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재발견] 돌봄에서 발견하는 성장의 단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었을 때, ‘이제 영원히 이렇게 사는 건가’ 하는 공포가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숨통이 트이는 순간도 있었고, 작은 효능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리임을 체감했다. 돌봄의 무게가 잠시 옅어지고 ‘지나간다’는 감각을 얻었을 즈음, 다른 종류의 돌봄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쉽게 지나갈 기약이 없는 돌봄은 어떤 모습일까. 끝내 이별을 향하는 돌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돌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돌봄. 이런 돌봄을 해내는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치매와 노년 돌봄을 오래 연구한 이지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 매일 다른 날을 살아내는 힘 “돌보는 분들은 매일이 다르다고 말씀하세요. 돌보는 사람 자신이 변하고 자라면서,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거죠.” 이지은 교수는 이를 ‘관계적 역량’이라 불렀다. 누군가를 돌보는 과정에서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가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의미다. 내가 몰랐던 내 힘을 발견하고, 상대가 여전히 보여주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돌봄은 바로 그 상호작용 속에서 역량을 확장하는 일이다. 아이와 함께한 나의 경험도 그러했다. 젖니가 빠지던 순간, 레몬즙으로 비밀 편지를 쓰겠다며 호들갑을 떨던 날, 구구단 7단 때문에 괴로워하던 저녁. 나는 아이와 함께 내 어린 시절을 다시 살며, 그때 하지 못한 성장을 조금 더 했다. 그렇다고 가혹한 돌봄 현실 속에서 성장의 빛을 찾으라는 주문은 지나친 요구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우리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봄은 온다(Spring is coming)

“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첫 에피소드의 제목이자 밈으로 널리 퍼진 대사다. 어렵고 힘든 날이 다가온다는 경고이자, 대비하라는 메시지다. 국제보건, 더 넓게는 국제개발원조의 영역에도 겨울이 닥쳤다. 미국의 해외원조 삭감에서 시작된 듯 보이지만, 그 전부터 징후는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다. 원조에 대한 회의론이 커졌고, 과연 효율적이고 임팩트가 있는지 묻는 질문이 늘어났다.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결국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충분히 설득력을 발휘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국제기구들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효율을 입증하려 애써왔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지난 2년간 몸담았던 기구의 사례를 중심으로, 국제기구들이 어떻게 혁신하며 원조의 효과성을 높여왔는지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180만원 백신을 3만원으로 낮춘 비밀 2000년대 이전까지 백신은 사실상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 중저소득 국가는 협상력을 잃은 채 비싼 가격에 소량만 구매하거나 선진국 기부에 의존해야 했다. 이런 시장 실패 속에서 2000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빌 게이츠 등이 아이디어를 냈다. “중저소득국의 백신 수요를 묶어 제약사와 협상하면 가격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백신 펀드를 조성해 공동구매로 가격을 낮추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2000년,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이 출범했다. 효과는 막대했다. 미국 공공시장에서 약 180만원이던 아동 필수 백신을 Gavi는 단 3만원에 공급받았다. 원리는 간단했다. 제약사에 대량·장기 공급을 약속해 신뢰를 주고, 공동구매로 가격을 낮춘 것이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제약사들도 Gavi가 매년 대량의 백신을 구매해 실제로 공급하는 것을 보며 합류했다. 2000년대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대학은 공익을 키우는 곳이다

지난 8월 중순, 나는 미국 남부와 동부의 접경지대인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약 일주일간 방문했다. 현재 내가 거주하는 곳은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 항만 지역인데, 캘리포니아가 서부에 있으니 미국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을 찾은 셈이다. 방문 목적은 내년 1월부터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채플힐 정책학과 교수로 부임할 예정이라 신임 교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향후 거주지를 정하기 위해서였다. 노스캐롤라이나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대학으로 1789년에 설립됐으며, 지금도 최상위 연구중심 대학 중 하나다. 올해로 개교 236년을 맞았다. 나는 UC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존스홉킨스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쳤고, 한국에서 1년간 교수 생활을 했다. 이후 2년 가까이 미국의 공공 영역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로 했다. 내년 1월에 강단에 서면 3년 만에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이 흔하지 않다 보니 “왜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것은 대학이 결코 완벽한 조직은 아니지만,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공익을 키우는 곳이다. ◇ 대학이 특별한 이유, ‘독립성’에 있다 대학 교수의 일은 크게 연구와 교육으로 나뉜다. 연구 자체는 대학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기업, 정부, 비영리단체, 싱크탱크 등에서도 활발히 이뤄진다. 나는 미국의 주·지방정부와 협력해 저소득층이 정부 서비스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왔다. 사회과학 이론과 응용통계는 박사 과정에서 배웠지만, 현장에서 쓸모 있는 연구를 하는 방법은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라는 시빅테크 단체의 데이터 과학자로 일하며 익혔다. 최첨단

