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의 좌표] 임팩트 모빌리티, 기술을 넘어 권리로

이순열 한국사회투자 대표

이동은 단순한 편리함의 차원이 아니라 권리의 문제입니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교육·의료·경제 활동이 결코 공평하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필자가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할 당시, 개발도상국 도서 지역 주민들의 빈곤은 단순히 소득 부족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농산물을 시장에 팔러 나갈 수 없고, 농자재를 구하기도 어려우며,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힘들고, 아파도 병원으로 갈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이동의 단절은 곧 삶의 질 저하이자 생존의 위협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이동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동성은 단순한 접근성을 넘어 안전, 탄소중립, 교통약자 포용, 지역 연결성 등 복합적 과제를 포함합니다. 특히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와 같은 교통약자에게 이동은 사회 참여와 권리 보장의 기본 전제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전체 인구의 29.6%(2022)에 이릅니다. 그러나 저상버스 보급률은 전국 평균 28%, 농촌 지역은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교통 인프라의 격차가 곧 권리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통은 기후위기와 직결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24%가 교통 부문에서 발생한다고 밝혔습니다(2023). 그중 도로 교통이 75% 이상을 차지합니다. 한국의 경우 교통 부문은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5%를 차지하며(환경부 온실가스 종합정보센터, 2023), 산업화 이후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따라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모빌리티 전환은 불가피한 과제입니다.

◇ 임팩트 모빌리티, 국내외에서 변화를 일으키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다양한 ‘임팩트 모빌리티’가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지플라인(Zipline)은 드론으로 혈액과 의약품을 긴급 수송하며 의료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유럽의 블라블라카(BlaBlaCar)는 카풀 플랫폼을 통해 교통비 절감과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독일의 티어 모빌리티(Tier Mobility)는 전동 스쿠터 공유 서비스로 도심의 탄소 배출과 교통 혼잡을 줄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임팩트 모빌리티의 흐름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쏘카(SOCAR)는 개인 차량 소유를 줄이고 교통 혼잡과 탄소 배출 저감에 이바지해 왔습니다. 사업 초창기 한국사회투자로부터 40억원 규모의 융자 지원을 받아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이후 차량 공유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며 대규모 민간 투자를 연이어 유치했습니다.

JM모빌리티는 디젤 화물차를 전기 구동으로 전환하는 솔루션을 개발해 물류 부문의 탈탄소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화물차 전동화는 대기오염 저감과 도심 탄소 배출 감축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며, 전환 비용을 낮추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상용화 가능성을 높입니다.

컴퍼니 G의 ‘갈릴레오’ 서비스는 이동 수요에 따라 노선과 운행 시간표 없이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교통 플랫폼입니다. 데이터 기반 최적화 기술을 활용해 차량 배차와 운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이를 통해 인구가 적어 대중교통 서비스가 취약한 지역의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공공 서비스로서의 이동권을 비즈니스 모델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나르마(NARMA)는 도서·산간 지역에 의약품과 필수품을 드론으로 운송하는 물류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 주민들에게 생명과 직결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포용적 인프라’의 대표적 예시로 꼽힙니다.

◇ 이동이 기술이 아닌 권리가 되려면

이처럼 모빌리티는 산업 규모가 방대하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임팩트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임팩트투자를 받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합니다. 글로벌 임팩트투자 시장은 2022년 약 1.16조 달러 규모(GIIN)였지만, 자금은 에너지·농업·헬스케어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모빌리티에 배분된 자금은 2~3%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임팩트펀드는 전통적으로 사회적기업, 돌봄, 환경,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됐습니다. 그 결과, 교통약자 지원 서비스나 탄소 감축 솔루션을 가진 기업조차 임팩트투자 네트워크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업화한 영역이라는 인식, 기술 기반 기업이라는 이유로 ‘임팩트’ 범주에서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빌리티야말로 투자 대비 사회적 파급력이 큰 영역입니다. 교통은 탄소중립·사회 포용·지역 균형이라는 세 가지 사회적 과제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임팩트 모빌리티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째, 기존 산업과의 협업입니다. 완성차 기업, 부품·소재 업체, ICT 플랫폼, 금융·보험사, 공공 부문까지 파트너십을 구축할 때 생태계는 비로소 지속 가능해집니다. 둘째, 자본시장의 인식 전환입니다.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이 임팩트투자를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도록, 투자자들의 시각이 ‘돌봄·환경’에 국한되지 않고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 해결로 확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동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기회를 지키는 권리의 문제입니다. 교통은 환경 부담, 안전, 사회적 격차 등 복잡한 과제를 통합하는 핵심 영역입니다. 임팩트투자가 모빌리티 분야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 거대한 산업의 힘을 문제 해결로 돌릴 때 사회적 파급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쏘카, JM모빌리티, 갈릴레오, 나르마의 사례가 보여주듯, 임팩트 모빌리티는 이미 우리 곁에서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동을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라 권리로 바라볼 때, 우리는 모두에게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이순열 한국사회투자 대표

한국사회투자의 <임팩트의 좌표>

‘임팩트 투자’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공식적으로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단순히 자본을 임팩트 기업에 전달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과연 ‘진짜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임팩트 투자가 일반적인 벤처 투자와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이며, 자본의 출처는 어떤 철학을 담고 있고, 그 자본은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어떤 시선으로 도달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임팩트’라는 단어의 무게에 걸맞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팩트의 좌표> 시리즈는 한국 임팩트 투자의 현재 위치와 그 좌표계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경로를 함께 모색합니다. 기술, 환경, 사회서비스, 농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험되고 있는 임팩트 자본의 흐름을 추적하며, ‘임팩트’라는 단어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전이 가능한 사회적 변화의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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