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 위한 사업도 합니다” SK행복나눔재단이 직접 사회문제를 푸는 이유

2026 기업공익재단 리포트<6>
[인터뷰] 이보인 행복나눔재단 전략기획팀 본부장
“지원 규모보다 실제 변화 중요…다른 곳이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집중”

“전국에 점자 문제집이 필요한 학생이 13명이라고 해보죠. 몇 명이 이용하는지, 얼마나 큰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이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이보인 SK행복나눔재단 전략기획팀 본부장은 최근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재단이 직접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수혜자가 적거나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문제는 영리기업이나 소셜벤처도 접근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일상을 좌우하는 절실한 문제라는 것이다.

◇ 사회혁신 생태계 지원에서 직접 문제해결로 

2006년 설립된 SK행복나눔재단은 외부 단체를 지원하던 방식에서 2019년을 기점으로 직접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솔루션을 검증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 본부장은 “초기에는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등 사회혁신 생태계를 지원하는 데 많은 역량을 투입했었는데, 점차 사회혁신 영역에 진입하는 기업과 기관이 늘어났고, 재단 내부에서도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사회혁신 생태계에서도 수익성이나 규모 문제로 다루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안정적이고 유연한 재원을 갖춘 기업재단이 다른 곳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를 먼저 풀어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세상파일’은 이러한 기조 아래 재단이 추진 중인 사회문제 해결 플랫폼이다. 구체적인 문제를 발굴해 해결 방법을 설계하고 현장 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시각장애 아동 점자 문해력 교육,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저상버스 탑승 예약 앱 ‘위버스’, 노인 치매 예방 인지훈련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출범 이후 현재까지 약 110억 원의 기업 기부금을 활용해 총 20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 “시각장애 아동도 모두 다르다” 작은 문제를 더 작게 나누는 이유

행복나눔재단의 문제해결 방식은 대상자를 세분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각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서도 연령과 장애 정도, 생활환경에 따라 필요한 지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비장애인은 물컵 하나를 사더라도 용도와 크기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선택하지만,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은 큰 범주로 묶이는 경우가 많다”며 “각자가 겪는 문제를 세분화해야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각장애 아동의 점자 학습을 돕는 교구 ‘슬라이닷(Slidot)’이다. 재단은 점자를 처음 배우는 미취학·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의 학습 문제에 주목했다. 이 본부장에 따르면 해당 연령대의 점자 학습 대상자는 전국적으로 약 60명에 불과하다.

이 아이들에게는 손끝으로 점자를 반복해서 만지며 놀이처럼 익힐 수 있는 교구가 필요했지만, 기존 전자 점자기기는 가격이 비싸고 시장 규모도 작아 적합한 제품을 찾기 어려웠다. 이에 재단은 점자가 인쇄된 종이 카드(RFID 내장)를 스마트폰에 태그하면 안내 음성이 나오고 아동이 키보드로 정답을 입력하는 방식을 고안해 기기 제작 비용을 10만 원대로 낮췄다.

이 본부장은 “시장이 작다 보니 기업이나 소셜벤처 입장에서는 개발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구라면 누군가는 만들어야 한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슬라이닷은 올해 3월에 미국 보조공학 콘퍼런스 ‘CSUN ATC 2026’에서 소개됐으며, 이후 현지 점자 교육기관과 미국 내 첫 시범 사용을 준비하고 있다.

◇ 몇 명 지원했나보다 ‘실제 무엇이 달라졌나’

재단은 사회적 성과를 측정할 때 화폐 가치로 환산하는 방식보다 실제 이용자의 변화를 확인하는 데 집중한다. 슬라이닷 역시 보급 인원보다 아이들이 점자를 더 자주 연습하는지, 기존보다 편하게 사용하는지를 살피는 데 중점을 뒀다. 담당자가 부모와 소통해 사용 경험을 묻거나 현장을 방문해 아이들이 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불편함이 발견되면 제품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실제 시각장애 아동 5명을 대상으로 4개월간 사용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4명이 이틀에 한 번 이상 슬라이닷을 꾸준히 사용했고 3명은 점자 모양을 구별하는 단계를 마치고 글자를 읽는 단계로 진입했다. 이 본부장은 “아이가 기존에 10분 공부했다면 어떻게 해야 11분 공부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며 “작은 변화라도 실제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접 개발한 해결책을 공공제도나 외부 기관으로 확산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장애 아동 맞춤형 이동보조기기 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재단은 2019년부터 휠체어를 사용하는 아동·청소년에게 맞춤형 수동 휠체어와 전동보조장치를 지원하고 이동성 변화를 살폈다. 2025년 말 기준 누적 지원 인원은 4064명이다.

재단은 이러한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전동보조장치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참여했다. 장애인단체와 의료계, 법조계 등 전문가들과 협력해 2024년 8월 국회 정책 제안 세미나를 열었고, 2025년 7월 전동보조장치의 건강보험 급여화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 중증 장애 아동은 약 380만 원 상당의 전동 휠체어와 보조장치를 구매할 때 비용의 90%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이 본부장은 “현장에는 이미 오랫동안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분들이 있었다”며 “재단은 실제 지원했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데이터를 쌓아 제도 개선에 필요한 근거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재단이 개발한 해결책을 시민 기부로 지속하는 방식도 시도하고 있다. 기부 플랫폼 ‘곧장기부’의 ‘임팩트기부’는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한 솔루션에 직접 기부하는 방식이다.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점자 문제집 제작, 지체·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맞춤 운동, 발달장애 아동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포옹조끼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기부금은 전액 지원 대상에게 전달되며, 결제 수수료와 운영비는 재단이 부담한다. 기부자는 물품 구매부터 전달에 이르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월 기준 곧장기부 플랫폼의 누적 기부금은 50억 원을 돌파했다. 이 본부장은 “재단이 계속 모든 비용과 인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며 “재단과 기부자의 자원을 결합해 사업이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이러한 직접 사업을 위해서는 조직의 전문성과 내부 공감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단 직원에게는 사업비를 관리하는 능력뿐 아니라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설계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며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조직문화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재단은 앞으로도 단순히 자금을 배분하는 조직을 넘어 실제 사회문제를 푸는 전문 집단으로서 다양한 해결책을 검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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