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대 1.7%.
2018년 문재인 정부와 2025년 윤석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경제 상황 때문이 아니라, 정치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제도는 더 이상 순수한 정책이 아닌 정치의 산물이 되어버렸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최저임금의 방향이 또다시 극단을 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9대 대선 때 여야 주요 후보는 모두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목표치가 분명하니 선전하기도 쉬웠다. 20대 대선에선 양당 후보가 별도 공약을 내놓지 않았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을 비롯한 소득주도성장을 강하게 비판하며 최저임금 인상폭을 낮출 것을 예고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며 사실상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을 암시했다.
조기대선으로 치러지는 21대 대선도 다르지 않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연합) 정당선택도우미 관련 응답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 대폭인상’ 질문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반대를,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매우 찬성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응답하지 않았지만, 각 정당의 기존 입장과 공약 기조 등을 고려하면 대체적인 기조는 읽힌다. 후보들이 자신있게 최저임금 관련 입장을 내걸 수 있는 이유는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제도의 실질 구조에 있다.
◇ 위원회가 결정하는가, 정부가 정하는가
최저임금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심의요청을 받은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가 90일 동안 심의·의결하고,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함으로써 확정된다. 최임위는 노동계·경영계·공익위원 각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구조상 사회적 합의를 위한 합의기구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근로자위원은 한국노총 5명, 민주노총 4명 등 양대노총이 추천한다. 사용자위원은 경총 2명, 중소기업중앙회 3명, 소상공인엽합회 4명 등 경영계에서 추천한다. 노조 조직률 10%,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 2% 수준에서 추천된 근로자위원은 비정규·플랫폼 노동자를 대표하지 못하고, 사용자위원 역시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온전히 대변하기 어렵다.
최종 결정을 쥐고 있는 공익위원 9명은 고용노동부 장관 추천·대통령 위촉으로 정부 입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구조다. 노동계와 경영계 찬반이 9대9로 맞서면,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이 정권 기조에 따라 인상률을 좌우한다. 결과적으로 ‘위원회가 결정한다’기보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해진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 때마다 인상률이 왔다 갔다 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 구조를 손보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한 가지 이례적인 공약이 등장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중앙정부가 최임위에서 기준 최저임금을 설정하되,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기준으로 ±30% 범위 내에서 자체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다만 이 역시 중앙정부가 결정한 최저임금 안에서 지방정부가 조정한다는 측면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최저임금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데까지는 역시 나아가지 못했다.
◇ 최저임금제, 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가
최저임금제는 단순한 경제정책을 넘어서는 복합정책이다. 최저임금법 제1조에서 밝힌 제도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제에는 3가지 정책적 성격이 함께 담겨있다. ‘근로자의 생활안정’은 사회정책의 핵심과제이고, ‘노동력의 질적향상’은 노동정책의 지향점이며,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은 경제정책의 궁극적 목표이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제는 경제·사회·노동이 교차한다. 삶을 지탱하고, 노동을 보호하며, 경제를 떠받치는 제도이다. 이 복합적 성격을 무시한 채, 단지 정치적 목적 실현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 피해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게 돌아간다. 이 제도가 정치권 눈치 보기 대신 온전한 사회적 합의 산물이 되려면, 제도의 신뢰를 떠받칠 세 기둥—독립성·대표성·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첫째는 공익위원의 독립성 강화다. 현행 공익위원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익위원 임기를 6년 단임제로 고정하되, 전체 인원의 절반은 3년 주기로 교체토록 하자. 이렇게 하면 어느 정권도 한 번에 공익위원 전원을 교체할 수 없어,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둘째는 근로자·사용자위원의 다원화다. 현재 근로자위원은 양대 노총이, 사용자위원은 대규모 경제단체가 추천하는 구조다. 이 틀로는 비정규직 청년·플랫폼 노동자·영세 소상공인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 위원 정원을 늘려 일부를 무작위 추첨 및 공모로 선발한 시민위원(월 200만원 미만 비정규직 청년, 사회적기업 대표 등)으로 채워보자. 노동계와 경영계 이외 목소리가 테이블에 진입하면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며 합의의 균형추가 될 수 있다.
셋째는 전문위원회 기능 강화 및 투명성 확보다. 고용률·물가·생산성·소득분포 등 핵심 지표가 논의에서 누락되어선 안 된다. 산하 전문위원회의 권한을 확대해, 합의 지연 시 지표 기반 ‘심의 촉진구간’을 설정하도록 하자. 또한 어떤 지표가, 어떻게 논의됐는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면, 설명 가능한 정책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 정치 아닌 사회가 결정할 때
물론 최저임금은 정치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제도다. 그러나 행정부 독단에 맡겨둔 채 인상률이 정권 교체기에 널뛰도록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저임금은 사회가 감당하고, 함께 책임지는 제도다. 당사자의 현실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만으로 결정되는 지금의 구조는 결국 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정치권에서 일삼는 극한대립을 최임위에서까지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청년들은 묻는다 .왜 나의 첫 월급이 정치의 거래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고. 왜 알바생과 영세 상공인의 삶이 회의실 밖에서 논의되느냐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를 근본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정치는 한 걸음 물러서고, 사회가 말하게 하자. 최저임금은 더 이상 정권의 기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
필자 소개 3이라는 숫자에 늘 눈길이 간다. 중심도, 반대편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애매하고 불완전해 보이지만, 그 틈에서 갈등 조정과 균형을 고민해왔다. 언론사와 정치권 등에서 일하며 설명과 설득의 언어를 가까이서 접했다. 편을 가르는 말보다 연결하는 말을 좋아하며, 설득은 이념보다 앞서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는 말을 수차례 되뇌며, 다름을 포용하는 자유로운 사회를 상상한다. 다양성과 공존을 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자라는 공동체를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