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혁신의 목격자] 내가 모르는 것을 함께하는 용기, 협력의 본질

얼마 전 우연히 본 포스터의 한 문장이 마음에 들어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극장엔 나를 포함해 몇 사람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였지만,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마음에 담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처음엔 각자 혼자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를 경계하고, 힘을 합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들은 깨닫는다.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2017년 개봉한 영화 ‘저스티스 리그’ 이야기다. “협력의 어려움은 정답이 하나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협력의 역설’ 저자 애덤 카헤인은 말한다. 정답을 확신할수록 타인의 답은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함께 일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영화 속 영웅들이 협력을 주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자 정답을 알고 있다고 믿었기에 협력은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비효율적으로 여겨졌다. 협력은 원래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협력의 기본값은 ‘협력이 쉽지 않다’는 인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는 협력을 종종 ‘분업’과 혼동한다. ‘외부에서 이런 협력 제안이 왔는데요?’라는 말에 조직 내부의 분위기가 미적지근해진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일을 나누고, 어려움을 줄이며, 에너지를 아끼려는 협력은 사실 분업에 가깝다. 분업의 반복은 협력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진짜 협력은 서로가 잘하는 것만 연결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협력은 한두 번 가능할 수 있지만 지속되기 어렵다. 공동 목표를 위해 컨소시엄을 형성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강점만을 기반으로 한 협력은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에 다시 성사될 확률이 낮다.

[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취준생’이라는 취약계층의 등장,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올해로 겸임교수 4년 차다. 매 학기 학생들과 어울리며 수업을 넘어선 교류를 이어갔다. 때로는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 즐겁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3학년이 되고 취업 시즌이 시작되면, 학생들의 얼굴엔 근심이 드리워진다. 교내 카페에서의 짧은 수다도 사라진다. 웃음보다 침묵이 늘었고, 관계보다 경쟁이 앞선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멀어진 채, 외로운 취업 준비 기간을 보낸다. 대학 커뮤니티에는 이러한 형태의 ‘상실’이 있다. 취업 준비가 시작되면 우리는 서로를 잃어간다. 취업준비생, 이른바 ‘취준생’은 이제 명백한 취약계층이다. 임팩트 비즈니스 전문 조직 임팩트스퀘어는 사회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수의 구성원이’, ‘고통받는 상태’로 정의한다. 취준생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고착된 저성장과 끝나지 않는 경기침체로 사회 초년생들의 노동시장 진입은 구조적으로 어려워졌다. 부지런히 문을 두드리지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몇 안 되는 인턴 자리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인턴 경험을 쌓아야 하는 상황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한 번 인턴십을 경험한 학생들은 이를 바탕으로 두세 번의 인턴을 하며 스펙을 강화하는 반면, 처음 한 번의 기회를 잡지 못한 청년들은 다음의 기회에서도 계속 소외되는 악순환에 시달린다. 이 같은 양극화 속에서 충분한 기회를 경험하지 못한 취준생들은 자신이 영원히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일부 청년들은 사회로 나가는 것을 아예 거부하거나, 사회와 단절되는 고립·은둔 상태로 접어들기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3)에 따르면 청년들이 고립·은둔을 하는 원인 1위는 ‘취업 실패(24.1%)’였다. 54만 명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고립·은둔 청년 중

[조직문화 pH 6.5] 생존의 갈림길, ‘턴 어라운드’를 만드는 한 끗

필자가 일하고 있는 진저티프로젝트는 올해 4월이면 11살이 된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것처럼 보였던 대표님들도 사실 창업 4년 차의 길을 걷고 있었고, 완벽해 보이던 선배들 역시 성장과 불안 속에서 버텨내고 있던 프로젝트 매니저들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 변화의 흐름 속에서…생존과 지속 사이 달리는 열차의 창밖 풍경처럼, 조직을 둘러싼 생태계도 끊임없이 변해왔다. 소셜벤처, 임팩트, 변화와 같은 단어들이 마치 봄날 새순처럼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눈앞의 성과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열정으로 만든 풍성한 잎사귀들이 가득했던 때였다. 우리는 곧 더 나은 세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새로운 사람들이 올라타는 일도 반복됐다. 떠나는 이들을 보내며 가끔은 메마른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새로 합류한 이들을 맞이하며 벅찬 환영을 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열차가 멈추지 않도록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치 영화 ‘설국열차’의 배경처럼 경제 한파 속에서 조직을 유지하는 일은 점점 더 힘겨운 싸움이 되었다. 때로는 생존조차 위협받는 순간들도 있었다. 10년을 넘긴 조직은 그 자체로 우리를 설명하는 든든한 간판이었다. 시간 속에 축적된 성과와 평판은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처럼, 그 자산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커졌다. 우리가 쌓아온 유산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야 한다는 강박은 결정의 순간마다 불안을 키웠다. 최근 비영리 조직의 생애주기 모델을 접하게 됐다. 10년 차가 된 우리 조직은 치열한