[지역의 미래] 관광으로 지역을 망치는 3가지 방법

“내가 어디서 죽을지 알면 좋겠다. 거기는 절대 안 갈 테니까.” 워런 버핏과 함께 지금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룩한 찰리 멍거의 말입니다. 바보 같은 일을 피하는 것이 똑똑한 일을 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기간의 큰 수익을 좇으려다 돌이키기 힘든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투자 원칙이기도 합니다. 지역을 살리는 빠르고 가시적인 전략 중 하나가 관광입니다. 관광객을 위해 만든 공원, 문화재, 놀이시설 덕분에 주민의 삶이 즐겁습니다. 텅 빈 거리엔 생기가 돌고 소득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반면에 잘못 사용하면 지역을 망치는 도구가 됩니다. 관광객이 빠진 자리엔 공동화가 생기고 대기업이나 외지 자본이 부동산 거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짧은 탐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관광객을 관계인구로 전환하기 위해 더 멀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 시간과 공간 관광객의 체류 일수는 보통 2, 3일입니다. 주말을 이용해 하루 숙박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최고의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프리미엄 숙소와 잘 차려진 음식을 멋진 풍경과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1년에 한 번, 어쩌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핫플레이스는 많이 만들수록 좋습니다. ‘인스타그래머블’은 여행지를 탐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에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스카이워크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은 물론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느낌의 브루어리와 카페도 많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플루언서가 주도하는, 누구나 한 번쯤

[일독을 권합니다] 펭귄들의 퇴근길

길고 무더웠던 올여름, 제 마음에 깊이 남은 장면이 있습니다. 어둑해진 바닷가 둑방길을 따라 줄지어 집으로 돌아오는 페어리 펭귄들의 모습입니다. 호주로 떠난 여름 휴가에서 마주한 이 장면은 제게 강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인 페어리 펭귄은 귀여운 외양으로도 시선을 빼앗지만, 그들의 생태에는 더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호주의 필립 아일랜드는 물고기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페어리 펭귄을 관람할 수 있는 생태 관광으로 유명합니다. 저 역시 자연 속의 펭귄을 보고 싶은 마음에 이 관광을 선택했지요. 페어리 펭귄들은 낮에 바다에서 물고기 사냥을 하고, 해질 무렵이 되면 자기 둥지로 돌아옵니다. 특이한 점은 사냥은 홀로 하지만, 귀가는 무리지어 한다는 것인데 이 집단적 귀가 방식을 ‘펭귄 퍼레이드’라고 부릅니다. 바로 둑방 위에서 이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것이 관광의 핵심입니다. ◇ 공동체로 쉼과 안전을 책임지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펭귄들이 열마리 정도씩 무리를 지어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뒤에 처지는 펭귄이 있으면 앞서 가던 펭귄이 기다려주기도 하고, 집을 찾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왈라비의 공격을 서로 함께 맞서며 펭귄들은 집단적으로 퇴근하고 있었습니다. 펭귄들의 집단적 퇴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서로를 포식자들로부터 보호하고, 누구도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죠. 처음에는 작고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홀렸지만, 펭귄들의 퍼레이드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보니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서로의 안전한 귀가와 쉼을 책임져 주는 펭귄들의 공동체가 우리가 잃어가는 것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도 쉼은 필수입니다. 쉼을

[프롤로그] 일독을 권합니다, 그 시작에 서서

사회혁신 지식을 편집하는 사람으로서 누리는 특혜이자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고충은 ‘읽기’가 직업적 일상이라는 점입니다. 쇼츠와 릴스에 익숙해진 저 역시 묵직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차분히 읽어내는 일이 점점 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읽기를 이어가야 하는 이 직무가 오히려 얼마나 큰 복인지 실감합니다. 일상에서 읽기가 휘발되는 시대에, 업무 때문에라도 읽기를 멀리할 수 없다는 것은 큰 행운이기 때문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전 세계 다양한 국적의 저자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짜릿한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가보지 못한 나라의 누군가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오래 붙잡고 있던 고민의 실마리를 발견할 때, 흐릿하게만 감지하던 사회 문제를 명료하게 인식하게 될 때 제 사고에 불이 켜지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읽기의 특별함은 바로 이 ‘수고로움’에 있습니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자극적인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산만한 정신을 활자에 고정해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고 나의 경험과 지식을 반추하는 과정은 고단합니다. 그러나 이 수고로운 읽기야말로 ‘지식을 통해 나를 읽어내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내가 요즘 어떤 고민을 했는지, 무엇을 시도하고 싶은지, 어떤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고 싶은지 읽기를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앞으로 <더나은미래> 지면을 통해 제게 ‘정신의 불을 켜준’ 아티클을 한 편씩 소개하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도 ‘지식을 읽고, 지식이 나를 읽어주는 경험’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일독을 권합니다. 서현선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 한국어판 편집장

