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MZ 체인지메이커가 말하는 ‘이미 성공한 인생’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CRO·십시일방 대표

우리 사회에서 ‘성공’의 대표적인 기준은 경제적 성취다. 높은 연봉, 창업, 재테크 등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조기 은퇴를 실현하는 이른바 ‘파이어족’은 많은 MZ세대들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성공을 조금 다르게 정의하고 싶다. 성공이란 경제적 자유가 주어졌을 때 스스로 살고자 선택하는 삶의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에 가깝다. 조기 은퇴를 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있다면 이미 성공한 것이다.

만약 내가 큰 부를 이루어 은퇴하게 된다면 여생을 어떻게 보낼까? 아마도 처음엔 의식주의 질적 개선을 꿈꿀 것이다. 더 좋은 집,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옷을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비싼 코스 요리도 하루에 열 번 먹을 순 없고, 명품 옷도 여러 벌 겹쳐 입을 수 없다.

이처럼 의식주는 무한정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언젠간 무디어지고 만족감이 떨어진다. 결국 사람은 정신적인 충만함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때 나는 아마도, 나의 가치관과 정신적 지향점을 담은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의미 있는 일로 주변과 나누며 따뜻하게 살아가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큰 부를 일군 많은 창업자들이 이런 길을 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주식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고, 오늘날까지 25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런 삶은 커다란 물질적 성공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 돌아보니 찾아온 ‘이미 성공한 인생’

나 또한 성공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수십 년 뒤에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 비영리단체 ‘십시일밥’을 운영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다. 주변 사람들도 아낌없는 칭찬과 응원을 보내줬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체인지메이커의 길을 계속 가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반이 되자 현실적인 조언들이 쏟아졌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더 많은 경험과 자산을 쌓은 뒤에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말들이었다.

구체적인 인생 플랜을 제시해 준 어른들도 있었다. “일단 큰 회사에 들어가서 5년에서 10년 정도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고, 이후 사업을 시작해서 돈을 벌어 좋은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 조언을 뒤로하고 체인지메이커의 길을 선택했고, 10년이 지나 오늘이 되었다.

이제 와 뒤돌아보니 나는 이미 성공해 있었다. 현재는 또 다른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의 존엄한 자립을 돕는 십시일방은 나의 가치관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삶에 대한 관점과 일치된 일을 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상이 즐겁다. 또한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전하며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 이 삶 자체가 이전부터 꿈꿔왔던 ‘성공적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규모만 보면 여전히 작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에 수백억 원이 더 투입된다고 해서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이나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자본의 크기에 따라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관의 크기가 커지거나 작아지지도 않는다.  또한 더 큰 돈이 더 큰 임팩트를 창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영리 영역에서는 자금을 모으는 것만큼이나 그 돈을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다.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능력은 그 자체로 전문성과 장기적인 훈련을 요구한다. 나는 앞으로도 스스로를 훈련하고, 작더라도 천천히 자본을 키워 사회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능한 체인지메이커로 성장하고 싶다.

◇ 사회혁신가의 ‘소명’에는 불황이 없다

경제적 불황 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꿈을 잃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꿈이 “많은 돈을 벌어 은퇴한 뒤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면 꼭 먼 미래가 아니어도 된다. 체인지메이커의 삶을 지금부터 시작하면 그 꿈은 이미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와 환경 문제는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불황이 없는 이 영역에서 청년 체인지메이커들은 자신만의 소명과 가치관에 따라 무궁무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성공은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물론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인지메이커의 삶을 지속하려면 재무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법을 배우고 익숙해져야 한다. 그 방식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 모델일 수도 있고, 사회적 미션에 동의하는 사람들로부터 기금을 모으는 비영리 모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꿈을 지켜가는 것이다.

사회는 청년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과 경로를 알 수 있도록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루트임팩트는 ‘임팩트닷커리어’를 통해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커리어 성장을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일방적인 교육이 아닌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역량을 향상하고, 커뮤니티를 통해 선배, 동료를 만나고, 매칭플랫폼을 통해 실제 취업 기회를 연결한다.

물론 성공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조기 은퇴 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꿈꿀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만약 후자의 삶을 꿈꾼다면 꼭 먼 미래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체인지메이커로 살아가는 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작할 수 있고, 그 자체로 이미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삶이 더 많은 청년들에게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양한 삶의 경로를 보여주고, 지속 가능한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청년들이 자신의 소명을 따라 체인지메이커로 살아가는 길에 사회가 함께한다면, 더 많은 ‘이미 성공한 삶들’이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펼쳐질 것이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CRO·십시일방 대표

필자 소개

임팩트를 측정·평가하는 전문 기관인 (주)임팩트리서치랩에서 최고연구책임자(CRO·Chief Research Officer)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대학생들에게 지속가능경영과 소셜벤처 창업, 임팩트 측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취약계층 청년들에게 무료 식권을 전달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밥’을 설립했고, 현재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무료 주거지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사회혁신 생태계의 N잡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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