[지역의 미래] 불행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사이에…

‘아이패드 병’이란 게 있습니다. 아이패드를 매우 사고 싶어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애플펜슬로 사각사각 필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주요 증상입니다. 아이패드병의 치료법은 오직 하나, 아이패드를 구매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패드병이 심각해서 두 대나 갖고서야 완치되었습니다. 유튜브와 OTT를 볼 때 주로 사용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가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이패드 하나 들고 구석진 카페에 가겠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그렇게 탄생했다는군요. 저에게 아이패드는 원하는 것이었고 봉준호 감독에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필요한 것으로 합리화할 때 불행이 시작됩니다. ◇ 관광객과 생활인구 인구감소 지역은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계절마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독특한 컨셉트의 축제를 엽니다. 둘레길을 개발하고 랜드마크도 건축합니다. 이런 관광객을 포함해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사람, 거주하는 사람을 모두 포함해 생활인구라고 부릅니다. 지자체는 생활인구가 필요합니다. 올해부터 지방교부세 산정 기준이 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생활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 돈으로 출산과 육아도 지원하고 청년 창업도 지원하며 더 큰 축제도 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생활인구를 가장 빨리 늘릴 수 있는 관광객 유치는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관광객 유치가 곧 인구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합리화는 경계해야 합니다. 전북 임실은 ‘임실N치즈축제’와 ‘임실산타축제’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생활인구는 2018년 498만 명에서 2023년 853만 명으로 71% 증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10% 줄었고 지방소멸위험지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임팩트로의 초대] 기후테크,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캐피탈 스택’이 답이다

기후테크 투자를 검토하다 보면 흔히 듣는 질문이 있다. “기후테크는 경제성을 갖출 수 있을까?”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이미 ‘가격 경쟁력(Price parity, 화석연료와 비교해 동등하거나 더 낮은 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수준)’을 갖췄다. 그러나 산업 전반의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과 운송 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해 주목받는 수소 에너지와 플라스틱을 원료 성분으로 분해해 재활용하는 해중합(Depolymerization) 기술이 있다. 또한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해 저장하거나 활용하는 탄소포집(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 Storage) 기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들 기술은 아직 경제성을 확보하는 데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정치·경제적 불확실성도 더욱 커졌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한 기후 정책 변화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수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경기 둔화 우려는 여전히 지속되며, 기후테크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B인사이트(CB Insights)에 따르면, 실제로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의 펀딩 규모는 2022년 944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 515억 달러, 2024년 309억 달러로 급감했다. 이러한 감소세는 한때 붐을 일으켰던 클린테크 1.0 시대의 VC 투자 실패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며 우려를 낳고 있다. ◇ 클린테크 1.0의 실패와 재생에너지의 성공 2000년대 중반,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들은 클린테크 1.0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2006~2011년 사이에 25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됐고, 태양광·풍력·바이오연료·연료전지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등장했다. 하지만 많은 스타트업이 기대한 수익을 내지 못했고, 시리즈 A 단계 투자 기준으로 약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거짓말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새 정부의 정책과 정쟁의 중심에는 특이한 이름의 조직이 있다. 바로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DOGE)’다. 이름만 보면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부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전격적인 정부 예산 삭감과 공무원 대량 해고다. 그리고 이 조직을 이끄는 인물은 다름 아닌 일론 머스크다. 정부효율부(DOGE)의 가장 큰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부 자체다. 연방정부는 200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는 미국 최대의 고용주다. 일각에서는 정부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하지만, 통계를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연방 인사처(OPM)에 따르면, 1968년 이후 인구 대비 연방 공무원 숫자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이 비율이 소폭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2기 정부의 ‘효율화’ 정책은 가차 없었다. 정부효율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의 충격은 태풍처럼 몰아쳤다. 이미 7만5000명의 연방 공무원이 권고사직을 받아들였고, 최근 1~2년 사이에 채용된 신입 공무원 20만 명이 잠재적 해고 대상 명단에 올랐다. 전체 공무원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연방정부의 평균 연령이 46세임을 감안하면,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타깃이 된 것이다. ◇ ‘효율’을 내세운 모순…정부효율부는 무엇인가 그러나 정작 정부효율부 자체는 모순덩어리다. 이름에 ‘부(部)’라는 단어가 붙어 있지만, 미국 헌법상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새로운 정부 부처를 만들 권한이 없다. 이는 의회 권한이다. 따라서 정부효율부는 정식 부처가 아니라 백악관 직속 조직이다. 머스크 역시 공식 직함은 ‘특별 정부 직원(Special Government Employee)’일 뿐이다. 실질적인 책임자는 따로 있다. 지난 2월 25일