[기후 유니버스] 청년은 미래세대인가, 현재세대인가

기후 관련 공론장에 참석하면 늘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다.” 이 말은 청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일종의 ‘치트키’처럼 통한다. 곧이어 “미래세대를 대표하는 청년들”이라는 수식도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필자 역시 여러 번 이런 자리에 섰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묘한 머쓱함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왜일까. ◇ 미래세대, 어디까지 포함되나 먼저, 미래세대는 누구인가. 국립국어원은 이를 “사회를 이끌어 갈 어린세대, 또는 앞으로 태어날 세대”로 정의한다. 범위를 좁히면 6세 미만의 영유아에서, 넓게는 10~20대 청소년과 20~30대 청년까지 해당된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5100만 명에서 0세~34세 이하 인구는 약 1700만 명이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인구로 구분하자면 3명 중 1명(33%)이 미래세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세대를 ‘대표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는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를 넘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이익까지 고려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판단 기준이 미래 지향적이냐는 점이다. 젊더라도 소비만 좇는 이른바 ‘욜로(YOLO)족’은 대표성을 갖기 어렵다. 반대로 나이가 많더라도 기후 대응을 위해 현재의 비용을 기꺼이 감당한다면, 오히려 미래세대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청년이 미래세대를 대표한다는 명제는 그럼 틀린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스웨덴의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16세에 ‘기후 결석 시위’에 나섰고, 이는 전세계적 기후 파업으로 확산됐다. 그 결과 각국 정부는 앞다퉈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대중의 행동 문턱도 낮아졌다. 지난해 8월에는 탄소중립기본법의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지며,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기후소송에서 승소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

[지금은 인구테크] 인구 변화를 혁신으로 전환하는 법

인구 구조의 변화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다. 그 속에서 사회 문제를 혁신의 기회로 바꾸는 일은 미래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가 된다. 인구 감소, 고령화, 저출산은 이미 전 세계가 함께 직면한 과제다. 이 문제를 단순한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와 산업적 기회를 창출하는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전략적 사고를 통해 인구 변화를 기회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일본, 초고령 사회의 교훈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현재 전체 인구의 29%가 65세 이상이며, 올해 2월을 기점으로 50세 이상이 절반을 넘어섰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변화를 단순히 복지 비용 증가로만 보지 않았다. ‘실버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해낸 것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실버테크(silver-tech)다. 돌봄 로봇, 고령자 맞춤형 가전,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독거노인의 안전을 확인하는 IoT 센서와 생활 패턴을 분석해 돌봄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이미 일상화됐다. 특히 눈에 띄는 사례는 실버 피트니스다. 미국에서 시작된 여성 전용 피트니스 체인 커브스(Curves)는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5년 진출 후 불과 10여 년 만에 전국 2000여 개 지점을 열었고, 현재는 약 90만 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2022년 기준 매출은 900억 엔(약 8000억 원)에 달했으며, 회원의 70% 이상이 50세 이상 여성이다. 이는 고령층이 ‘건강하게 나이 드는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세계에서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자립의 무게, 빈틈에 놓인 무연고 탈북청소년

무연고 탈북청소년을 처음 마주한 것은 2016년의 일이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한 멘티에게 추석 연휴 계획을 묻자, 그는 담담히 “가족이 없어 아무런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혼자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털어놓은 것이다. 이미 몇 차례 멘토링을 진행하며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고백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그는 학업이나 진로 대신 교우관계, 연애상담 등 일상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와 함께라면 가정에서 시시콜콜하게 나눌 대화들이었다. 2024년 4월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배경학생은 2600여 명. 이 가운데 일부는 직계존속을 동반하지 않고 입국한 무연고 탈북청소년이다. ‘북한이탈주민법’은 북한에 주소·가족·배우자·직장 등을 두고 탈북한 사람 중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자를 ‘북한이탈주민’으로 정의한다. 이 중 보호 및 지원을 받는 대상자를 ‘보호대상자’라 하고, 필자가 만난 멘티처럼 보호대상자로서 직계존속을 동반하지 아니한 만 24세 이하 무연고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무연고청소년’ 추가적인 보호 규정이 있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은 무연고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무연고청소년보호 및 지원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워원회)’를 두고 있다. 필자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위원회는 보호자 선정, 후견인 선임 필요 여부, 개인별 보호 및 정착 지원 방안 등을 심의한다. 선정된 보호자는 거주지 전입 이후 청소년의 생활 지원과 교육 지원을 맡는다. 통일부는 2024년 11월부터 무연고청소년 가산금을 신설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 많다. 첫째, 보호자의 법적 지위가 모호하다.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자’는 민법상 친권자와 별개다. 따라서

