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시간 단위로 아이를 맡아주는 키즈카페 선생님이 있었는데, 1~2주에 한 번 아이를 맡겨두고 혼자 커피 한잔 마시는 게 그렇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사단법인 루트임팩트의 DEI 이니셔티브 팀은 2025년 상반기, 결혼 후 10년 이상 가족 돌봄을 전담해 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약 3개월간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돌봄의 여정을 되짚으며, 각 시기에 절실했던 ‘버팀목’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 보이지 않던 기여들이 드러날 때
“아버님이 서울에 올라오셔서 병원에 함께 다녀오던 길이었어요. 아이가 잠깐만 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아버님과 함께 놀이터에 서 있었죠. 그런데 아버님이 시장하실까 봐 속이 너무 타더라고요. 그때 배달앱만 있었어도…”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몸이 약한 아이와 시부모님 간병을 중심으로 생기는 가족 갈등을 겪으며, 제 마음 상태를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게 괴로웠거든요.”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돌보는 사람들이 만나는 의외의 지원과 기여들을 발견했다. 어떤 도움은 직접 손을 보태주는 방식으로, 어떤 도움은 돌보는 이를 돌봐주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놀아주는 일, 치료해 주는 일, 알려주는 일, 치워주는 일, 위로해 주는 일, 들어주는 일 등 형식도 다양했다.
돌봄 경제의 경쟁력은 누가 어떻게 돌봄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얼마나 세심하게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유엔여성기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강조하고 있는 돌봄 경제의 핵심 키워드가 ‘아무도 배제되지 않도록(Leaving no one behind)’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단순히 돌봄의 대상에서 누락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돌봄의 주체와 노동의 다양성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 돌봄도 커리어가 되는 사회를 위해
지난 3월, 공동육아 초등방과후 돌봄이 ‘협동돌봄센터’라는 이름으로 법적 지위를 얻으며 아동복지법상 제도권에 편입됐다. 20여 년간 제도 밖에서 부모와 돌봄교사가 함께 만들어온 돌봄 공동체가 마침내 사회적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교사들의 경력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그만큼 제도 밖의 돌봄이 사회적으로 ‘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제도는 늘 실제보다 늦고, 인식이 제도보다 늦기도 한다. 그 사이 여전히 많은 돌봄 자원과 인력은 법과 제도의 경계 밖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숨은 기여의 순간들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태권도 사범님, 축구 코치, 병원 이동을 돕는 운전기사, 돌봄 시설 내 조리·안전 관리 직원 등은 돌봄 시스템의 일부다. 놀이터를 설계하고 안전 기준을 만드는 이들의 일 역시 돌봄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는 이 다양한 형태의 기여들을 정의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돌봄 노동은 비로소 제도 안에 자리 잡고,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사회가 그 일을 ‘의미 있는 일’로 인정하고, 사람들이 그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받아들이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Leaving no one behind) 돌봄의 사회. 하루빨리 그런 사회가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선종헌 루트임팩트 DEI 이니셔티브 팀장
루트임팩트의 <돌봄의 재발견> ‘포용’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지만, 많은 조직들이 여전히 이를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용적인 조직이란 결국 ‘돌볼 줄 아는 조직’이라고 믿습니다. 루트임팩트는 돌봄이 더 이상 개인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돌봄은 너그럽고 여유로운 조직의 선택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필수 전략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은 ‘돌봄’을 자신과 조직의 일로 다시 생각해보고, 포용적 조직을 위한 돌봄의 범위와 정의,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 누구의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