마사히사 고구레(38)씨를 만나보았다.
아침 일찍 찾아간 작은 오피스텔에서, 고구레씨는 회의 테이블을 책상 삼아 일하고 있었다.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원래 그는 세계적인 전략 컨설팅 회사 ‘맥킨지’와 일본의 대표적 영화사인 ‘쇼치쿠’등 비즈니스 최전방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부와 명성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은 삶이었을 것 같은데, 정작 그는 “불행했다”고 말했다.
“많은 것을 배운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하지만 행복하진 않았습니다. 매일 비참하다고 느꼈어요. 좀 더 보람 있는 일, 제 열정을 100% 이상 쏟을 만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매일 매일이 지치고 괴로웠던 시절의 어느 날, 고구레씨는 노트 하나를 꺼내 자신이 언제 행복하고 언제 불행한지를 적어내려 갔다.
“적어보니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죠. 언제 행복한지에 대해 적은 내용들을 보니까 공통되는 내용이 있었어요. 남을 돕는 것,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세우는 것, 열정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이 내용이 계속 겹치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야겠다고요. 그렇게 테이블포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2007년 10월이다.
그러나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사업’이 쉽지는 않았다. “뜻은 좋았지만, 사람들은 잘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기업이나 학교를 찾아갔다가 눈앞에서 문이 꽝 닫히는 수모도 여러 번 겪었는걸요.”
열정이 많았던 만큼, 동시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는 고구레씨. 그간 쌓아온 경력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발로 뛰며 설득했다. 1년쯤 지났을 때부터 하나 둘씩, 대기업들과 제휴를 맺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표 무역회사 미쓰이 상사도, 광고회사 덴쓰(Dentsu)도 그렇게 만났다. 구내식당에서 만난 덴쓰 전략기획 부서의 도루 고이즈미(52)씨는 “사실 뭔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은 기부에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그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만으로 내가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셈이어서 너무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치밀한 전략과 아이디어로 가득한 그에게 사회적 기업가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았다. “저 역시 아직은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어서 조심스럽다”는 그는 맥킨지 출신 전략가답게 4가지로 정리해 설명했다.
“명확한 미션, 전문가에 의한 경영, 확장·복제 가능성, 그리고 구성원 모두의 열정입니다.” 일본을 넘어 미국·영국·스위스·대만·인도 등지에 테이블포투 시스템을 확장하고 있는 고구레씨는 “조만간 한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