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0일(금)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가끔은 직선으로 걷지 않아도 좋다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점과 점을 잇는 최단의 거리는 직선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직선에 가까운 커리어 패스를 원하고 최단 시간에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 최연소 합격, 최연소 졸업.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추앙하는 단어다.

그러나 왜 빨리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인가. 왜 커리어 패스가 꼭 직선이어야 하는가. 공익을 추구하고 문제와 사람을 우선하면 효율적인 커리어 패스를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문제를 풀고 사람을 돕기 위해 현장에 갔다가 배움에 갈증을 느껴 학교로 갈 수도 있다. 학교로 갔다가 현장이 그리워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한 직장에 갔다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공익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직업이나 직장은 커리어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궁극적 목표는 특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직업과 직장은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목표는 일관되더라도 그 목표를 추구하는 효과적인 수단은 환경에 따라 바뀐다. 그러다 보면 커리어 패스가 직선을 이탈한다. 빈곤과 불평등을 줄인다는 내 목표는 바뀐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계속 달라졌다. 한때는 대학교수였고, 또 다른 때에는 데이터 과학자였다. 지금은 둘 다이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나의 첫 직업은 한국의 대학교수였다. KDI 정책대학원에서 1년간 일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코드 포 아메리카의 데이터 과학자로 근무했다. 코드 포 아메리카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 기술(civic tech) 단체다.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기술, 디자인, 데이터를 통해 미국의 복지 시스템을 시민들이 더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데이터 과학팀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뉴욕, 콜로라도, 뉴멕시코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잘 다니던 코드 포 아메리카를 작년 하반기에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내가 정책 현장에서 데이터 과학자로서 쌓은 기술, 경험, 인맥을 더 큰 임팩트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무대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드 포 아메리카에서 경력을 쌓고 다른 직장으로 옮긴 동료는 많다. 이들 대부분은 백악관의 미국 디지털 서비스청(USDS) 같은 정부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도 USDS로부터 이직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퇴사 후 미국 정부나 다른 비영리단체로 옮기는 것 대신에 대학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코드 포 아메리카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사회와 공유한다는 면에서 연구 결과를 모두와 나누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대학보다 더 큰 플랫폼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 미국의 대학교수로 커리어를 전환했다. 그 과정에서 원서 지원을 하고 인터뷰를 본 대학 중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C) 채플힐이 있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은 UC 버클리는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공립대학 중 하나라면 UNC 채플힐은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공립대학 중 하나다.

여러 대학의 공공 정책과 데이터 과학, 두 분야의 교수직에 지원했다. 이 중에서 두 분야 모두에서 인터뷰를 요청한 곳은 UNC 채플힐이 유일했다. 결과적으로, 두 학과와 상의 끝에 정책학과에서 정년트랙 교수 제안을 받았고, 데이터 과학부에서는 부임 후 겸임교수를 맡게 됐다. 나중에 정년보장 심사를 받을 때 심사를 받을 곳은 정책학과 한 곳이지만, 데이터 과학부와 연구, 강의 등으로 협력할 기회를 얻었다.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정책과 데이터 과학을 모두 할 수 있는 곳을 원했으니 내가 원했던 플랫폼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올해 맡고 있는 미국 정부, 비영리단체들과 공동 프로젝트들을 마치고 다음 해인 2026년부터 UNC 채플힐의 정책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내가 커리어 전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의 흐름을 탔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주요 대학은 사회과학과 데이터 과학을 활용해 빈곤, 불평등, 환경 등의 공공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다. UNC의 경우 이 분야가 특정 학과를 넘어서 대학 차원에서 추구하는 6대 연구 목표 중 하나다.

교수 고용 시장도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따른다. 2024년 미국의 대학교수 고용 시장은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 중에 데이터 과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데이터 과학을 하는 사람 중에 정책을 이해하는 사람을 찾았다. 정책과 데이터 과학의 교집합에 속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내가 그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내게 새로운 문이 열렸고, 한 대학의 두 학과에서 같은 지원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우연하지 않은 우연이 일어났다.

사명에 충실하고 전략적인 판단이라면 가끔은 직선으로 걷지 않아도 좋다.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좋다. 내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계속 정치학 연구만 했다면 당연히 정치학과에서만 흥미로운 연구자였을 것이다. 내가 정책과 데이터 과학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흥미로운 연구자가 된 것은 내 커리어 패스가 직선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학교수가 된 후에 미국의 공공 영역의 데이터 과학자가 되었다. 그 후에 다시 학계로 돌아왔다. 삐뚤어진 길,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때로는 이 비효율적인 시행착오의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경험, 지식, 인맥을 축적해야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필자 소개

학계와 실무를 모두 경험한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입니다. 존스홉킨스 SNF 아고라 연구소의 연구교수이며 하버드 케네디 스쿨 공공 리더십 센터의 연구위원입니다. 이전에는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의 데이터 과학자로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더 쉽고, 빠르고,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KDI 정책대학원에서 데이터 과학 담당 교수로 일했고, 공익 목적의 데이터 과학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세종서적 2023)’란 책을 썼습니다.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미국 정치학회(APSA)로부터 도시, 지역 정치 부문 최우수 박사학위상(2022), 시민참여 부문 신진학자상(2024)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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