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거짓말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새 정부의 정책과 정쟁의 중심에는 특이한 이름의 조직이 있다. 바로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DOGE)’다. 이름만 보면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부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전격적인 정부 예산 삭감과 공무원 대량 해고다. 그리고 이 조직을 이끄는 인물은 다름 아닌 일론 머스크다. 정부효율부(DOGE)의 가장 큰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부 자체다. 연방정부는 200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는 미국 최대의 고용주다. 일각에서는 정부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하지만, 통계를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연방 인사처(OPM)에 따르면, 1968년 이후 인구 대비 연방 공무원 숫자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이 비율이 소폭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2기 정부의 ‘효율화’ 정책은 가차 없었다. 정부효율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의 충격은 태풍처럼 몰아쳤다. 이미 7만5000명의 연방 공무원이 권고사직을 받아들였고, 최근 1~2년 사이에 채용된 신입 공무원 20만 명이 잠재적 해고 대상 명단에 올랐다. 전체 공무원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연방정부의 평균 연령이 46세임을 감안하면,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타깃이 된 것이다. ◇ ‘효율’을 내세운 모순…정부효율부는 무엇인가 그러나 정작 정부효율부 자체는 모순덩어리다. 이름에 ‘부(部)’라는 단어가 붙어 있지만, 미국 헌법상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새로운 정부 부처를 만들 권한이 없다. 이는 의회 권한이다. 따라서 정부효율부는 정식 부처가 아니라 백악관 직속 조직이다. 머스크 역시 공식 직함은 ‘특별 정부 직원(Special Government Employee)’일 뿐이다. 실질적인 책임자는 따로 있다. 지난 2월 25일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죽은 공무원의 사회

노한동 작가는 서울대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간 일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스스로 그만둔 후 2024년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란 책을 출판했다. 그는 공직을 떠난 이유에 대해 “바깥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공직사회는 규정이라는 틀에 갇혀 상사의 눈치만 보며 가짜 노동을 반복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책의 부제는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다. 노한동 작가는 혼자가 아니다.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공무원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직 의사가 있는 중앙부처, 광역자치단체 공무원은 45.2%에 달한다. 누군가는 공직을 떠나는 이들에 대하여 시니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일하는 척만 하더라도, 가짜 노동을 하더라도 돈만 받으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할 수 있다. 애초에 그것이 소위 ‘철밥통’이 매력적인 이유가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직장과 커리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다. 직장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지만, 커리어는 인생을 건 선택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문가로 성장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특정 직업을 택한다. ◇ 공직사회, 왜 무능해지는가 공직사회가 무능해지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무원 조직에서 ‘가짜 노동’이 늘어나고, 자조감이 만연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미국 인사관리국(OPM)에 따르면 연방정부 직원 약 200만 명 중 20대 직원은 2%에 불과하다. 연방 공무원의 평균 연령은 47세 언저리다. 젊은 인재들은 연방정부를 외면하고 실리콘밸리(테크)와 월스트리트(금융사)로 향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뿐 아니라 공직보다 더 나은 커리어 기회와 성장 가능성이 있기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가끔은 직선으로 걷지 않아도 좋다