[임팩트 현장을 읽다] 오늘의 외부효과가 미래의 비즈니스 기회다

“오늘의 외부효과가 미래의 비즈니스 기회가 된다(Today’s externalities are future businessopportunities).” 지난 8월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리더스 서밋에서 크리스티안 헬러(Value Balancing Alliance·VBA) CEO가 던진 메시지다. 이날 현장에는 글로벌 기업, 민간 재단, 정부 관계자 등 사회혁신 리더 350여 명이 모여 2시간 동안 ‘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외부효과란 기업 활동이 의도하지 않게 사회에 이익이나 손해를 끼쳤음에도, 시장에서 적절히 보상이나 비용 청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긍정적 외부효과는 사회적 편익을, 부정적 외부효과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헬러는 “외부효과를 측정하고 보상 체계를 마련한다면 사회적 가치는 물론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ETS·Emissions Trading Scheme)다. 배출 총량을 초과해 부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는 기업은 과징금을 내거나 다른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반대로 전기차 보급으로 탄소배출을 줄여 긍정적 외부효과를 만든 테슬라 같은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팔아 경제적 보상을 얻는다. 실제 테슬라는 2024년 배출권 판매로 약 3조8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4분기에는 순이익의 30%가 배출권에서 나왔다. 주주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 평가에 직결되는 정보다. 이 때문에 테슬라가 이를 측정·관리·보고하는 것은 당연하며, 헬러가 말한 대로 전통적인 재무제표(financial statement)와 나란히 사회적 성과를 담는 임팩트 제표(impact statement)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 임팩트 가치(Impact value)가 재무적 가치(Financial value)로 전환될 미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사회적 가치에 가격 신호(price signal)가 부여돼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사이에 다리가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썸네일 가로형
[영리한 비영리] AI시대, 비영리가 비영리답게

AI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사고, 의사결정까지 대체하는 시대다. 생성형 AI는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고 법률 자문을 하고 심지어 상담사처럼 말한다. 스탠퍼드 대학(Stanford University)의 인간 중심 인공지능 연구소(HAI)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AI 사용량은 2023년 대비 14배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AI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 AI가 사람보다 나은 성능을 보이는 영역의 증가 등을 분석했고 “AI가 학습, 판단, 창작의 모든 영역을 재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기술이 불평등을 가속할 때 AI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 (Geoffrey Hinton)은 “AI가 향후 30년 내에 인류를 멸종시킬 가능성이 10~20%에 달한다”고 말했으며,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아주 위험한 종류의 AI가 등장할 것이며, 세상을 우리로부터 빼앗으려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픈 AI의 창업자 샘 알트만(Sam Altman)과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 그리고 수백명의 AI 전문가들은 “AI는 팬데믹이나 핵전쟁과 유사한 멸종의 위협”이라면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AI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문명 구조를 재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곧 직업의 종말을 예고하고, 언어·감정·윤리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의 삶을 다시 쓰는 시대를 열고 있다. AI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다. 누가 어떤 목적 아래 쓰느냐에 따라 기술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술 발전은 자본에 더 큰 힘을 쥐어주고 소수의 기업에 권력이 집중되며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이 더 구조화될 수 있다. 실제로 AI는 노동이 아닌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고 플랫폼 독점은 승자독식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다카에서 나이로비, 지속가능경영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무더운 오후, 이곳의 스타트업 관계자가 건넨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어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돈벌이 수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일주일 후, 케냐 나이로비의 한 현지 기업가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지속가능성? 좋은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는 생존이 먼저예요. 당신들이 요구하는 지속가능성과 우리의 지속가능성은 차원이 다릅니다.” 지난 2주간 방글라데시와 케냐를 오가며 현지 공공기관 관계자, 스타트업 기업가, NGO 활동가들과 나눈 30여 차례의 인터뷰는 우리가 알고 있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경영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들만 만족하면 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제대로 된 지속가능경영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 현지 맥락 빠진 프로젝트, 지속가능성은 없다 다카에서 만난 글로벌 대형 NGO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딜레마를 이렇게 지적했다. “외국 기업들이 가져오는 의료기기는 최첨단 기술입니다. 하지만 정전이 일상인 농촌에서는 전력이 없으면 작동조차 못하죠. 이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솔루션일까요? 기술적 우수성도 현지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케냐 공공기관 관계자의 비판도 비슷했다.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지만 프로젝트 종료 후 지속가능성 확보가 가장 큰 과제입니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여 현지 적응을 위한 구체적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 본사의 기준을 무조건 따르라고 하지만, 현지 상황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설명조차 부족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 접근법 자체에 구조적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방글라데시의 한 투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