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 ‘임팩트투자’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도입된 지 어느덧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3년 무렵을 기점으로, 임팩트투자는 외형적으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2021년 기준 국내 임팩트투자 시장 규모는 약 7000억원으로 추산되며, 이는 2017년 540억원, 2018년 2000억원 규모에서 크게 확대된 수치입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의 수치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단순히 자본을 임팩트 기업에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과 재무적 수익 창출이라는 임팩트 투자의 본질적 목표에 얼마나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임팩트 투자 현장에서 실무와 고민을 병행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임팩트투자의 현주소와 좌표계의 유효성, 앞으로 설계해야 할 경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성과를 자축하기보다 냉철한 자기 성찰과 질적 성숙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 ‘임팩트’ 외친 10년…성장했지만 남은 숙제
지난 10년간 한국 임팩트 투자 시장은 정부의 정책자금, 특히 모태펀드의 역할에 힘입어 초기 시장 형성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사회투자(2012년 설립)와 같은 초기 플레이어들이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운용 등을 통해 가능성을 타진했고,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2011년 설립) 등 민간의 노력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임팩트 투자’라는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고, 다양한 소셜벤처들이 자금을 지원받을 기회도 늘었습니다.
그러나 양적 확장이 곧 질적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정책자금 중심의 시장 확대는 필연적으로 자본의 성격과 투자 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진정한 임팩트’ 달성이라는 목표에는 여러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자본이 단순히 임팩트 기업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넘어, 그 자본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임팩트를 실제로 창출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가장 큰 구조적 한계는 ‘자본의 출처’에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포드 재단,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 맥아더 재단 등 대형 공익재단들이 프로그램 연계 투자(PRI)와 같은 형태로 재단 자산을 적극적으로 임팩트 투자에 활용하여 시장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촉매자본을 공급합니다.
반면, 한국은 공익법인이 임팩트 펀드에 ‘출자’하는 데 있어 여러 법적 제약에 직면합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공익법인이 특정 내국법인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10%(성실공익법인 등 일정 요건 충족 시) 초과하여 보유하는 것을 제한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증여세가 부과됩니다. 이는 공익법인이 임팩트 투자 펀드(조합)에 출자자로 참여하여 해당 펀드가 투자하는 개별 기업의 지분을 간접적으로 보유하게 될 때도 적용될 수 있어, 적극적인 출자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 운용 소득의 상당 부분을 직접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해야 하는 의무도 임팩트펀드 출자 같은 간접적 사회가치 실현에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임팩트 투자사들은 대부분 영리 목적의 일반 기업이나 정책금융(한국벤처투자, 성장금융, 지자체 등)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펀드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본의 성격은 임팩트투자사의 투자 전략을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 임팩트 투자, 자본의 벽과 내부의 벽
현재 국내 임팩트펀드 출자자(LP)들은 재무적 수익률을 우선하거나 단기 정책 목표 달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혁신적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촉매자본’이나 ‘인내자본’보다는 단순히 ‘지속가능성 테마’에 투자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팩트 창출을 위한 선도적 손실 감수나 장기 지원보다는 재무적 성과에 치우친 운용 관행이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본 구조의 한계는 투자 실행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일부에서는 일반 벤처캐피탈(VC) 관행을 무분별하게 따르며, 저가 초기 투자 후 단기간에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에만 집중하는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또 투자한 임팩트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때, 사업 원칙에 따른 합리적 해결보다는 사회적 가치 기여를 명분 삼아 문제 해결을 외면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온정주의적’ 접근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임팩트 생태계의 건강성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더 아쉬운 것은 한정된 자원 환경 속에 생태계 내부에서 병리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 펀딩이나 소수 기업의 사회공헌 외에는 자금 유입 통로가 극히 좁다 보니, 투자사 간 과도한 경쟁과 배타주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정 인맥 중심 ‘이너서클’이나 학연으로 연결된 ‘엘리트주의’가 새로운 진입을 막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모습은 일반 영리 시장보다 더 경직된 폐쇄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구조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혁신 가능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습니다.
◇ 이제는 ‘자본의 물길’을 바꿀 때다
그렇다면 한국 임팩트투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무엇보다 ‘자본의 물길’을 바꾸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대형 공익재단들이 보유 자산을 사회문제 해결 투자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재단 자본은 재무적 수익률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가 가능하기에, 진정한 의미의 촉매자본이자 인내자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성된 풍부하고 다양한 성격의 자본은 현재의 극심한 경쟁 구도를 완화하고, 투자자들이 보다 본질적인 임팩트 창출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개방성과 전문성, 그리고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특정 집단의 이너서클을 넘어 다양한 주체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교류할 수 있는 열린 광장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또한 정부 주도 정책자금이 양적 성장에는 기여했지만, 질적 성숙을 위해서는 앵커 LP(정책 출자자)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자금을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임팩트 창출 의지가 있는 운용사를 발굴해 투자 전 과정(기업 발굴, 평가, 투자, 사후관리, 회수)에서 임팩트 관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점검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임팩트펀드 운용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컨설팅 지원과 성공적 딜 소싱·임팩트 평가를 위한 인프라 확충도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임팩트 워싱(Impact Washing)을 경계하고, 임팩트 평가 자문위원회 운영을 넘어 보다 투명하고 신뢰받는 임팩트 측정·관리(IMM)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10년의 성과를 디딤돌 삼아, 이제 우리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임팩트’라는 단어가 단순한 슬로건이나 유행을 넘어,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자기반성과 과감한 혁신이 필수입니다.
정책 입안자, 투자자, 기업가, 시민사회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으고 실천에 나설 때, 한국 임팩트 투자의 다음 10년은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앞당기는 진정한 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순열 한국사회투자 대표
※ 다음 회차부터는 인공지능(AI), 모빌리티, 사회서비스, 기후환경, 농식품 등 구체적인 분야에서 임팩트 자본이 어떻게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과제를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사회투자의 <임팩트의 좌표> ‘임팩트 투자’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공식적으로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단순히 자본을 임팩트 기업에 전달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과연 ‘진짜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임팩트 투자가 일반적인 벤처 투자와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이며, 자본의 출처는 어떤 철학을 담고 있고, 그 자본은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어떤 시선으로 도달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임팩트’라는 단어의 무게에 걸맞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팩트의 좌표> 시리즈는 한국 임팩트 투자의 현재 위치와 그 좌표계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경로를 함께 모색합니다. 기술, 환경, 사회서비스, 농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험되고 있는 임팩트 자본의 흐름을 추적하며, ‘임팩트’라는 단어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전이 가능한 사회적 변화의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