점과 점을 잇는 최단의 거리는 직선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직선에 가까운 커리어 패스를 원하고 최단 시간에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 최연소 합격, 최연소 졸업.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추앙하는 단어다. 그러나 왜 빨리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인가. 왜 커리어 패스가 꼭 직선이어야 하는가. 공익을 추구하고 문제와 사람을 우선하면 효율적인 커리어 패스를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문제를 풀고 사람을 돕기 위해 현장에 갔다가 배움에 갈증을 느껴 학교로 갈 수도 있다. 학교로 갔다가 현장이 그리워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한 직장에 갔다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공익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직업이나 직장은 커리어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궁극적 목표는 특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직업과 직장은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목표는 일관되더라도 그 목표를 추구하는 효과적인 수단은 환경에 따라 바뀐다. 그러다 보면 커리어 패스가 직선을 이탈한다. 빈곤과 불평등을 줄인다는 내 목표는 바뀐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계속 달라졌다. 한때는 대학교수였고, 또 다른 때에는 데이터 과학자였다. 지금은 둘 다이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나의 첫 직업은 한국의 대학교수였다. KDI 정책대학원에서 1년간 일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코드 포 아메리카의 데이터 과학자로 근무했다. 코드 포 아메리카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 기술(civic tech) 단체다.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기술, 디자인, 데이터를 통해 미국의 복지 시스템을 시민들이 더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공익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정책학자이자 데이터 과학자다. 존스홉킨스대 SNF 아고라 연구소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미국 시민사회의 현황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코드 포 아메리카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빅 테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으며, 지금도 미국 정부와 협력해 공공 서비스를 개선하는 다양한 현장 실험(field experiment)을 설계하고 실행한다. 핀테크는 간편 결제와 같은 각종 금융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기반 서비스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시빅 테크는 이용자가 공공 서비스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기반 서비스를 개발한다. 미국에서는 핀테크처럼 시빅 테크도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관련된 많은 서비스와 단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코드 포 아메리카는 캘리포니아 저소득층이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정부에 작성해야 했던 온라인 신청서를 근본적으로 개선했다. 이 디지털 정책 신청 보조 도구(GetCalFresh)는 기존에 한 시간 걸리던 식품 할인권(food stamp) 신청서 작성 시간을 평균 10분으로 단축했다. 코드 포 아메리카는 약 200명이 일하는 일종의 대규모 시민 단체로, 미국의 국세청(IRS) 같은 연방정부와 15개 주정부와 협력한다. 필자는 코드 포 아메리카의 캘리포니아, 뉴욕, 콜로라도, 뉴멕시코 담당 데이터 과학자로 활동했다. 지금도 코드 포 아메리카와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긴밀히 연구 협력 중이다. 코드 포 아메리카 외에도 미국 정부 내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시빅 테크 기관으로는 백악관의 디지털 서비스청(USDS)이 있다. 이 기관은 코드 포 아메리카를 창립한 제니퍼 폴카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과학기술정책 부문 CTO(차관급)으로 재직하며 설립했다. 디지털 서비스청에는 약 230명이 근무하며,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트럼프 2기 정부, 미국 데이터 정책 어떻게 바뀔 것인가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트럼프는 양당 후보가 박빙의 대결을 벌일 거라 점쳐졌던 모든 격전지에서 승리했다. 트럼프의 득표율은 유타주와 독립 행정 구역인 워싱턴 D.C.를 제외하면 미국의 모든 오십 개 주에서 지난 2020년 선거보다 우세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미국의 데이터 기반 정부 정책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먼저 미국의 데이터 정책 기조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의회가 2018년에 제정한 ‘증거기반 정책수립 기초법(이하 증거기반정책법)’은 미국 정부가 데이터를 통해 증거를 수집한 뒤 해당 증거를 통해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할 것을 권고한다. 증거기반정책법에 따라서 연방기관들은 매해 미국 의회와 대통령실의 예산실(OMB)에 ‘어떻게 증거에 기반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지’를 보고해야 한다. 또한, 이 법안은 미국 정부의 인재 선발 기준도 바꿨다. 이 법안 덕분에 미국은 연방정부부터 지방정부까지 데이터 과학자를 정식으로 공직에 채용할 수 있게 됐다. 2024년 11월 기준, 미국 정부의 채용 사이트에 나와 있는 데이터 과학자 채용 공고만 1200건이 넘는다. 이 증거기반정책법은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미국 의회에서 통과됐다. 나아가, 이 법안은 양당이 공동 발의한 법안이다. 법안의 주요 발의자는 하원의장을 맡았던 폴 라이언 공화당 의원, 그리고 현재 상원의 임시의장을 맡고 있는 패티 머리 민주당 의원이다. 증거기반정책법이 양당의 지지 하에 의회에서 통과된 만큼 이 흐름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미국 정부의 데이터 정책 기조는 유지되나 이 정책을 받치는 기둥, 즉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잔반통을 확인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다

외식 경영 전문가 백종원은 식당을 잘 경영하기 위해서는 잔반통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객이 주문한 음식을 남겼는데, 식당 사장이 왜 남겼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고객이 주문한 내용 중에서 어떤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이 고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면 재방문을 이끌기도 어렵다. 백종원은 이런 평소 신념에 따라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흑백요리사>에서도 어김없이 잔반통을 확인했다. 잔반통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통계로 설명할 수 있다. 에이브러햄 월드는 20세기 초중반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했던 통계학자다. 그는 ‘데이터 과학’이라는 말이 존재하기도 전에 데이터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냈던 데이터 과학의 선구자다. 월드가 풀었던 대표적 문제 중 하나는 2차대전 당시 미국 정부를 도와 전투기, 폭격기의 생존율을 높인 것이다. 전투기, 폭격기는 전투의 양상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무기다. 그러나 전투기와 폭격기 제조, 그리고 조종사와 같은 관련 인력 육성과 훈련 모두 높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전투기와 폭격기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데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비행기는 날개와 꼬리에 총격을 받은 경우가 잦았다. 이 제한된 표본을 보고 기체의 어느 부분을 더 견고하게 해야 전투기와 폭격기의 생존율을 높여진다고 묻는다면 보통 날개와 꼬리를 보강해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사고가 단순하지만,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월드는 달랐다. 그의 사고는 깊었다. 그는 잔반통을 생각했다. 살아 돌아온 비행기뿐 아니라 격추당한 비행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격추당한 비행기들이 총격을 받았을 위치를 생각했다. 격추당한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사람을 배려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다 

미국은 부자 나라다. 그러나 동시에 가난한 사람이 정말 많다. 불평등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정한 ‘식량 불안(food insecurity)’이란 개념이 있다. 이 말은 생활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가계나 개인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밥을 제때 못 먹는 사람들이다. 2022년 미국 농림부 통계를 보면 미국 사회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큰 지 감이 잡힌다. 미국에서는 식량 불안정에 속한 가정은 1700만 가정에 달한다. 이 가정에 속한 개인을 다 합치면 4420만 명(한국 총 인구의 86%)이나 된다. 성장기 아이들만 따로 뽑아서 관련 통계를 내보면, 미국 아이들 다섯 명 중 한 명이 제때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 이 숫자들이 중요한 까닭은 이 부자 나라에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식량 불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 미국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돕기 위한 많은 정부 정책들이 있다. 이들을 묶어 사회 안전망이라 부른다. 이 중에서 밥 먹는 문제와 관련된 대표적 정책은 ‘보조영양지원정책(Supplementary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이 정책에 신청하면 식비에 쓸 수 있는 지원금이 나온다. 주에 따라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이 다르긴 한데, 일반적으로 가구 구성원 한 명당 최대 한 달에 4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 구성원이 많으면 100만원 넘게 받는다. 보통 미국 사람들은 이 정책을 ‘푸드 스탬프’라 부른다. 요즘에는 직불카드로 이 지원금을 주지만, 예전에는 종이로 된 교환권(스탬프)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전국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