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이재명 정부가 ‘리오넬 메시’에게 배워야 할 것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리오넬 메시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이다.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FC 바르셀로나에서만 3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메시의 경기 스타일을 보면 그의 재능, 기술과 함께 정보력이 눈에 띈다. 메시는 공을 받기 전에 이미 수차례 주변을 스캔하며 다음 행동을 준비한다. 남보다 넓게, 자주, 그리고 일찍 보는 능력. 이 스캔 능력이 메시를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한국의 공공 서비스를 새롭게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통한 사회 혁신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강조해 왔다. 이 혁신에는 공공 혁신도 포함된다.

그러나 공공 영역에서 인공지능, 혹은 더 넓게는 첨단 기술을 잘 활용하려면, 도구보다 문제를, 해결책보다 원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메시처럼 경기장을 ‘스캔’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공공 서비스를 국민 모두가 더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려면, 먼저 행정 시스템 전반을 넓게 들여다보고, 어디에서 고충이 발생하는지를 정확히 감지해야 한다. 어두운 밤길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단지 가로등 아래가 밝다고 그곳만 찾아보는 어리석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정부 행정 시스템은 종종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행정 조직은 지나치게 분절돼 있고, 각 부처와 팀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처리한다. 서로 연결되지 않다 보니, 시민의 실제 공공 ‘서비스 경험’은 포착되지 못한다.

◇ 콜센터는 정부 디지털 서비스의 ‘잔여 문제’ 집합소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정부 콜센터다. 콜센터는 늘 ‘개선 대상’으로 언급된다. 시민 입장에서는 전화 연결이 잘 안 되고, 대기 시간이 길며, 연결되더라도 문제 해결이 어렵다. 상담원 입장에서도 힘든 업무다. 전화는 끊임없이 걸려오지만, 대부분은 복잡하거나 이미 한 차례 실패한 문제다.

필자는 과거 미국의 한 주정부와 협력하여 콜센터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주에서는 민원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 들어왔다. 공무원만으로는 이 민원 전화를 감당할 수 없어 외부 용역업체를 고용해 상담 전화를 분담했다. 이는 이 주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여기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 용역업체 직원은 민원 정보를 조회할 권한은 있지만, 실제로 민원 문제를 해결할 권한은 없다.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원인의 불만은 여기서 더 커진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누군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건 문제 확인이지, 해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터 과학자로서 이 방대하고 복잡한 콜센터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느낀 점은 분명했다. 문제의 본질은 콜센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화는 정부의 공공 서비스 관련 웹사이트, 모바일 앱 등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건 것이었다. 혹은 신청한 서비스의 진행 상황이 궁금해 전화를 건 경우가 많았다. 즉, 콜센터는 정부가 도입한 디지털 시스템이 놓친 문제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사용자의 마지막 선택지이자, ‘잔여 문제’의 집합소다.

그런데 많은 정부 기관은 콜센터 자체, 콜센터 직원을 문제로 본다. 민원인들은 그들만 보고, 그들만 불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대신에 챗봇을 도입하거나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여기에 정부 돈을 노린, 많은 기술 업체들도 달려든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다.

애초에 문제 정의가 잘못됐다. 콜센터의 기술 스펙을 업그레이드하기 전에, 왜 사람들이 전화를 걸게 되었는지, 어디서 막혔는지, 어떤 집단이 어떤 경로에서 어려움을 겪는지를 넓게 스캔해야 한다.

콜센터가 민원인의 정부 서비스 이용에서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그 해결책 역시 강의 하류가 아니라 상류에서 찾게 된다. 정부의 콜센터 직원들은 적은 인력으로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 감정노동이 심하다. 그래서 근속연수도 낮다. 이 문제는 이런 사람들을 닥달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정부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 그리고 민원이 처리되고 소통되는 과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콜센터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람들이 정부에 전화를 걸 일이 없거나 적게 만들어야 한다.

◇ 기술보다 중요한 건 ‘문제 정의’와 ‘시야’

공공 서비스의 문제는 그 근본가 발생한 지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공 서비스가 원활하게 작동하고, 민원인의 만족도가 높아지며, 정부에 대한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기술은 도구로서 물론 중요하다. 기술의 일부로서, 데이터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필자가 했던 것처럼 콜센터 데이터를 분석하면 민원인이 ‘어떤 이유’로 공공 서비스에 불만을 느끼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실시간 피드백은 공공 서비스 경험을 개선하는 데 훌륭한 재료가 된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이 피드백을 좀더 빠르고, 쉽게 정리할 수 있고, 그 정리한 내용을 다양한 서비스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요리를 위해 좋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건 이 데이터를 토대로 어떤 문제를 정의해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집행하냐다. 정책결정자는 이 재료들을 조합해 국민들이 더 나은 행정 서비스를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요리사’다.

공공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눈’에서 출발한다. 좋은 리더는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보고,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민을 섬기는 디지털 정부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시야’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새 정부는 리오넬 메시의 스캔력을 배워야 한다. 문제를 넓게, 자주, 그리고 일찍 스캔하는 것. 그것이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이 필요한 공공 혁신의 출발점이다.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필자 소개

학계와 실무를 모두 경험한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입니다. 존스홉킨스 SNF 아고라 연구소의 연구교수이며 하버드 케네디 스쿨 공공 리더십 센터의 연구위원입니다. 이전에는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의 데이터 과학자로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더 쉽고, 빠르고,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KDI 정책대학원에서 데이터 과학 담당 교수로 일했고, 공익 목적의 데이터 과학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세종서적 2023)’란 책을 썼습니다.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미국 정치학회(APSA)로부터 도시, 지역 정치 부문 최우수 박사학위상(2022), 시민참여 부문 신진학자상(2024)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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