안정권 노을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
[벤처, 건강하게 성장하기] 달을 보는 조직과 손가락을 보는 조직

소셜벤처나 스타트업 사이에는 공통으로 선호되는 제도적·문화적 지향점이 있다. 원격근무를 비롯한 유연근무 제도, 수평적인 조직 구조, 영어 이름이나 별명 또는 ‘님’ 호칭 사용, 자율적인 근무 환경, 직원 개인의 커리어 성장 강조, 일과 삶의 균형 추구,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 중시, 스톡옵션을 통한 동기부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근무 제도나 복리후생,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조직들에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필자가 일하는 노을에서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답은 바로 ‘조직의 성장’이다. 여기서 ‘조직’은 개인이 아닌 회사 전체를 의미하고, ‘성장’은 단순한 복지나 만족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 향상을 뜻한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일 수도 있고, 조직의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건강한 조직을 추구하는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볼 지점이다. ◇ 제도와 문화의 이상과 현실 조직의 리더들이 이런 제도와 문화를 도입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대체로 두 가지 지향점이 있다. 일차적으로, 직원의 성장과 몰입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조직의 성과 창출과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요즘 벤처나 스타트업의 기업 소개 내용을 보면 ‘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한다’, ‘최고의 성과를 위해 근무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선택한다’처럼 직원과 조직이 윈윈(win-win)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좋은 제도와 문화 → 직원의 성장과 몰입 → 조직의 성과와 성장’이라는 논리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상황을 자주 접한다. 유연근무와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했지만, 정작 직원들의 몰입도나 생산성이 높아졌는지는

[투자자, 연금술사가 되다] 혼합금융 101 : 먼저 믿고 투자합니다

3월을 앞두고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다녀왔다. 이번 출장은 평소와 달리 10명이 함께하는 동행 일정이었다. 미스크의 혼합금융팀을 비롯해 대기업 ESG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월드비전의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뤘다. 인도네시아 환경부 차관과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어, 출장단은 전통 의상인 바틱까지 준비하며 한껏 기대감을 높였다. 이번 출장은 ‘KOICA IBS-ESG 이니셔니브’ 공모 사업을 혼합금융 기반으로 제안한 국내 대기업과 미스크의 프로젝트가 타당한지 사전 검토하는 자리였다.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이란 개발 재원을 민간 투자와 결합해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달성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KOICA 현지 사무소를 비롯해 개발도상국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 ‘카프리아 벤처스(Capria Ventures)’,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임팩트 액셀러레이터이자 오랜 친구인 ‘인스텔라(Instellar)’, 소셜벤처 육성사업을 운영하는 ‘파이자(Pijar) 재단’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논의를 진행했다. ◇ 서로 다른 렌즈로 본 혼합금융 가장 뜨거웠던 시간은 외부 미팅이 끝난 뒤 매일 저녁 이어진 3시간의 토론이었다. 대기업 ESG팀은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평가를 통해 자사 ESG 과제를 도출하고, 그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셜벤처를 발굴해 투자하는 ‘임팩트 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이들은 소셜벤처 팀들이 개발도상국에서도 동일한 임팩트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개발협력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민간 기업이 왜 굳이 ‘펀드 투자’라는 방식으로 이윤을 목표로 하지 않는 기업 활동을 하는지?”, “투자할 팀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전 임팩트 지표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지?” 특히, 블라인드 펀드(Blind Fund)의 특성상 투자 대상 기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 성과(outcome)를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처럼 투자와 개발협력, 각자의 렌즈는

