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곧바로 ‘효율적인 정부’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비효율로 지적받아온 공공기관 구조와 예산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신설된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전격 임명됐다. 머스크는 낡은 미국 정부의 IT 시스템과 관료 조직을 맹렬히 비판하며, 기술만이 비효율의 핵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실리콘밸리 출신 IT 전문가들이 각 부처로 파견되자 공공기관은 줄줄이 통·폐합됐고, 해외 원조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1월 한 달 동안만 7만5000여 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으며, 5월까지 수십만 명이 더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정부효율부는 공식 홈페이지에 “계약·보조금 취소, 자산 매각, 사기 적발 등으로 1700억 달러(한화 약 238조 원)의 예산을 절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머스크 본인은 물러났지만, 그가 심어놓은 효율부 직원들이 구조조정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머스크는 여전히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작동하면 대부분 문제가 해결된다”며 기술 만능주의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 없애고 줄이면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기술 발전은 필연적으로 ‘효율성’과 직결된다. 과거 우리가 대양을 가로질러 항해하고, 하늘을 비행하며, 시공을 초월해 소통하는 모든 과정에는 기술 혁신이 자리한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환상은 이면의 리스크를 가린다.
메타가 지난 2월 전체 인력의 5%를 해고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최근 3% 감원을 발표했다. AI가 불러온 ‘칼바람’이 현실화된 셈이다. 우리는 ‘AI로 생산성 10배 늘리기’, ‘자동화로 월 1000만 원 벌기’ 강의 앞에 열광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조직 붕괴와 사회 안전망의 구멍은 보지 못한다.
정부 효율화 역시 마찬가지다. 일론 머스크와 같은 시각이 퍼지면서 “정부가 쓸데없는 일만 한다”며 한국 정부를 비효율이라 치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동네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등록등본 하나 떼보면, 우리 공공기관이 얼마나 촘촘히 운영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AI가 대면 기반의 단순 업무를 대체하더라도, 현장의 복지·안전망을 완전히 자동화할 수는 없다.
위 홍보물은 ‘쾌도난마’라는 한자가 잘못 표기돼 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잘 만든 그림이자 정책 홍보물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내용 전달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효율성을 주장하며 작은 정부를 만든 결과는 마치 이 그림과도 같다. 만약 이런 실수가 정책 실행 주체나 대상자를 누락하는 수준이었다면, 그 피해는 누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AI·기술을 명목으로 통·폐합을 거듭하는 ‘효율’은 그럴듯하지만, 그 속의 구멍은 결국 사회와 구성원에게 되돌아온다.
◇ 기술 민주주의, 시민을 위한 AI를 위하여
대선 후보들은 각종 AI·기술 공약을 쏟아낸다. 더불어민주당은 ‘인공지능 대전환(AX)’을 통해 AI 3강을 노리고, 국민의힘은 AI 융합센터와 유니콘 기업 지원을, 개혁신당은 규제 혁신을 외친다. 그러나 투자와 성장에 머무는 기술 논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산업 동력을 만들고, 투자를 통해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는 모습은 모두가 바라는 장면이다. 하지만 모든 당에서 공통적으로 투자와 성장을 이야기하는 반면, ‘방법’과 ‘시민의 자리’에 대한 고민은 없다.
정부는 기술의 가능성을 ‘모두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AI 선도 국가로 AI 강국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AI 기술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핀란드는 AI 정책을 미국·중국과의 경쟁이 아닌 ‘국민의 이용 편의’에 중점을 두고 추진한다. 스마트시티 분야에서도 ‘시민 행복’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기술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다. 더 많은 사람이 기술을 사용할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기술이 사회 전체를 위해 어떻게 작동해야 할지를 시민이 결정하는 과정을 뜻한다. AI의 발전으로 인해 기술의 영향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과 사회가 기술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부족하다. 온라인 공간에서 개인의 활동과 기록, 데이터의 활용,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기술을 적용하는 ‘방법’에서 ‘시민의 자리’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 일상 속 AI, 민주주의를 시험하다
얼마 전 챗GPT를 활용한 ‘지브리 스타일’ 그림 생성 열풍이 불었다. 이용자가 짤막한 문구만 입력하면, 누가 봐도 ‘지브리풍’이라 할 만한 이미지를 뚝딱 만들어냈다. SNS에서 하루 120만 명이 몰려들어 서로의 작품을 자랑했지만, 정작 지브리 스튜디오 창립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삶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발했다. 저작권료 한 푼 내지 않은 채 원작의 색채와 구도를 모방한 AI 학습 과정은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이뿐이 아니다. 당근마켓은 사진 한 장만 올리면 AI가 상품명·카테고리·설명문까지 자동 생성해 주는 ‘글쓰기 기능’을 도입했다. 카카오는 대화 내용을 분석해 맞춤형 답변을 제안하는 AI 메이트 ‘카나나’를 비공개 테스트 중이며, 네이버 지도는 운전 습관을 학습해 예상 도착 시간을 안내하는 개인 맞춤형 AI 내비게이션을 내놨다.
그러나 이들 서비스가 어떤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움직이는지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는 편리함에 열광하면서도, ‘나의 사진·대화·이동 기록이 어떻게 쓰이는지’ 묻지 않는다.
기술 발전은 곧 민주주의의 변화다. AI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수록, 권력과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키운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남기려면, 산업 육성만이 아니라 ‘시민 참여’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국가는 AI 발전 과정에서 누가 배제되고 누가 참여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AI는 우리의 손을 떠나 권력의 칼날로 돌아올 것이다. AI는 도구일 뿐,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AI가 만능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고, 기술 민주주의를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AI 기술이 더 나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오동운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활동가
필자 소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내 생각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활동가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의 연결과 협업을 위한 커뮤니티 ‘시티즌패스’를 만들고, 스페이스 작당 이사로 청년들이 세상을 바꾸는 질문을 직접 던지는 ‘청년들의 작당’을 기획한다. 뉴웨이즈 이사로도 더 많은 젊은 정치인이 등장하는 일에 기여한다. 사람들의 연결과 만남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