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필란트로피를 묻다] 마케팅 기술자의 종말, 다시 모금가의 본질로

올해 1월, 누구나데이터는 10년간 이어온 모금 교육을 중단했다. 기부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법, 클릭을 유도하는 모금 페이지를 만드는 법, 모금 광고의 성과를 측정하는 법 등 비영리 실무자 2500여 명에게 가르쳐 온 내용이었다. 교육을 중단한 이유는 단순했다. 올해 안에 이 업무들을 AI가 사람보다 더 잘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필요 없어질 지식과 기술을 배우자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당시의 판단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과장된 전망만은 아니다. 미국의 AI 연구기관 METR은 AI 모델이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의 복잡도를 사람이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환산해 분석한다. 2022년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사람이 약 30초 만에 끝낼 수 있는 수준의 과업을 수행했다면, 최근에는 14시간이 걸리는 과업까지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내년에는 하루, 내후년에는 일주일, 2029년에는 한 달이 걸리는 과업까지 처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물론 이는 특정 평가 방식에 따른 추정치이지, AI가 모든 업무를 해당 시간만큼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2024년 한 인터뷰에서 마케팅 전문가에게 맡겨 온 업무의 95%를 AI가 거의 즉시, 비용 없이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예상한 시점은 5년 뒤인 2029년이다. 나는 이 예측이 결코 과장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팀에서도 지난해까지 일주일이 걸리던 일부 업무를 이제는 하루 만에 끝내고 있다.

◇ 나는 모금가인가, 마케팅 기술자인가

모금 교육을 중단하면서 오랫동안 품어 온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나는 모금가인가, 마케팅 기술자인가. 그동안 우리 회사는 유능한 모금가가 되려면 마케팅 기술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디지털 환경에서 시민들과 접점을 만들고 기부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었다. 모금가는 때로 웹 기획자가 돼야 했고, 이메일 마케터이자 데이터 분석가, 광고 전문가가 돼야 했다.

디지털 시대에 모금을 지속하기 위해 현장의 실무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국은 글로벌 모금 기관들이 새로운 디지털 기부 캠페인을 시험하는 시장으로 주목할 만큼 디지털 개인 기부가 활발한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

모금과 마케팅은 닮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마케팅이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해 구매를 유도한다면, 모금은 자신의 자원을 타인과 사회를 위해 나누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직접적인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행동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에서 모금은 일반적인 마케팅보다 한층 복잡한 과정이다.

그렇기에 모금가에게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기부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전달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그 본질적인 일에 집중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마케팅 기술을 익히고 구현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상당수 마케팅 업무를 AI가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모금가가 마케팅 기술자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이제 온갖 마케팅 기술과 트렌드를 습득하고 구현하는 데 쏟았던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업무는 AI에 맡기고, 모금가는 본연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시민들이 공익사업에 공감하고 나눔에 참여하도록 무엇이 동기를 부여하는지 고민하는 일, 기부자를 직접 만나 관계를 맺는 일,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소통하는 일, 기업을 비롯해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할 새로운 협력 파트너를 발굴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AI가 마케팅 기술을 대신할수록 모금가는 오히려 모금가다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 모금가의 해방,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AI가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리더십의 의지와 조직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조직의 AI 전환(AX·AI Transformation)을 네 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도구형’이다. 사람이 대부분의 업무를 수행하고 AI는 문서를 다듬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등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다. 2단계인 ‘협업형’에서는 역할이 뒤집힌다. AI가 업무의 약 80%를 처리하고 사람이 나머지 20%를 검토하고 보완하는 방식이다.

3단계는 ‘위임형’이다. 사람이 업무 프로세스를 한 번 설계해 두면 AI가 이를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마지막 4단계인 ‘자율형’에서는 사람이 목표와 예산,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금지선을 정하면 AI가 적절한 업무 방식을 스스로 선택해 과업을 완수한다.

현재 비영리 조직의 AI 활용은 대부분 1단계에 머물러 있다. 2단계까지는 AI 도구를 도입하고 구성원을 교육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3·4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기술 도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조직의 거버넌스와 일하는 방식, 조직 문화까지 바뀌어야 한다.

AI가 직원처럼 조직을 이해하고 업무를 수행하려면 조직의 문서와 규정, 과거 업무 이력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권한과 함께 적절한 관리·통제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신입 직원이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업무를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조직을 이해하게 되면 목표와 방향만 제시해도 스스로 일을 수행할 수 있다. AI 역시 조직에 대한 이해가 쌓여야 더 복잡한 업무를 맡을 수 있다.

우리 회사가 최근 출시한 모금 AI ‘널리’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조직이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중간 수준인 ‘2.5단계’를 손쉽게 구현하도록 돕는 서비스다. 내년에는 3단계 수준의 AI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효율을 넘어, 모금의 한계를 확장할 때

그동안 디지털 기술의 주된 목표는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같은 일을 더 빠르게, 더 적은 비용으로 처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AI를 단순한 효율성 향상 도구로만 바라본다면 잠재력의 일부만 활용하는 셈이다. AI가 가져올 더 큰 변화는 업무 시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인력이 부족해서, 예산이 없어서, 전문성이 충분하지 않아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있다. 이제 AI를 활용하면 그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작은 단체도 큰 단체에 버금가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큰 단체는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로 절약한 시간만큼 일을 덜어내는 데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AI의 역량을 조직의 역량으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AI가 조직에 깊숙이 통합돼 사람과 협업하는 사무실의 모습을 아직 선명하게 그리기는 어렵다. 모두에게 낯설고 새로운 변화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그 미래는 현장의 모금가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 시대는 모금가가 마케팅 기술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본연의 역할로 돌아갈 기회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모금가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우리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김자유 누구나데이터 대표

필자 소개 

비영리단체에서 모금·홍보 업무를 담당하다 2017년 데이터 기반 모금 솔루션 기업 누구나데이터를 창업했습니다. 굿네이버스와 세이브더칠드런 등 누적 1000여 개 비영리단체에 모금·마케팅 데이터 솔루션을 제공했습니다.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됐으며, 아시아 필란트로피 어워드 올해의 펀드레이저상과 대한민국 체인지메이커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모금 AI '널리'를 개발하며 AI를 통한 모금 역량 확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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