[지금은 인구테크] 스타트업, 인구 변화에서 해답 찾는다

스타트업의 성공은 단순한 기술력이나 아이디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시장 변화를 기회로 삼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이 모든 산업에 스며들었듯이, 향후 5년간 스타트업의 핵심 화두는 ‘인구테크’가 될 것이다. 인구테크란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는 개념으로, 식량전쟁, 기후변화, 헬스케어 등 사회문제를 정책적 해결을 넘어 스타트업이 혁신을 통해 직접 시장을 창출하는 접근 방식이다. 필자는 10년 전 대기업 연구원을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하며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당시 생소했던 용어는 이제 누구나 아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좌초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 AI는 이미 현실…다음은 ‘인구테크’다 최근 인공지능(AI)은 전 산업에 깊숙이 스며들며 더 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닌 현실이 됐다. CES 2024가 ‘ALL O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AI의 무한한 가능성을 조명했다면, CES 2025에서는 AI가 이미 산업 전반에 자리 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스타트업들에게 AI가 본격적인 비즈니스 기회로 떠오른 시점은 언제일까? 불과 5년 전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컴퓨터공학과 교수들조차 졸업생들에게 “AI 분야는 3D 업종(힘든 일)이 될 것”이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AI 관련 학과와 기업이 급증했고, 정부도 AI의 산업 전반 확산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는 범정부 차원의 집중적인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물론 우리나라가 챗GPT, 딥시크 등 AI 관련 이슈 대응에서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단기간에 이루어진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DX)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썸네일 가로형
[영리한 비영리] 우리가 서로 돕는다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은 새드엔딩으로 끝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목초지는 결국 황폐화된다. 1968년, 생태학자 개릿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 개념을 발표하며 중요한 경고를 남겼다. 숲과 물 같은 공공재를 개인과 시장의 원리에만 맡겨둔다면, 공동체의 이익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개인이 방대한 목초지에서 경쟁하며 자유롭게 소를 방목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말라붙은 목초지였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이 무한하지 않으며, 무분별한 사용이 결국 파국을 부른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동시에 ‘공유의 비극을 넘어서기 위해’ 공동체의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진지한 질문을 남긴다. ◇ 거버넌스가 유명무실해지는 이유 거버넌스(governance)는 정부, 기업, 비영리기관, 시민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정책을 수립하고 협력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협치’라는 번역어도 있지만,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더 자주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거버넌스를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문제 때문이다. 오늘날 정부는 더 이상 단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또한, 지역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지자체도 거버넌스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중간 조정자 없이 정부와 민간이 원활하게 협력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위원회와 협의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주체를 참여시키는 플랫폼을 마련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불행하게도 거버넌스의 성공사례는 찾기 어렵다. 정부 부처, 지자체가 주도한 많은 거버넌스가 생겼다가 몇 년 뒤 자취를 감추는

[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우리의 성과 지표가 사회의 기대를 저버릴 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대부분의 조직은 사전에 성과 지표를 설정한다. 하지만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현실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상황이 변하고, 기획 단계에서 고려하지 못했던 새로운 요구가 생긴다. 이때 사업 담당자는 기존의 성과 지표보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지표를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표 변경이 어려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요구보다 기존 지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임팩트 창출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도 일어난다. 조직이 사전에 설정한 지표를 유연하게 바꾸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자금 제공자나 관리 기관의 승인을 받은 성과 지표는 단순한 목표를 넘어 사실상 계약과 같다. 성과 지표와 연동된 예산을 변경하는 것은 계약서를 다시 쓰는 수준이라 많은 양의 서류 작업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승인 절차가 오래 걸려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사업 담당자는 새로운 지표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변경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전에 설정된 성과 지표를 준수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업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대하고 들어온 바가 있는데, 갑자기 지표가 변경되어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는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일 것이다. 따라서 사업의 기본적인 지표는 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존 지표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목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변화하는 환경, 변하지 않는 성과 지표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은 보육원 등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의 자립을 돕는 단체다. 십시일방은 매년 10여 명의

[기후 유니버스] 누가 ‘트럼프의 기후정책’을 묻거든, ‘힐빌리’를 보게하라

그가 돌아왔다. 지난해 11월 6일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가 지난 1월 21일 공식 취임했다. 바이든의 사퇴, 트럼프의 유세장 피습, 해리스의 추격 등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사건을 지구촌 모두가 지켜봤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두 후보의 기후 정책은 극명한 온도차를 보였다. 여론조사에서는 해리스와 트럼프가 백중세를 이루는 것으로 점쳐졌지만, 결과는 312 대 226. 예상보다 트럼프가 여유 있게 승리했다. 기후 부정론자 트럼프의 귀환을 반길 수는 없었다. 그가 8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보였던 반기후적인 행보를 모두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그 간의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반기후 정책을 폈으면 더 폈지 절대로 덜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상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를 살펴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 미국이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 트럼프 당선의 배경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요인이 꼽힌다. 첫째, 인플레이션 문제다. 코로나 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물가가 많이 올랐고, 바이든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그린뉴딜 정책에서 출발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이 바이든 정부의 성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체감도는 낮았다. 둘째,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이다. 바이든 정부가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진보층과 대학생들이 등을 돌렸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이들이 투표를 포기하거나 다른 선택을 하면서 트럼프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셋째, 해리스의 차별화 전략 실패다. 바이든이 사퇴한 이후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