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한동 작가는 서울대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간 일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스스로 그만둔 후 2024년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란 책을 출판했다. 그는 공직을 떠난 이유에 대해 “바깥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공직사회는 규정이라는 틀에 갇혀 상사의 눈치만 보며 가짜 노동을 반복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책의 부제는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다.
노한동 작가는 혼자가 아니다.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공무원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직 의사가 있는 중앙부처, 광역자치단체 공무원은 45.2%에 달한다. 누군가는 공직을 떠나는 이들에 대하여 시니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일하는 척만 하더라도, 가짜 노동을 하더라도 돈만 받으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할 수 있다. 애초에 그것이 소위 ‘철밥통’이 매력적인 이유가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직장과 커리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다. 직장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지만, 커리어는 인생을 건 선택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문가로 성장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특정 직업을 택한다.
◇ 공직사회, 왜 무능해지는가
공직사회가 무능해지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무원 조직에서 ‘가짜 노동’이 늘어나고, 자조감이 만연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미국 인사관리국(OPM)에 따르면 연방정부 직원 약 200만 명 중 20대 직원은 2%에 불과하다. 연방 공무원의 평균 연령은 47세 언저리다. 젊은 인재들은 연방정부를 외면하고 실리콘밸리(테크)와 월스트리트(금융사)로 향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뿐 아니라 공직보다 더 나은 커리어 기회와 성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인재들은 데이터와 기술에 능숙하고, 변화에 민첩하다. 이들이 굳이 공직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모든 유능한 인재가 공무원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가 운영을 위해서도 유능한 인재가 공직에 있어야 한다. 안보, 복지, 경제정책 등 정부가 다루는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정부 정책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유능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 연방조달청(GSA)은 ‘미국의 바이어(America’s buyer)’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조달이라는 단어는 섹시하게 들리지 않지만 조달은 막중한 업무다. 책상부터 인공위성까지 미국 정부가 필요로 하는 1000여 개 품목을 구매하는 막중한 역할을 한다. 단순한 행정이 아니다. 조달청 없이 돌아가는 미국 정부 부서도, 공공 서비스도 없다. 이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역량이 요구된다. 문제는, 그런 인재들이 지금의 공직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 유능한 정부는 유능한 사람이 만든다
갈수록 복잡해져 가는 사회는 전문성을 갖춘, 역량있는 정부를 요구한다. 필자의 책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에서 강조한 것처럼 20세기의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을 넘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역량있는 정부’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무능한 공직자가 요직을 차지하는 구조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단순히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인재들이 공직에서 성장하고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유능한 정부는 유능한 사람들이 만든다. 유능한 정부는 유능한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고, 남고 싶어하는 곳이다. 필자가 ‘코드 포 아메리카’란 미국의 대표적 시민 기술(civic tech) 단체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할 때, 필자의 사수는 구글에서 14년을 일한 인더스트리 베테랑이었다. 이런 사람이 왜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구글에서는 내가 한 프로젝트가 수백만 명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주정부의 복지 시스템을 개선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는 걸 경험했죠.”
유능한 인재가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이유는 연봉이나 안정성이 아니다. 오직 공공 영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문제 해결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유능한 정부는 관행과 규정의 준수보다 문제정의와 해결을 중시한다. 유능한 정부란 문제를 분석하고 정의할 줄 알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줄 아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어디가서 뒤쳐지기 싫어하는 한국 정부의 데이터 전환에 대한 선전은 요란하다. 그러나 공공사회에 새롭고 뛰어난 인재를 끌어들이고 그들을 남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미흡하다.
화려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많은 정부부처, 공공기관, 국책연구소는 여전히 심층적인 데이터 분석보다 피상적인 동향조사에 바쁘다. 나를 들여다 보는 수고 없이, 남에게서 명분을 찾으려 한다. 동향조사는 전문적 능력 없이도 할 수 있다. 동향조사는 굳이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람이 할 일도 아니다. 이건 인공지능이 대체해도 충분하다.
공무원을 공공 문제 해결의 전문가로 만들어주는 정부, 단순히 월급을 주는 직장이 아니라 의미있는 커리어를 만들어 주는 정부, 그래서 공익을 소명으로 아는 전문가들이 모여들고 성장하고 활약할 수 있는 정부가 21세기가 원하는 정부다. 한국 정부는 과연 어떤 정부인가, 그리고 어떤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인가.
김재연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
필자 소개 학계와 실무를 모두 경험한 미국의 공공 영역 데이터 과학자입니다. 존스홉킨스 SNF 아고라 연구소의 연구교수이며 하버드 케네디 스쿨 공공 리더십 센터의 연구위원입니다. 이전에는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의 데이터 과학자로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더 쉽고, 빠르고,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KDI 정책대학원에서 데이터 과학 담당 교수로 일했고, 공익 목적의 데이터 과학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세종서적 2023)’란 책을 썼습니다.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미국 정치학회(APSA)로부터 도시, 지역 정치 부문 최우수 박사학위상(2022), 시민참여 부문 신진학자상(2024)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