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외부효과가 미래의 비즈니스 기회가 된다(Today’s externalities are future business
opportunities).”
지난 8월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리더스 서밋에서 크리스티안 헬러(Value Balancing Alliance·VBA) CEO가 던진 메시지다. 이날 현장에는 글로벌 기업, 민간 재단, 정부 관계자 등 사회혁신 리더 350여 명이 모여 2시간 동안 ‘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외부효과란 기업 활동이 의도하지 않게 사회에 이익이나 손해를 끼쳤음에도, 시장에서 적절히 보상이나 비용 청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긍정적 외부효과는 사회적 편익을, 부정적 외부효과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헬러는 “외부효과를 측정하고 보상 체계를 마련한다면 사회적 가치는 물론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ETS·Emissions Trading Scheme)다. 배출 총량을 초과해 부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는 기업은 과징금을 내거나 다른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반대로 전기차 보급으로 탄소배출을 줄여 긍정적 외부효과를 만든 테슬라 같은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팔아 경제적 보상을 얻는다.
실제 테슬라는 2024년 배출권 판매로 약 3조8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4분기에는 순이익의 30%가 배출권에서 나왔다. 주주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 평가에 직결되는 정보다. 이 때문에 테슬라가 이를 측정·관리·보고하는 것은 당연하며, 헬러가 말한 대로 전통적인 재무제표(financial statement)와 나란히 사회적 성과를 담는 임팩트 제표(impact statement)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 임팩트 가치(Impact value)가 재무적 가치(Financial value)로 전환될 미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사회적 가치에 가격 신호(price signal)가 부여돼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사이에 다리가 놓인 사례다. 환경 성과가 화폐 가치로 환산되고,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사회적 가치가 현금흐름(cash in·cash out)으로 연결됐다.
흥미로운 점은 탄소배출권처럼 제도화되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회적 가치는 이미 재무제표에도 그 성과가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배출권 판매 수익은 회계기준에 따라 영업외수익 등으로 기록되며, 주주는 손익계산서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화폐로 환산할 수 있어도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는 사회적 가치가 더 많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더라도 이를 거래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주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곧바로 재무적 가치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가치는 임팩트 제표에는 담을 수 있지만, 배출권 수익처럼 재무제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SK그룹의 사회성과인센티브(Social Progress Credit·SPC) 사업이나 슈왑재단의 CGM(Common Good Marketplace) 사업처럼, 긍정적 외부효과를 보상하는 제도가 확산된다면 현재는 제도 밖에 있는 사회적 가치들도 언젠가는 재무적 가치로 전환될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거대한 변화 속에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이를 기업의 언어인 화폐로 표현하며 관리하는 일은 새로운 기회가 된다. 사회·환경 문제 해결을 제도적으로 설계하고, 이를 시장 기구에 반영해 경제 주체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회일수록 이 흐름은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이는 곧 기업가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전략적 자산이자,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 ‘원 메저먼트 시스템(One Measurement System)’을 준비하라
VBA의 크리스티안 헬러는 “임팩트 보고서가 재무제표처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로 읽히기 위해서는 단일한 측정 시스템(One Measurement System)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난립해 있는 수많은 임팩트 측정·표현 방식을 이제는 하나의 기준 아래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설명한 VBA의 핵심은 ‘다양한 지표들을 공통의 언어로 전환하는 것’이다. IRIS+와 같은 글로벌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 체계에서 도출된 데이터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를 기업의 언어(business language), 즉 화폐 단위로 환산해 재무제표와 함께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IRIS+의 환경 지표에서 ‘오염물질 배출량’을 가져와 해당 물질의 사회적 비용을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산출하면, 저감 성과를 화폐 단위로 환산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수치는 재무제표처럼 ‘원(₩)’ 단위로 합산·비교가 가능해진다.
이 흐름은 글로벌 기업들에도 확산되고 있다. 소프트뱅크 CSR 본부장 이케다 마사토는 “2024년부터 SK텔레콤, 사회적가치연구원(CSES)과 협력해 연구원의 측정 방법론을 자사에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그는 “기업마다 프레임워크가 너무 많아 표준화가 어렵고, 계열사·부서 확장에도 제약이 있다”는 현실적 한계도 토로했다.
물론 대다수 이해관계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단일한 측정 시스템이 마련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VBA·SK그룹·소프트뱅크와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공통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간다면, 미래에는 사회적 가치를 보다 객관적이고 비교 가능한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 단일·표준화 된 지표체계의 한계와 과제
단일하고 표준화된 임팩트 측정 시스템에 대한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제기해온 과제다. 이날 행사에서도 전문가들은 “사회적 가치 측정을 활성화하려면 규제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잘한 기업에는 보상이 주어져야 동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만 사회문제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단일·표준화 시스템만으로 대응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임팩트 측정은 계량화가 쉬운 아웃풋(Output) 지표에 집중돼 있다. 예컨대 친환경 제품 판매 개수, 무료 멘토링 횟수처럼 ‘숫자를 세는 지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웃풋만 강조하다 보면 실질적 문제 해결보다 ‘얼마나 많이 했는가’라는 공급자 중심 지표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아웃풋을 측정하고 이를 표준화하는 노력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러나 결국은 다음 단계인 아웃컴(Outcome)과 임팩트(Impact)를 어떻게 계량화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사회적 가치가 만들어지는 맥락을 이해해야 하므로, 단순한 표준화나 인공지능 자동화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맥락을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날 기조강연을 맡은 신현상 한양대 교수(임팩트리서치랩 최고지식책임자)는 “맥락 기반의 임팩트 측정 체계와 국가·사회 차원의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며 “민간의 임팩트 창출을 장려하는 것이 지속가능하고 포용적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 짚어야 할 점은 현재 논의되는 ‘표준화’가 측정 방법의 표준화라기보다는, 이미 계량화된 사회적 가치를 화폐 가치로 표현하는 방식의 표준화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창출됐는가’다.
마지막으로 흔히 말하는 “사과는 사과끼리 비교해야 한다(Comparing apples to apples)”는 원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떤 기업은 화폐가치화가 쉬워 높게 평가되고, 다른 기업은 대리 지표가 부족해 낮게 평가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전자가 본질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마치 인체가 단백질·지방·탄수화물을 균형 있게 필요로 하듯, 사회 역시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균형 있게 요구된다. 단순히 화폐 단위만으로는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이유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공동대표·한양대 겸임교수
필자 소개 임팩트를 측정·평가하는 전문 기관인 (주)임팩트리서치랩에서 공동대표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대학생들에게 지속가능경영과 소셜벤처 창업, 임팩트 측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취약계층 청년들에게 무료 식권을 전달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밥’을 설립했고, 현재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무료 주거지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